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인격만두복합체
만두피가 생겨 만두를 빚을 일이 생겼는데
안에다 채울 것이 없어 냉동만두를 넣고 통째로 감쌌던 적 있다
-이병률 ‘겹쳐서’
그럴 만두 하지. 생각해보니 그 시절 교안은 만두다. 만두는 교안이다. 만두 교안은 한 챕터 당 꼭 4차시로 써야한다. 그게 만두 잘 빚는 기술이다. 만두의 아르떼다.
그때 4차시 만두소가 필요하다. 양념 털어낸 태양김치, 희망다짐육. 인내숙주. 긍정두부. 필요에 따라 회의부추나 창의당면을 추가해 6차시로 늘이거나 재료 한 가지를 줄여 3차시로 만들면 안 된다.
연구용 참고서를 베끼면 완벽하고 개별적인 의견을 덧붙이면 빨간 줄이다. 교안 검사는 한 달에 한 번 받고, 거부하면 빚은 만두에 마지막 손자국을 내듯, 평가에서 뒤처진다.
당시에는 국어 교안을 윤리 담당 연구부장이 검사하고 기술 담당 교감이 검토한다. 웃음이 터질 만두 하지. 사범학교 출신 비전공 체육 교장이 결재한다. 내용은 글씨가 삐뚤하니 정서해서 다시 내라거나, 여백에 자신의 생각을 추가하지 말라는 얇은 만두피 같은 지적. 찌거나 삶으면 곧 터지고말 교안만두들의 무도회.
가면과 가면은 겹쳐진다
쓰고 있는 가면 위에 다른 가면을 겹쳐 쓸 수도 있다
-이병률 ‘겹쳐서’
만두 교안은 이제 가면이다. 가면 교안이다. 깨끗이 정서해서 위장한다. 가면의 눈은 불안하게 깜박거리고 의혹으로 속눈썹이 길어져 질질 끌고 다니는 실내용 슬리퍼를 덮을 지경이다. 수업 중이라 텅빈 복도를 걸어가도 확신에 찬 어깨는 냉동만두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뒤축 단 슬리퍼를 끌고 만두찜기의 수증기처럼 시끄럽게 걸어가다 열강 중인 앞문의 쪽유리창을 흘끗거린다. 수업을 엿듣는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뒷문을 열고 들어와 쓰레기를 줍는 척, 커튼을 묶는 척 감독한다.
만두 교안은 가끔 뒤 빈 의자에 앉아 수업을 노골적으로 감시하다 교안대로 수업하지 않는다고 질책한다. 생각이 다르다고 교장실에 불러 가둬두고 퇴근을 안 시킨다. 종일반에 애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종내는 시말서를 쓰라한다. 까짓것 쓰자. 호락호락 그랬더니 낙인을 찍어 강제전출 시킨다.
그 시절 나는, 만두소를 숨긴 만두 교안. 내용을 감춘 가면 교안. 교안머리는 뽀마드로 찐득하고 철지난 양복을 갖춰입고 자주 시찰하고 감독한다. 외람되게 바지런하고 이상하게 반듯하다. 백양메리야스 상점에서 일괄 구매한 와이샤스 곽 와이샤스처럼 고스란하다.
오래 있어야 하는 자리였고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양말 구멍으로 내민 살이
꼭 그곳에 있기 싫은 내 얼굴 같았다
-이병률 ‘겹쳐서’
교안은 이제 양말 교안이다. 구멍난 양말 교안은 이렇게 해도 되나하는 질문과 회의가 없다. 양말 교안은 규칙적이고 행보는 빠르고 매사에 바늘 들어갈 빈틈 하나 없다. 4차시의 교안, 불안한 4차 산업혁명 같은 교안. 교안의 교안.
