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홈
갓 발령 받은 신출내기 여교사처럼 새로 머리도 자르고, 원피스 단정히 입고 <이름과 타와다 요코 식 '말 건방지게' 보는 법>에 대해 생각한다.
이름은 '이르다'이며 '말하다'이고 어딘가 '이르다'이며 '도착하다'이다. 이름이 여러 경유지를 흘러 도착하는 곳은 어딜까.
이름은 또한 '일홈.' '일다', '일렁이다', 때로는 '잃다'와 먼 연관이 있는 지도 모른다.
이름은 일홈, '일렁이는 홈', 일렁이면서 패이는 홈.
타와다 요코 식으로 '이름'이라는 말을 건방지게 들여다 본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면서 갈등하고 흔들리느라 생겨나는 '존재의 홈' 같은 게 각자의 이름에 만져지네.
영화 '해피 아워'에서 삼십대 후반의 네 여자 아키라, 사쿠라코, 후미, 쥰은 오랜만에 같이 여행을 한다.
밤의 여관 방에 하얀 목욕가운 유카타를 입고 나란히 둘러앉는다. 그리고 돌아가며 서로의 잃어버렸던 이름을 불러준다. 그리고 상대방의 눈에 '일렁이는 홈'을 보며 덧붙인다.
'참 예쁜 이름이야.'
진명, 참 예쁜 이름이야. 문숙, 참 예쁜 이름이야. 정례, 혜수,경림, 참 예쁜 이름이야
어깨 위로 나뭇가지에 얹혀있던 눈 녹은 물 툭 떨어진다. 눈이 왔다. 혜수가 농사지은 귤이 왔다.
혜수가 가장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진명이 말했다. 귤 먹을 식구가 없네. 상해 버리면 미안할 것 같아. 받은 걸로 할게. 정례가 말했다. 방이 날아가 버렸어. 가출한 노인이 간신히 집 찾았네. 경림이 말했다. 일년에 한 번씩 부담 갖지 말고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 단체톡방에서 노란 귤이 떨어졌다. 모두가 살짝 미간을 찡그리고 귤이 참 시고 달다. 동시에 댓글을 달았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귤 상자가 문 밖에 놓여 있다. 정례만 답이 없다. 그곳으로도 귤 배달은 잘 갔니. 정례가 대답한다.
눈, 참 예쁜 이름이야.
귤, 참 예쁜 이름이야.
#타와다요코#이진명#이문숙#최정례#김혜수#이경림
#앙리마티스, 탕헤르의 창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