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막 5장

이문숙#아르코문학창작기금선정작

by 시인 이문숙

가끔 들러 물을 주라고 해서요. 정말 로사가 열쇠를 당신에게요. 정말로요. 로사는 깻잎깻잎. 오로지 그 깻잎


로사는 시험도 치르지 않고 어딜 간 것일까. 주저앉거나 울부짖지도 않는 그 여인을 만나러 또 간 것일까. 그녀의 눈물은 고여 샘이 된다. 깻잎은 그 물을 마시고 쑥쑥 큰다.

(ㅅ의 횃불이 일렁이며 유리잔에 고인 성혈을 비춘다)


어떻게 된 거야. 로사는 여기서 공부는커녕 대화 한 마디 나눌 친구 하나 없다면서.


(죽고 싶었어. 근데, 저 깻잎이 나를 살렸어. 저 냄새가 나를)


앤지는 우리보다 깻잎이 더 중요하냐고 운다. 우리를 그 멀리서 오라고 해놓고. 당장 나가버리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지켜보던 깻잎의 눈시울도 덩달아 파래진다. 그때마다 냄새가 천창 너머 번진다.


(피에르 르베르디Pierre reverdy는 그 천창 아래서 시를 쓴다. '석탄이 천연금괴만큼이나 귀한 시절, 눈이 지붕 틈새로 떨어지는 그 푸른 빛을 받아, 그 타원형 천창 아래서)

물 주러 온 여자가 가고 ‘ㅅ'의 길 밖으로 쫓겨나온 리타와 앤지를 끌고 짐가방은 구른다. 바퀴 소리 점점 커진다. 멀리 앵발리드역 캄캄한 지하철 으릉대는 속으로 섞인다. 그러다 잦아든다.


***

깻잎의 천창 너머 보이던 상점

그 이름이


<세심의 사화집>이었다는 걸
훗날 알게 된다.


무엇을 하는 곳일까.
(로사는 리타와 앤지에게 왜

추방을 명했는지)

그 창문턱의
ㅅ ㅅ ㅅ ㅅ.
ㅅ ㅅ ㅅ ㅅ ㅅ ㅅ ㅅ ㅅ
('세심'의 푸른 깻깻깻잎)


미친 여편네야 꺼져

여기는 너네 나라가 아니라구

거기 가서나 그걸 키우라구


베란다 밖으로 내던져진

깻잎 화분 산산조각난다.

산산조각


훗날 리타는 그걸 다시 한 조각 한 조각

짜맞춰 그날의 화분을 완성한다


아교칠을 하고

금가루를 섞어


세심

세밀한 마음


섬세도 섬망도

아닌


그 화분에서 다시 깻잎 새순이

ㅅ ㅅ ㅅ ㅅ

천창처럼 올라온다.

(서서히 암전.)


깻잎의 파란 청색광. 유리 잔에 고인 성혈에 드리운다. 열쇠 절겅대는 소리가 천상의 음악처럼 울린다. 맑다. 눈에서 흐르는 간헐천 같다.


*비사표성냥, photo by 이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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