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퇴했습니다.
출근합니다.

아이 병실에서 원고를 썼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by 애미라이터

첫째 다섯 살, 둘째 세 살.

그때부터 나는 다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독박육아를 하던 나에게 상근이나 밤샘 촬영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거나,

100% 재택이 가능한 일만 골라 했다.


이번엔 월세가 아니라 생활비 때문이었다.

대출 이자와 카드값은 날짜를 미루지 않았다.


내가 벌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였다.


사람들은 묻는다.


“아이 둘 키우면서 어떻게 일을 해요?”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재택이라 가능해요. 육퇴하고 일해요.”


사실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이들을 놀이터에 풀어놓고

그네를 밀어주다 말고 뉴스를 검색했다.


“이건 아이템 되겠는데.”


온라인 카페를 돌며 사례자 섭외 글을 복사해 붙여 넣었다.


안녕하세요. ○○방송 제작팀 ○○작가입니다.
00을 꾸준히 드시고 건강을 회복하신 50~70대 여성 사례자를 모십니다.


세 살 막내가 칭얼거리면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 휴대폰을 잡고 섭외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가 말도 다 배우기 전,


휴대폰을 귀에 대고

"여보세요? 네네~" 를 흉내냈다.


전화를 붙잡고 하루종일 섭외를 해대던 내 모습이었다...


엄마 아빠보다 "네네" 가 먼저였다.

나는 아이 앞에서 늘 누군가를 설득하고 있었다.


한 번은 유모차를 밀며 섭외 전화를 하다가

횡단보도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오랫동안 고민하던 사례자가 마침내 마음을 열던 순간이었다.

“네, 선생님. 촬영은 한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죠~!”


설득이 거의 끝나갈 때,

갑자기 주변에서 시끄러운 경적소리가 터졌다.


신호등은 이미 빨간불.


나는 전화기를 붙든 채 다른 손으로 유모차를 잡고 미친 듯이 달리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날 알았다.

내가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건너고 있다는 걸.


엄마의 세계와 작가의 세계.

그리고 둘 다 놓치고 싶지 않다는 걸.




둘째가 네살이던 어느날,

열이 42도까지 올랐다.


요로감염.
3박 4일 입원.


아이 손에 꽂힌 링거를 붙잡고 있는데 메인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국장이 VCR 수정해달래. 네 아이템이라 네가 해야 할 것 같아.”


거절할 수 없었다.

취재도, 구성도, 대본도 내 손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병실 침대 옆에서 노트북을 펼쳤다.

키보드 소리와 아이의 칭얼거림이 겹쳤다.


간호사가 들어와 아이의 체온을 재는 동안 나는 자막을 고쳤다.

잠깐, 민망했다.


열이 펄펄 끓는 아이 옆에서 일을 하는 나를 보며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독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내 방식이었다.

나를 완전히 놓지 않는 방법.

그리고 그런 날은 계속 이어졌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집 안이 조용해지면

그때부터 내 하루가 시작됐다.


육아가 끝나면

나는 출근했다.


노트북을 열고 구성안을 쓰고 자막을 뽑았다.

혹시 아이가 깰까 봐 저소음 키보드를 조심스레 두드렸다.


통화가 필요하면 세탁실로 숨어들어갔다.


졸렸지만

마감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하루 중 가장 나다운 시간이었다.


엄마가 되면 멈춰야 한다고들 말한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대신 조금 구겨졌고,

조금 더 피곤했다.


나는 두 개의 삶을 산 게 아니다.

하나의 삶을 두 방향으로 찢어 붙잡고 있었을 뿐이다.


지금 돌아보면

어설펐고, 위태로웠다.


그래도 분명한 건 하나다.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내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는 것.


육퇴 후 출근하는 사람.

그게 나였고

지금의 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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