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숙#아르코문학창작기금선정작
담당의는 학회 세미난지 뭔지 출장 중이다 임시로 나를 떠맡은 인턴은 담당의보다 나를 더 새끼도마뱀 취급한다 나를 임상용 도마뱀으로 쓰려는 작심을 내가 모를 줄 알고 나를 잡을 테면 잡아보라지 내가 잡혀주나
피 얼룩이 남아있는 가운 호주머니에는 내가 떼어버린 도마뱀 꼬리가 여러 개 들어있다 언제 저 더러운 옷은 코인 세탁소 세탁조에 입수해 장거리 수영을 즐기려나
이곳에서 감정은 낭비되지 않고 분비된다 언니가 법망을 피해 이곳에 숨어든 초범이라곤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어느날 같이 뉴스를 보다 언니와 판박이 얼굴이 보도되는 걸 보고 나는 속으로 더 우는 사람이 되었다
다행히 감정은 우리에게 전이되지 않고 우리를 체포하지 못한다 860.ㅅㄷ 병동에서는 야구모와 마스크를 쓰고 터지는 플래시 앞에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 여기선 화장끼 없는 민낯 얼굴로 웃어도 되니까
어쩜 언니의 저 웃음은 저렇게 살갑지 이걸 엄마가 보면 곰살맞다고 표현했을 거야 곰살맞다니 예쁜 독버섯을 발견한 겨우내 굶주린 곰이 이렇게 웃을까
이 자발적인 감금에선 피고름 대신 새로운 냄새가 난다 이곳은 위생적인 감정 안치소 같다 주사 바늘과 알코올 약솜이 다정히 포옹하고 있다
오물 처리실에 버려진 우리들의 감정이 의료 폐기물 봉투에 단정히 묶여있다 어느 말짱한 자가 저 쓰레기 봉투까지 저렇게 공들여 예쁜 리본 매듭을 맬 수 있나
나는 860.ㅅㄷ 감정 도서관 볕 잘드는 창가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졸고 있다 내 원룸이 있는 중미역 사거리를 삼선슬리퍼를 끌고 돌아다니는 꿈이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쇼윈도 안 신부 예복을 입은 마네킹에게 안녕 말한다 오직 그녀만 이 동네에서 내 인사를 받아준다 저 신부가 파혼 선언도 없이 면사포를 쓴 채 결혼식 직전 도망가면 어쩌나
놀라 깨어난 나는 볼펜을 찾는다 아 참 이곳에선 어떤 도구도 지참하면 안 돼지 필기구 하나 없는 나는 다음 구절에 손톱으로 꾹꾹 밑줄을 긋는다 ‘사람을’ 자해하고 ‘언니’에게 언어의 면사포를 씌워
나는 나를 매혹하는 그 사람을 분류할 수 없다
나는 나를 매혹하는 그 언니를 분류할 수 있다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분홍몽상,, photo by 이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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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dios Varo, still life revi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