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내 첫 제자, 내 첫 사랑 ㄱㅌ에게.
안녕, 우리 ㄱㅌ?
방학마다 '선생님께 편지쓰기' 숙제를 내어주고는,
정작 그때 내가 너에게 뭐라고 답장을 썼었는지 기억이 안나.
그래서 지금 이 편지로 하지못한 말을 어떻게든 담아내고 싶은데...
할말이 너무 많아서 그게 될지 모르겠다.
방금 막, 이 편지에 함께 담을 네 사진을 인화해 잠시 키보드 앞에 세워놓았단다.
사진 속 네 쑥스러운 미소만 보아도,
사진 찍던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떠오르는구나.
그땐 겨우 만난지 두달이 채 되지 않았었는데,
나는 한눈에 너무도 개구지고 웃긴 너를 알아보고 너에게 부탁을 했었지. 기억나?
이 사진을 왜 찍는지도 안 밝히고는
'ㄱㅌ야, 친구들 활짝 웃는 모습 찍을 수 있게 선생님 뒤에서 애들 좀 웃겨줘!'라고 했더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말이지 너무도 최선을 다해서
이런 저런 센스있지만 선 넘지 않는 말재간으로
아이들이 더할나위 없이 큰 웃음 짓게 했던 ㄱㅌ.
그런데 막상, 본인이 사진찍을 순서가 되니 뭐가 그렇게 쑥스러웠던건지
귀엽고 커다란 앞니 두 개가 겨우 보이는 수줍고도 사랑스러운 미소가 너의 최선이었네.
갓 발령 받고 첫 제자였던 너희들은 지금까지도 내 모든 교육활동의 기준이라,
이렇게 한 명 한 명 웃는 사진을 찍어 어린이날이면 액자로 선물해주던 나만의 전통이
이 때 시작된거야.
네 덕에 너무 성공적이어서, 그래서 나만의 전통이 된거였지 사실은.
그 이후 매년 이렇게 아이들의 웃는 사진을 찍고 인화해 액자를 만들어왔는데,
한 사람껄 두 번이나 인화하는 건 생각해보니 이번이 처음이다.
넌 무엇이든 나에게 처음인 제자가 되었구나.
사실 선생님 이번 주말 내내,
잠들어도 네가 보이고 불현듯 자꾸 너와의 기억들이 마구 떠오르더라구.
마치 어제 그제마냥 생생한 기억들이.
이제는 거의 접속하지 않는 페이스북에 들어가서 15년치를 거슬러 올라
너희와 함께하던 1년의 기록을 죽 읽었는데.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할만큼 네 이야기가 유독 가득하더라.
첫 내새끼들이라 한놈 한놈 기억이 선명한데, 넌 그중에서도 유독 웃음나는 추억이 많더라고.
언젠가는 월요일 아침에 나에게 다가와
'선생님, 어디서 봤는데 아이스크림을 세개 먹으면 그 사람 정수리에서 그 아이스크림 냄새가 난대요.
선생님은 맨날 샴푸먹고 와요?
내일은 아침에 딸기맛 아이스크림 세개만 드시고 오심 안돼요? 선생님 머리에서 딸기냄새 나면 좋겠다.'
라고 했었대, 네가.
그걸 읽는 내 마음이 얼마나 따뜻해지던지, 햇살같던 너를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사랑받고 자라 그 사랑이 숨길 수 없을 만큼 뿜어져나왔고,
웃기지만 우습지 않았고,
편안하지만 만만하지 않아 모두가 널 따랐었어. 심지어 담임이던 나마저도.
2학기 반장이 되고, 그저 웃기기만 한 친구인가 했던 나의 선입견을 너는 보기좋게 바꿔놓았단다.
유머의 수준이 어른까지 커버할만큼 탁월하면서도 성숙해서,
내가 불과 얼마전까지도 또 어디선가 대화를 하며
'내 교직생애 첫 제자 중 나를 진심으로 빵빵 터트리던 애가 있었다.'고 널 추억했었어.
그리고는 이어서 네가 날 웃겼던 썰을 풀면 다들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마냥 깔깔깔 웃고는 해.
너는 그렇게 특별했고, 나는 널 항상 기억하며 살았는데.
언젠가는 네가 내 앞에서 엄마 걱정을 엄청 했었나봐.
내 문자에 너와 나눴던 2012년의 대화 중에는,
내가 널 위로한 문자가 남아있다. 엄마 걱정하는 널 걱정한 나.
어리고 철없어보여도, 넌 선생님도 다 알 만큼 엄마걱정 할 줄 아는 마음따뜻한 아이였다는걸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참 좋아했고, 애틋했다는걸.
하나, 하나 자꾸 찾아보게 된다, 알고있었지만.
생각보다도 네 흔적이 더 많이 남아서, 찾아볼 추억이 있다는게 가슴아리게 행복하다.
그 시절엔 늘 월말시험이 있었는데,
아무런 요령도 없고 너희를 채찍질할 깜냥도 없던 어리고 부족하던 나때문에
우리반이 늘 꼴찌였더라고, 내가 그거에 관한 이야기를 페북에 엄청 적어놨더라.
생각해보니 그마저도 참 부족한 선생님이었네 나는..
근데 어떤 글이 이렇게 적혀있더라.
내가 모자라서인데도 괜히 너희를 타박하면
늘 네가 가장 큰 소리로 '죄송함다 쌤!!! 열심히 하겠습니다!!!'했대.
나도, 너희도 그 누구도 기죽거나 속상할 수가 없는거야, 그러면
그러고 돌아서서는 울적한 친구 어깨동무를 하면서
'니 그래도 열심히 했다 아니가? 괜찮다 나도 다 틀렸다!'하고 위로를 건넸더라고.
