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숙#아르코문학창작기금선정작
세 달 동안 약을 맞췄다 앙증맞았다 좋아하던 단추 같았다 몽땅 집어삼켰다 응급실에 실려갔다 감정 세척을 했다 감정을 세 달 동안 조립했는데 몇 초만에 해체되었다 다시 약을 맞추러 분류기호 860.ㅅㄷ 병동에 간다 그곳에서 해사하게 웃는 언니와 한 방을 쓴다
시간이 되면 따박따박 맞춰 약을 먹는다 언니가 물병에 물을 따라준다 다같이 치킨과 피자를 시켜먹기도 한다 먹은 뒤 남은 뼈를 조합한다 오늘도 다리 하나가 비었네
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적을 여기서 본다 기름종이 위 먹다만 치킨이 목청을 돋워 깨우는 새벽 하루 한 시간밖에 잠을 못잔 지 세 달이 넘은 대기업 사원 오빠가 코를 골며 엎어져 잔다 그가 다리 하나를 뜯어먹은 건 아니겠지 나는 그의 삼선슬리퍼에 매직으로 낙서한다 불면증은 뭔 거짓말쟁이 도둑놈 위선자
이곳에서도 외롭냐구 아니 고독은 개나 물어가라지 고독은 쓰레기통에 쑤셔박으라지 고통은 고둥에게나 주어버리라지 우리는 철썩대는 감정을 폐기한 지 오래 천 년을 이곳에서 지저귀었을 인면조 얼굴 속에 그 노래 속에 그 구렁텅이 속에
착용하고 있는 불안이란 놈은 잘 다려지고 풀이 빳빳이 매겨져 움직일 때마다 버석거린다 다 큰 어른들인 우리는 이곳에서도 삼선슬리퍼를 신는다 그걸 찍찍 끌면 이상하게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860.ㅅㄷ 병동 도서관에 가서 감정 분류표를 본다 생각보다 고통이나 불안보다 사랑이 더 많았다
*차가운 몽상, photo by 이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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