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단과 말

-신준환의 다시, 그 나무를 보다

by 시인 이문숙

아체바랏다야, 회화나무, 녹색 빛 꽃이 떨어져요.

떨어지는 빗방울에 아체바랏다야, 이국의 말들이 겹쳐 떨어져요. 의미도 쓸모도 모르는 말이 갑자기 툭.

깜짝 놀라 눈을 사시처럼 뜨고 올려다봐요. 빗방울을 눈동자에 가두고, 아체바랏다야, 뜻모를 말을 따라해요.

어느덧, 흑단목 책상에는 사각사각 상처 많은 종이가 누워 있어요. 쓰으쓱 방울뱀이 지나가고 빨간 치통의 쓰르라미가 울어요. 그때마다 뜻도 모를 아체바랏다야를 쓰고 또 써요.

아체바랏다야, 아체바랏다야, 아체바랏다야.

신준환의 '다시, 나무를 보다'에서 보니 '흑단ebony'이라는 것이 다만 까만 목질에 불과하다네요. 당신의 검고 분출하는 눈동자.

단지 '두꺼워진 현재', 크로노스kronos같은, 그저 나무의 속살에 쌓인 타닌의 단단한 축적.

아체바랏다야, 오랫동안 흑단의 책상은 비어 있었네요. 공책은 갱처럼 그저 어두웠네요.

그 갱을 지금 갱신하려네요. 녹슨 펜촉의 흰 어금니를 다시 세우려네요.

두꺼운 흑단 덕에 '나무의 연한 부분은 지탱되고 나무는 쓰러지지 않고 서있는' 것. 죽은 듯 살아있는 것.

아체바랏다야, 그러고 보면 이런 뜻모를 말이 있어 매일 쓰는 사람의 말도 쓰러지지 않고 서있는 걸까요.

아체바랏다야, 우리에게 주세요. 매일매일 새로운 말의 연장을요. 깨끗하고 집중이 파랗게 타오르는 쇠스랑과 삽날과 도리깨를요.

'흑단은 나무의 영혼'이라네요. 가시도 싹이었던 시절이 있고, 가시도 한창 싱싱한 때가 있어서요.

아체바랏다야, 녹색 빛 꽃이 떨어져요. 아체바랏다야는 책을 읽다 깜짝 놀라 다시 본, 무릎이며 뿌리인 '무릎 뿌리knee root'같아요. '질식하지 않고 공기를 받기 위해 물 밖으로 '호흡근'을 내미는.'

말이 연옥일 때, 현재의 말이 흉노족처럼 으헝거리며 침노할 때, 지금 쓰는 이 말들에 혐오를 느낄 때, 아체바랏다야, 녹색 꽃은 떨어져요. '호흡근'이 흡흡흡흡.

아체바랏다야, 오늘은 뜻 모르고 쓸모없는 말을 쓰고 또 써요.

아체바랏다야, 아체바랏다야, 아체바랏다야.

야호!


실은 아체바랏다야는 인도네시아 수메트라의 '아체'의 기적이 저절로 환생되어 태어난 말이예요. 쓰나미로 자녀를 잃은 부부는 10년만에 어부가 구조했던 딸 자나와 아들 아리프와 해후하게 되었으니까요.


아체라밧다야. 누구든 이런 기적이 올 날이 있다면, 그건 아체라밧다야.


#나무#기적#죽음#삶#죽음이삶을버텨준다#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