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로통함과 귤

-요시다 아쓰히로의 '회오리 바람 식당의 밤'

by 시인 이문숙

금수처럼 더듬어, 예까지 비를 뚫고 기어이 와. 질척한 길, 누군가 미끄러질까봐 잡석을 흩어둔 내리막.

거길 지나다, 신발은 어느새 가장 동그마하고 뾰로통한 돌 하나를 신발 밑창 골무늬 주머니에 담았나 봐.

며칠 동안 왼발이 오른발보다 무거워 신발 바닥을 보니, 밑창에 작은 귤만한 돌 하나가 '도글도글' 박혔네.

요시다 아쓰히로의 '달의 배' 마을에 좁다란 한 상가의 모퉁이, 과일 노점의 귤이 여기까지 굴러왔을까.

그곳의 둥근 귤은 아첨도 변명도 모르는 달처럼 빛을 되비쳐. 귤은 마음에 흡인되지 않는 사물 앞에 섰을 때, 네 뺨 위에 불쑥 솟는 뾰로통함 같아.

줄곧 쌩한 말투, 몸놀림, 달리기, 내뺌, 투덜거림과 투닥거림을 싸안고 있는 귤 껍질의 '오툴도툴.'

그 '오툴도툴' 덕분에 귤은 더 달고 새콤하고 농밀한 지도 몰라. 꼬옥 노란 것이 '회오리' 같아.

요시다의 '회오리 바람 식당의 밤'에 나오는 노점의 청년은 언제든 책을 읽어. 과일은 구매자가 없이도 신신하고 무력하고 담담하기만 해.

도대체 구분할 수 없네. 여치와 잔디는 푸른 풀빛의 무분별. 돌과 귤은 '도글도글한' 둥근 무분별. 책과 청년도 이와 같달까.

참 별나기도 하지. 그는 '밤이면, 책장을 넘기는 곁에 귤 몇 개를 '도글도글' 놔둬.' 과일 파는 것보다 더 좋은 책 읽기의 '뾰로통함.'

갑자기 그 생각 앞으로 경광봉을 흔들며 지나가는 자율방범대 중년 여자들. 빛이 흔들어놓는 밤의 호박벌이 붕붕거릴 때.

왜 귤 몇 개를 놓아둘까. '무슨 주술처럼, 노점의 청년은 이렇게 대답하지.'

이렇게 해야 전등빛이 반사해서 책 읽는데 알맞은 '옅은 빛'이 되죠.

옅은 빛, 귤껍질에 닿으면 쏘는 듯한 전등 불빛이 누그러져. 눈은 시지 않고 찬찬히 글자를 따라가며 '도글도글해져.'

다시 돌 얘기해 볼까. 신발 밑창을 따라 왔으나, 돌은 원치 않았던 '재개발지역', 해체위원회 편이지. 맞아, 강제로 철거당하기 싫은 '골방의 토착민.'

신발이 강제로 다른 곳으로 이주시킨. 밑창에서 돌을 빼, 주머니에 넣어.

그리고 다시 그 길에 가 놓아줘. 네가 온 자리가 정확히 어딘지 모르지만, 이 부락임엔 틀림없어.

그곳이 서로 왈그락대며 주차 시비가 가끔 붙는 동네라 해도, 취사는 못하고 낮에는 붙어있지 못하는, '잠만 자는 방'이라 해도,

그 '달의 배' 마을에는 과일 노점에 귤빛에 반사된 빛으로 책 읽는 청년이 있고, 그가 가고 싶다는 '이르쿠츠크'라는 곳이 있어.

신발이 끌고 다니던 돌은 귤처럼 둥글고, 비천하고 늠름하고, 탐닉적이야.

그러나, '이르쿠츠크'가 어딘지 찾아보고 싶지는 않아. 그냥 눈 내리는 추운 부두일 것만 같아.

그곳에 가 귤장사나 할까. 얼어붙은 바다를 보며, 책이나 읽을까.

돌은 귤같고 새끈하고, 알 수 없는 불가지와 미로와 궁벽의 길을 갈 때, 신발 밑창에 박힌 돌은 '도글도글한' 귤. 뾰로통하고 새침한 '옅은 빛.'

경광봉을 흔들며 중년의 여자들이 지나가는 8월의 밤이야. 8월의 자정이야.


#귤#8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