명랑하고 힘있던 네 목소리, 자그마하지만 든든하던 네 뒷모습, 우리 ㄱㅌ가 이토록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런 류의 글 마무리는 죄다 내가 그런 너에게 배워간다고 되어있었어.
너를 보고있으면, 과정을 보지 못하고 결과로 너희를 타박하는 내가 너무 부끄럽다 끝났었더라.
그런데, 정작 그 이야길 너에게 한 번도 직접 해본적은 없었네.
네가 얼마나 멋진 아이인지, 내가 널 얼마나 자랑스러했는지,
사실은 내가 너에게 준 것 보다 받은게 훨씬 더 클지도 모른다는걸.
고맙다고, 나를 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제대로 말을 못했더라고.
몸이 가질 못해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도,
마음은 내내 너의 흔적을 자꾸 찾아보게 되던 주말이었는데
제일 먼저 찾은게 나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너에게 받은 디엠이었어.
'진짜 ㄱㅌ 인생중 최고의 선생님'이라던 네 메세지.
우리 직업이 정말 무서운게, 내가 누군가의 기억에 아주 오래도록 남아서
나의 생각 없이 던진 말이나 행동이 그 사람의 인생에 큰 무게추가 되어 붙들기도 한다는거야.
그런데 너는 거침없이 나를 최고라 불러주더라.
너에게 나는 발목 붙잡는 무게추가 아닌,
불안할 때마다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는 안전한 무게추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어.
네 인생 최고의 선생님이라는 그 말이 그렇게 행복했는데,
이제는 네가 적은 '인생'이라는 두 글자가 쉬이 흘려지지 않는다.
우리 ㄱㅌ의 인생에, 내가 오래도록 최고의 선생님으로 남을 수 있었던걸
내 교직 평생의 영광으로 안고 살아가려고 해. 고마워 ㄱㅌ야.
조만간 한번 찾아가겠단 말이 무색하게도 3년이 흘렀다.
여전히 웃기고 멋진 놈이라 어디선가 멋지게 살았을 너를
늦게나마 내가 찾아가려고 왔어. 배웅이 되어버린 우리의 재회가 너무도 가슴아리다, ㄱㅌ야.
너 6학년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칭찬도장 다 모아 뽑았던 '급식우선권' 쿠폰,
나중에 선생님 결혼식때 쓰고 뷔페 1등으로 먹어도 되냐고 했던 말을 늘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거 잃어버려서 결혼식 못왔다 그랬지, 너?ㅋㅋㅋㅋ
선생님이 네가 잃어버린 급식우선권이랑, 니가 그때 제일 뽑고싶었다던 특별소원권 다 뽑아왔어.
우리 나중에 다시 만나면, 우리 5반 놈들 중에 너 제일 먼저 맛있는거 먹이고, 니 소원도 들어줄게.
가는 길에 꼭 쥐고 가서 이번엔 잃어버리지마!
근데 사실 잃어버려도 괜찮아.
너 무슨 쿠폰 갖고 있었는지, 니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였는지, 널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지금까지처럼 선생님이 늘 기억할게. 어찌 잊겠니, 내가 너를.
너희 졸업식날 내가 하도 엉엉 울어서,
니가 졸업식 끝나고 집에 가서도 '선생님 울지마세요'하고 보낸 문자가 남아있더라.
그땐 끝까지 비밀로 했지만, 내가 너희 담임할때가 딱 스물일곱살, 지금 너희와 같은 나이였거든?
스물일곱에 진짜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열세살들 앞에서 너무너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네 소식을 몇몇 아이들에게 전해듣고, 다시 또 몇몇 아이들에게 전하는 동안
다들 온통 니가 웃기고 너로 인해 웃었던 기억이 그렇게 가득하던데,
웃었던 이야길 하면서 웃지를 못하더라.
애도 아니고 스물일곱씩이나 돼서, 죄다 전화기를 붙들고 왜이렇게 소리내어 울어대는지.
잠시 떠나보내는 졸업에도 그토록 목놓아 울었던 내 스물일곱적 생각하면,
그 눈물들이 얼마나 진하고 끈적한 눈물일지.
너를 보내는 스물일곱들, 그리고 떠나는 스물일곱의 너,
내 어렸던 스물일곱이 겹쳐서, 나도 한참을 같이 울었네.
너무 살 날이 많았던 우리 스물일곱살 ㄱㅌ가 사실은 안갔으면 좋겠다.
거짓말이면 좋겠다, 우리 ㄱㅌ 이번이 선생님한테 건넨 제일 큰 농담이면 좋겠다.
이사갈 때 연락하라고, 우리집 니가 멋지게 인테리어 해주겠다던 약속 지켜라, ㄱㅌ야.
돌아와라, 만나자 우리, 가지마 ㄱㅌ야.
우리 모두가 널 떠올릴 때 언제나처럼 눈물보다 웃음이 먼저 나오는 날이 오면,
그땐 내가 5반 다 모아서 같이 올게.
선생님이 결국 너 술도 한 잔 못사줬는데, 그땐 정말 반창화 하자 ㄱㅌ야.
그때까지 나는 종종 이렇게 혼자 와도 되니?
네 기억, 추억 떠오를때마다 올게.
너 추울까봐, 더울까봐, 심심할까봐 퇴근길에 종종 올게.
살아가다 언젠가
내가 너와 정말 만나게 될 그날까지도 내 첫사랑일, 우리 2학기 반장 ㄱㅌ.
내새끼, 내 첫제자.
사랑해, 선생님이 정말 많이 사랑해.
또 보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