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숙 #아르코문학창작기금선정작
‘페페브루노가 폐업했대.' 나는 리처드 기어의 '시간 늘리는 법'을 전송했는데, 엉뚱한 답이 온다. 그곳, 4층에서는 무엇이 보였지?타로카드 점, 꿈이라는 뜻을 가진 회전초밥집 '유메'의 빙글빙글 유랑하는 접시, 헤어살롱 바닥 모를 거울 수로. 인테리어를 뜯어내면, 화려하고 번잡했던 곳이 초라하고 턱없이 미진한 황금의 집 *카도로Ca d’Oro가 된다. 집 아래 다리가 조금씩 해수면 아래로 꺼져가는.
우리는 기억의 플러그를 급뽑으려다 질겁한다. 드릴 소리는 점점 커진다. 그곳의 플라스틱 접시와 반짝이는 포크와 화덕. 늘 박력분 밀가루 희끗하던 보조 요리사 가운은 어디로 갈까.뜨거웠던 화덕은 어느덧 식고, 우리들의 탐식만 남는다. 권태로운 고르곤졸라와 꿀종지들이 끈적댄다. 우리는 곤졸라를 '곤돌라'로 부르며 그곳에서 웃는다. 거기에는 페기라는 여자가 있어 사랑을 하고 실연을 거듭한다.
페기는 그럭저럭 세기의 미술품을 모으고 부스럭부스럭 산다. 페기가 사랑했던 애송이 '베케트'가 비쩍 마른 물고기 웃음을 입에 물고 담벼락에 붙어 있다.얼굴 속에 철퍼덕대는 파고. 파도 주름을 헤치며 곤돌라는 죄수의 다리를 건넌다. 광장의 가면무도회에서 나는 페기의 가면을 쓴다. 그는 어떤 가면을 택할지? 박쥐 혹은 해골? 페페가 뭐고 브루노가 뭔지도 모르면서, 꿀 종지에 까맣게 테두리 그을린 빵 조각을 찍어 먹는다.
꿀을 듬뿍 바르면, 촉촉하고 말랑했던 조각은 이상하게 눅눅하다가 빳빳해진다. 잇자국 가득한 추억들이 포개져 있는 흰접시들의 탑. 우리는 그 꼭대기에 고공 농성자처럼 매달려. 살려줘.
페페는 페기를 모르고, 사뮈엘은 부르노를 모르고, 나는 '시간 늘리는 법'을 정말 모르지만, 우리는 아파트 옥상에 정박해 있던 곤돌라에 다시 오른다. 밧줄을 풀어 바닥에서 물 줄줄 새는 이삿짐을 옮기려. 뱃전에 황금 조개 껍데기가 덕지덕지 붙어있던 그때 그 배를 저어.
페페브루노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반짝이는 가위를 앞주머니에 꽂은 미용사를 만나면, 납작했던 두상이 다시 뽈통해지며 동그래진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굳이 힘든 티벳 식 수행하지 않아도 단칼에 ‘과거로 가는 법’을 알았어요. 기어씨, 정말 고마워요.
*카도로Ca d’Oro: 황금의 집
*담벼락이삿짐광고, photo by 이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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