그 교안을 써내느라고 32년을 보냈구나. 교안 만두를 빚다가 교안 가면을 겹쳐쓰다가 구멍난 교안 양말 위에 새 양말을 겹쳐 신다가 눈물그림을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는 아닌 척, 완벽한 척 정장 스커트를 입고 하얀 분필을 쥐고 교안을 보며 필기하는 교안의 기예사.
이제는 토로할 만두하지. 오늘이 5월 18일이 아니더라도 하얗고 투명한 만두피 아래 가면 아래 양말 아래 나두 누워있던 시절이 있었구나. 소가 없어 냉동만두를 만두피로 다시 감싸던 이중삼중자석 필통처럼 겹쳐 살던 시절.
그럴 만두 하지. 침울 위에 우쭐을 겹쳐쓰고, 누군가를 스승이라고 부르는 걸 혐오하고, 선생이라는 말이 좌판 위 죽은 생선처럼 들리던 시절.
지느러미가 심해를 가두고 아가미가 해저를 탐닉하지 못하던 그 시절. 왜 죽었는데, 죽어서 폐선을 덮고 있는데. 나는 내 심장에게 묻곤 했다. 왜 죽은 생선, 그걸 ‘살 생’을 여전히 넣어 ‘생선’이라고 부르는지.
그렇게 부를 만두 하지. 너와 내가 경험한 사적이고 고유한 슬픔백악기. 어디서 생겼는지 모를 만두피를 뒤집어쓰고 하얗고 사심없는 얼굴로, 이런 날이면, 당당히 걸어본다. 오늘 드디어 분수대에 물이 들었네. 찰랑이는 물이랑. 물숨.
그 물에 오늘의 아가미와 지느러미를 적셔본다. 이곳에서도 가끔 조개껍데기가 발견된다. 이곳도 바다였던 적 있으리.
* At the Masquerade, Charles Hermans (Belgian, 1839 - 1924)
*문학동네시인선 145,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이병률 시집
#이병률시인 #이문숙시인 #한발짝을옮기는동안 #창비시집 #유진상가그리고고가도로 #강은교시인 #시치유 #5.18
[강은교의 시편지 2]
홍제역 계단에서는
이따금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부르는 남자
박카스 빈 곽에 몇 개의 동전
이 남자는 청양이 고향이고
아버지 없이 자랐으며,
계단 옹색한 구석에서
무슨 노래냐고 그래도
기타의 쇠줄은 철렁거리지
‘참 먹을 만두 하지’ 만둣집 여자는
배호의 안개가 있어
종일 불솥 앞에서 만두를 찌지
당신의 목소리가 쉬었네요
물 한 컵 받아주지
사막은 왜 모래알을 가졌지
사슴은 왜 뿔이 있지
안경은 왜 풍경을 가졌지
다 그럴 만두 하지
고가도로 아래 하염없는 지체는
그가 풀어놓은 안개 때문
혀뿌리가 짜릿하기도 하지
배꼽 아래가 울렁거리기도 하지
그의 노래는 구걸이 아닌 구제
다시 쎄팅된 포크와 나이프처럼
그의 노래는
[이문숙: 유진상가 그리고 고가도로]
당신도 걸었던, 어딘가의, 어느 날의 풍경입니다. 당신 속에 들어 앉아 있는 삶의 배면. 우리는 모두 하나씩의 풍경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마음의 무대, 무대도구는 시의 말들이 불러일으키는 것들, 마음밭의 평화.
이윽고 풍경은 당신의 중심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당신은 당신 주변의 것들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풍경은 당신의 중심으로 건너옵니다. <자기에게 말걸기>는 풍경의 그림틀 속에서 완성되기 시작합니다. 거기서 말을 걸어오는 사물들과 당신은 대화합니다.
시인의 중심이 당신의 중심에 얹힙니다. 당신은 시인과 어깨를 겯고 걸어갑니다.
언어의 울타리를 지닌 시인의 풍경과 당신의, 삶의 울타리를 지닌 풍경이 하나가 되어 겹칩니다.
그러면 또 하나의 풍경을 들춰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