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 혐오'
그래, 그 언어의 성소로 가기 위해선 꼭 총포사를 지나야 하던 때가 있었어.
거기서 최초로 본 총포. 의외로 공포스럽지 않았어. 총신은 단아했고 총구는 꽃이 발화하는 어떤 지점 같았어. 씨앗같은 총알이 들어있다는 약실은 어디에 있을까.
그 총을 갖고 달아나고 싶어. 그때 만났던 야생의 짐승. 그때 사살된 멧돼지. 살을 찢고 심장을 뚫던 그날의 그 소리들.
지금도 언어가 핍진한 우물처럼 웅웅대고, 지하동굴 '히포게움'의 메아리같이 꽥꽥대. 그러다 멈추고 다시 시작돼.
핏기없는 창백한 언어들이 그때의 피를 받아 벌컥벌컥 마시는 소리.
귀속에서 멧돼지는 벼꽃에 달라붙는 벌처럼 잉잉대고, 메뚜기처럼 탁탁 튀고, 벼이삭처럼 바삭거리며 씩씩거려.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려. 공명의 구덩이인 귀, 귀의 사슬.
이렇게 서로 다른 층위의 소리가 혼재하는 귀를 떼어 버릴 수는 없을까. 잘라서 버릴 수는 없니. 이 '귀의 우물'을 메우고 싶어. 이 환청이 가득한 물을. 물의 하얀 급소를 타앙, 탕 탕탕.
이 소리가 반복적으로 되울리며 무수히 변형되는 이 '귀의 수용소'가, 그때의 소녀를 가두려 할 때, 낮고 갸르랑거리며 시작한 소리가 종내는 꽥꽥거리며 '소리의 거울'을 들이댈때.
파스칼 키냐르의 '루이 14세와 노래하는 돼지'에서처럼 그때의 멧돼지들은 칸타타를 능숙히 연주해. 루이의 주문으로 창조됐다는 이 '돼지 오르간.'
오르간의 건반을 누르면 거기 달린 침으로 돼지를 찔러. 그러면 돼지는 꽥꽥거리며 음역이 다른 노래를 부르지. 이 '돼지 오르간'은 실재했던 것일까.
그래, 이건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 비무장지대에서 쫓기던 굶주린 멧돼지는 민간의 지역으로 내려와 더욱 광포해져. 평화로운 들판에서 메뚜기를 잡던 아이들을 습격해.
바람은 스르릉 울리는 그날의 경악스런 현악기.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높은 음역에서 울지.
소녀는 빨간 원피스를 입고 들판에 서 있어. 손에 들린 메뚜기가 든 초록빛 병 속으로 갑작스런 비명은 고여. 이 눈부신 소리의 '히포게움'을 들고 쓰러져.
햇빛은 레코드 바늘처럼 탁탁 튀고 벼 이삭은 사삭거려. 흔들려. 멧돼지는 울부짖으며 칸타타를 연주해.
소녀의 허벅지가 너덜거리며 선혈의 피를 쏟아. 그때 울리던 총포의 소리. 돼지를 찌르는 '돼지 오르간'의 침처럼 레코드 바늘처럼 메뚜기처럼 벼이삭처럼 탁탁 튀는 소리.
폴란드 음악가 시몬 락스가 그러했듯, '이 음악은 벌벌 떨며 들어야 해.' 죽음의 수용소에서 음악은 위안이었을까.
'위로'로부터 시작된 음악은 결국 잔혹한 죽음을 데려와. 귀를 총포처럼 뚫고와 꽂히고 후비고 저도 모르게, 파멸과 나락으로 몰고 가.
수용소에서 울리던 '하얗고 작은 깃이 달린 네이비블루 원피스를 입은 인형들의 오케스트라.' 이 돼지 오르간의 연주. 무심하고 괴이하고 아름다운 미소의.
듣는다는 것은 복종하고 '그 춤곡의 리듬에 발굽을 멈추는 것.' 노역에 내몰리는 '보통의 작업반kommando'이 되는 것.
너덜대던 허벅지에서 흐르던 피가 멈추고 죽었던 목숨이 살아나, 그 자리에서 새살이 돋아도, 그날의 멧돼지는 칭얼대며 졸졸거리며 흘러나와.
끊임없이 실토하는 돼지들. 새살 돋은 허벅지에서 지속적으로 태어나고 양육되는 돼지들.
어린 날, 뒤란에서 기르던 돼지들. 실신한 듯 누워 젖꼭지를 물고 놓지 않는 새끼들의 젖 빠는 소리. 수유의 고통으로 힘이 빠진 어미돼지는 눈을 감고 들어.
그 쪽쪽거리는 그 '음악의 활기'가 얼마나 우리를 재난으로 데려가는지. 그 음악이 가져오는 불안과 노역, 굶주림, 굴욕이 무엇일지.
멧돼지를 사살한 그날, 마을 사람들은 포식을 하고 벌컥벌컥 그 피를 들이켰다지. 아마 불현듯 확실히.
한 마을에서 벌어졌던 이 얘기를 파스칼에게 들려주면, 그는 다시 음악을 연주하고 듣게 될까.
그렇게 허벅지에서 결핍의 시는 태어나.
#트라우마#음악#파스칼키냐르#음악혐오#귀에는눈꺼풀이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