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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이문숙 Aug 31. 2017

물탱크와 담소

-설치미술가 김준의 '난지도'

소리 채집자, 사운드 아티스트라 불리는 게 마땅치 않은, '현대미술가'라고 불러달라는, 김준 작가와 토크하는 걸 아람누리에서 보다가, 그의 까끌한 발언에 후다닥 놀란다.

관객: 도대체 난지도 버려진 물탱크에서 떨어지는 소릴 채집하는 이유는 뭐요. 난해해요. 난해해. 대중들에겐.

작가:(대뜸) 예술은 본래 대중을 위한 게 아니에요. 그러면 예술이 아니죠.

나는 벌써 그가 설치한 물탱크 속에 들어가 어떤 소리를 듣고 있다. 시들었던 귀가 '퍼더덕' 살아난다.

이미 그 안에 들어가 지금은 공원이 된, 그곳에서 있었던 누군가의 삶과 각양각색 쓰레기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작가가 몇날 며칠 채집한 소리의 가파른 내막에 귀가 진동한다.(어쩔)

그 물탱크 안에서 내가 나눴던 어느날의 대화도 같이 들려온다.

시인:모든 추격전은 순환한다-마이클 콴Michael Quanne-존 버거의 '넘어지는 기술에 관한 몇 가지 노트'에서

법학자:순환의 논리가 적용될까요//// 우리 인생에.........<<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만 흐른다>>...................... 아뽈리네르는 찰나에 과거가 되는 [현재]를 그리워 하고 있습니다...........

시인:이상하고 불가해한 순환, 그 어물쩡하고 뜨거운 마음 속에 잊히지 않는 '불의 고리'를 믿어보려는 거죠. 다시 살아보려는 실뿌리처럼요. 강은 흐르지만, 기억 속에는 솟구치기도 꺼꾸로 흐르기도 하니까요.

법학자:상상력이 요구되는 추리물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법학자:세계 명시 중 특히 프랑스 명 시인들 작품을 보면 일단 시어가 쉽습니다......스페인어 다음으로 불어가 뉘앙스의 차이가 가장 많은 단어를 보유한 언어입니다!!!!!! 아뽈리네르와 로랭생을 좋아한 박인환의 시에서 그런 점을 발견해서 글을 올린 것입니다.....<<쉬운 시어에 독자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유발하는 시>>..........그런 시가 명시입니다!!!!!!

시인:네, 저두 아폴리네르 좋아해서, 시집 해설, 서두에 '생메리의 악사' 일부를 가져왔네요. 다다른 방식! 모두들 다른 취향!

법학자:<<쉬운 시어에 독자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유발하는 시>>.......................

시인:쉬운 시가 있으면 어려운 시도 있겠지요. 말의 세상에 당나귀만 있으면 맥빠짐. 조랑말도 노새도 야생마도 심지어 철마도 역마차도 있어야 됨.

법학자:네................소비자.....독자가 판단할 못입니다!!!!! 고맙습니다....조랑말

시인:(판단할 못, 못이라니!) (이분이야말로 '잠재적' 시인이시다.). 물론 판단할 ‘못’은 판단할 ‘몫’의 오타이겠지만, 이 예기치 못한 오타가 더 많은 상상력과 새로운 각성으로 우리들을 유인하죠. 법학자님, 그렇게 계속 실패해 주세요. 그게 접시 위 양배추보다 이질적인 공간에 놓인 화단의 꽃양배추처럼 흥미로워요.

시인:(......조랑말) 시는 소비되지 않아도 쓰여지지요. 헛된 메아리라도 웅얼거림. 단 한 사람의 귀를 비껴간다 해두요.(나는 쉬운 시가 조랑말이라는 뜻은 아니였는데.)

법학자는 법학자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잘못 썼을, 판단할 '못'이 진짜 못으로 느껴진다.

탕탕 서로 못박으며 아프게, 철철 피 흘리며 예술은 간다. 가누나. 장 미셀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의 금빛 왕관처럼.

잠잘 때도 심지어 욕조의 물 속에서도, 언제나 왕관은 머리 위에 숙명처럼 얹혀져 있다.

벗고 싶어도 벗지 못한 채, 허공의 첨탑에 갇힌 그는 늘 금빛 괴로움에 탕탕, 왕관을 쓴 머리를 창살에 부딪는다. 그 소리를 들으며, 탑 아래 온세계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춘다. '참, 아름답고 맑은 소리구나.'

누군가에게는 고통의 소리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소리. 예술의 숙명처럼 버려진 쓰레기장 난지도 물탱크에서 똘또르르 맑게 떨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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