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서
어느 날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소년아.
너는 '이 세계'에 몸을 두어도
여기에 속하지 못하여 참으로 답답했으리라.
아무도 정의 내리지 못하는 너의 존재를 증명이나 하듯이
책을 읽다가, 읽다가 결국 도서관 그 자체가 되어버린 소년아.
말을 하는 법도, 듣는 법도 힘에 부쳐
세상에 쏟아낸 활자들을 필터링 없이 온전히 흡수하는 것을
너의 소통방식으로 선택했더구나.
소년아,
그런 네가 '그 도시'를 알게 되었을 때의 감정을, 나는 감히 알지 못한다.
그 도시는 오롯이 그 도시를 아는 자들 만의 것이다.
존재하여 알게 되는 것이 아닌, 아는 자들에게 존재하는 것.
이름을 불러서야 드디어 꽃 되듯이, 불확실하던 그 벽이 너의 본질을 건드리게 되었을 테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이 무색하던 너의 지난 몸부림에
그 도시는 너의 새로운 '옐로 서브마린'이 됐음에 분명하다. 나는 그렇게 보았다.
그 도시를 향하는 방법은 정해진 바 없다는 사실을 너는 알았다.
누군가는 무의식에 끌려가기도,
또 누군가는 가는 길을 다져나가기도 했음을
너의 이야기로 지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네가 선택한 이동 경로는 '상처'와 '아픔'이었구나,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계의 너는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는, 누군가의 생일을 묻는 것 외에는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그래서 마치 새끼를 낳고서야 관심받기 시작한 도서관 마당의 고양이와 같은 아이었을진데.
너는 그 도시로 넘어가기 전 누군가를 악 소리 나게 하였다.
그리고 그와 완전히 일체화되기 위해, 소정의 동의를 구하여 다시 한번 악 소리 나게 만드는 방법을 택했지.
'정중한 폭력'. 너의 존재가, 너의 본질이 명징해지자 너는 지극히 너 다운 새로운 소통을 시도한 것이다.
대신 너를 도서관 그 자체로 그에게 내어주기로 결심했을 테고.
너는 모든 껍데기를 다 마른나무인형처럼 버리고 갔음에도, 여전히 옐로 서브마린 재킷을 입고 있더구나.
그 재킷이 너의 불확실한 벽이었을 테지.
누군가에게는 베레모와 스커트, 또 누군가에게는 온몸을 죄어오지만 답답하지 않은 보정속옷과 같은
모든 이에게 존재하는 그들 만의 불확실한 벽처럼.
그 불확실한 벽으로 들어간 소년이 행복할지 궁금하다.
오래된 꿈을 읽는 일.
네가 찾고 선택한 너의 본질이 너의 실존을 확실하게 해 주었을지 궁금하다.
그 도시가 너를 불러, 너는 꽃이 되었을까?
그곳이 너의 녹색 바다, 노란 잠수함이길 바란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있지 않은 도시를 동경하던 소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