불가능은... 있다. 컬러바가 뜰뻔했던 날
지금 생각해도
가끔 가슴이 답답해지는 아이템이 있다.
바로 ‘국민생선’ 편이다.
나는 그 방송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촬영 현장에서 사례자가 엎어졌고,
처음으로 폐렴에 걸렸다.
2014년 1월.
연일 한파가 이어지던 겨울이었다.
아이템 선정 회의는 늘 그랬듯 답이 없었다.
제철 식재료를 다뤄야 하는 촬영팀에게
한여름과 한겨울은 사실상 비수기다.
사례자는 있어도
잡고, 캐고, 건져 올릴 ‘현장’이 없기 때문이다.
90분짜리 프로그램을 채우려면
그림이 다양해야 했다.
현장이 없으면
사례자의 사연이 아주 세거나,
사는 공간 자체가 그림이 되어야 했다.
결국 아이템은 ‘국민생선’으로 정해졌다.
나는 짝꿍 언니와 나눠서 전화를 돌렸다.
언니는 갈치,
나는 꽁치였다.
전국에 있는 어촌계와
꽁치 판매 업체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00 프로그램 작가인데요.
혹시 꽁치 드시고 질환을 극복하신 분이 계실까요?”
“아니, 생선을 반찬으로 먹지 뭔 병을 고쳐요?”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노트에 빼곡히 적어둔 전화번호들 옆에는
X 표시만 늘어갔다.
전화를 돌리지 않은 리스트는 열 곳 남짓.
그중에 울릉도 어촌계가 있었다.
이미 제작 일정은 빠듯했고,
울릉도를 다녀올 여유는 거의 없었다.
속으로 간절히 빌면서 전화를 걸었다.
'제발 없다고 말해 주세요. 제발...'
“안녕하세요.
혹시 울릉도에 꽁치 드시고 특정 질환이 좋아지신 분이 계실까요?”
“아이고,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인데 반갑네요.
꽁치라…
아! 내 아는 사람 중에 꽁치 먹고 고혈압 좋아진 사람이 있어요.”
하....
한숨이 먼저 나왔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그 순간부터
아이템은 울릉도행으로 굳어졌다.
급한 불은 껐지만 문제는 바로 다음이었다.
당시 90분짜리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작가 둘이 45분씩 나눠서 맡았다.
그러려면 각자 최소 두 명의 사례자를 맡아 vcr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리 사연이 좋아도
사례자 한 명으로 45분을 끌고 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울릉도에서 꽁치를 먹고 병을 극복한
또 다른 사례자를 찾아야 했다.
어촌계장님께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다.
삼고초려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가까스로 한 분을 더 연결받았지만 그분은 끝내 방송을 망설였다.
“현장에서 제가 설득해 볼게요.”
피디는 그렇게 말하며 일단 울릉도로 들어갔다.
제발 제발..
속으로 촬영이 무사히 끝나길 기도하며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나의 알량한 기도를 비웃듯
이틀 뒤,
피디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분요…
전화로는 고민해 본다더니 막상 카메라 들이대니까 부담스러우셨나 봐요.
촬영은 절대 못 하겠대요.”
나는 바로 사례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수신거부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머리가 울렸다.
이미 피디는
울릉도에서 사례자 한 명을 촬영한 상황.
이제 와서 아이템을 엎는 것도,
그렇다고 사례자 한 명으로 끌고 가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 친구 중에 울릉도 고향인 분 있지 않았어?”
“어, 있지. 왜?”
“지금 울릉도에서 꽁치 먹고 건강 좋아진 분을 한 명 찾아야 돼. 아줌마 번호 좀 알려줘.”
나는 엄마 친구의 도움을 받아
울릉도에 있는 지인, 친척들까지
연락을 돌렸지만 촬영을 하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안해서 어쩌지. 한다는 사람이 없네.”
“아니에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전화를 끊고 나서 그제야 알았다.
이건 꽁치의 문제가 아니라,
이 아이템이 요구하는 무게를
내가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을.
결국.
나는 사례자 섭외에 실패했고,
내가 맡아야 했던 45분 중 20분을 짝꿍 언니가 대신해줬다.
언니 혼자 65분이나 되는 vcr을 맡은 거다.
언니는 괜찮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지만,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사무실을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변덕스러운 울릉도 바다 날씨는
피디를 예정보다 사흘이나 더 붙잡아뒀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바닷바람에 쩐 피디가
도착한 건 본사 시사 30분 전.
가편집본을 렌더링 걸 시간조차 없었다.
숨 가쁜 아수라장 속에서,
나는 안도감인지 자괴감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인 채
시사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그해 겨울,
울릉도 바다처럼 불안했던 그 아이템 때문에
며칠째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난생처음 ‘폐렴’에 걸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꽁치 때문도,
한 번의 뼈아픈 섭외 실패 때문도 아니었다.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혼자서 꾸역꾸역 끌어안는 것만이
유일한 성실함이라고 믿었던
그때의 미련한 방식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알게 되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파도라면,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빨리 휩쓸려가거나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때로는 '포기'가 가장 빠른 '대책'이 된다는 것을.
꽁치는 여전히
흔한 국민생선이지만,
내게는 아직도
속을 울렁이게 만드는 이름이다.
그리고 그 울렁거림 덕분에
나는 포기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