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뭇한 ‘마세요’
육교를 사랑하였다.
그곳에 서서 하염없이 몰려오는 붉은 미등의 물고기떼도 보았다. 해저터널 아래로 밀려드는 해수의 '찡'하는 울림도 들었다. 가끔은 그곳에서 뛰어내린 나의 사정없이 부서진 몸도 보았다.
그곳에 서면 해븐리병원의 불빛이 먼저 눈 속에 안착하였다. 피붙이의 임종을 혼자 그곳에서 지켜보았었다. 해븐리, 이미 반쯤은 천국인 아니 그 반대 같은. 혼자 두려웠고 무서웠다. 아버지의 입이 벌어진 채 굳을까봐 그 벌어진 입을 다물게 하려고 내내 턱을 받치고 있었다.
육교 옆 주욱 늘어선 가로수 말버즘나무 방울들이 흔들려 온다. 그럴 때면 요양병원, 연변 출신 간병인들의 거친 말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환자는 무거운 상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실재하는 몸은 달랐다. 모든 기능이 정지되었는데도 귀밥은 흘러넘쳤고 수염은 까슬했다. 나무 토막의 몸 안에서도 눈빛은 온전히 흔들렸다.
육교에 서면, 바로 아래 화궁이라는 중국집에서 짜장면 볶는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 맞은 편 아이리딩 센터 간판 속 올빼미는 눈과 부리가 또록하였다. 그 올빼미가 나를 읽어낼까봐 나는 눈을 감고 그 앞을 지나가곤 했다. 그러나 몸은 눈꺼풀처럼 감거나 뜰 수 없어 그 올빼미 부리에 사정없이 찢기고 바수어졌다. 몸 속에 든 마음이란 것을 올빼미는 보는 것 같았다. 그런 순간, 난 그것이 몸인지 마음인지 모를 소속 불명확한 허기를 움켜쥐고 허겁지겁 육교에 뛰어오르곤 했다. 숨이 턱에 걸리는 순간이 좋아서였겠지만.
육교는 매의 눈은 아니지만 황조롱이의 시선쯤은 돌려주었다. 눈이 멈춰 있던 발치에서 시선을 올려 조금 더 멀리 보았다. 멀리 보려고 했다. 고봉도 보았고 한갓 구름이 노을에 빨려드는 것도 지켜봤다. 정보산업고 아이들의 가난하지만 튼실하고 환한 종아리도 보았다.
그곳에 서면 '히믈리쉬 himmlisch' 라는 말이 따라왔다. 8차선 도로에서 질주하는 차들이 나의 내장 속으로 흘러들었다. 모든 것이 으깨져 내리고 곤죽이 되면 알 수 없는 먼곳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멀리, 대방 트리옹프니엄-이러한 조어들은 속악하다. 가뿐한 승리가 싫고 마구 패배하고 싶다- 공장형 아파트 건물의 유리 표면으로 노을이 슬라이딩하고 있다. 도금된 황소처럼 번쩍번쩍했다. 얼어붙은 계단을 내려가던 어슷한 오후 5시는 스프링 노트 한 쪽을 '뿌욱' 찢어 이런 안내문을 걸어두기도 했다.
'얼음 녹을 때까지 절대! 이쪽으로 내려가지 마세요. 정 내려가시려면 손잡이 꼭'
- 발 딛자마자 슬라이딩한 21살 처자
이 숱하고 숱한 말라 마라 마세요의 세계에서 이 '마세요'는 흐뭇하였다. 따사로웠다. 풋풋하였다. 손잡이 꼭. 꼭 붙들고 살고 싶다. 꼭 붙들어 주고 싶다.
육교는 가끔 이렇게도 속삭여준다. 이곳은 미끄러우니 돌아가세요. 돌아가세요 요요요요. '돌아가세요'라는 말이 삶의 전반을 울리고 있다. ‘손잡이 꼭'과 함께! 살바도르 달리가 여자의 몸 속에 수많은 서랍을 달아놓듯, 갑자기 내 몸 속에서 수없이 많은 손잡이가 솟아난다. 손잡이 달린 냄비가 아닌 손잡이 달린 아이, 어른, 어르신.
사실 이 육교가 귀찮아 무단횡단하고 싶을 때도 있다. 이곳 어떤 시민들은 이 낡은 유물을 폐기하라 하지만, 육교는 거기 올라서면 다른 시선., 직선이 아닌 반곡선의 휘둥그레한 시선을 준다.
도깨비라는 드라마는 미장원에서 본 1 회가 고작이지만, 나도 가끔 이 육교에 서서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는데, 21살 처자라고 밝힌 착하고 인정많은 도깨비를 체험하누나.
*himmlisch는 독일어로 '신비스러운, 이승의 일이 아닌 것 같은'이라는 뜻이다.
#육교#이브클라인#'인터내셔널 클라인즈 블루(I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