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 젖먹이기
오르한 파묵은 그림일기를, 메리 루플은 울음일기crylog를, 오늘의 나는 깻묵일기를 적어보았다. 깨알들이 새까만 게 데글데글하다. 이렇게라도 사소한 공지사항 같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나는 내 방식대로 강하고 아름답지는 못하지만.
12월 21일 (토)
주변엔 웬 고마운 사람이 이렇게 많니. 독서클럽 희진, 태영, 순득, 고양시민작가 보리, 세라. 희진이 준 동지 팥떡을 새알처럼 오려 팥죽처럼 끓여 먹으니 돌아가신 분들이 육교에서 손을 내젓는다.
엄마, 아버지, 시의 친정엄마 최정례 시인, 시의 아버지 황현산 선생님. 오늘은 춥다더니 맑고, 춥다더니 햇빛이 쨍하다.
심지어 공원 조형물 돌고슴도치군도 돌무당벌레 아가씨도 어제 내린 눈의 흰 코트를 입고 있다.
내리는 눈은 흰 수유일까. 아니면 닿지 못하는 수유須臾일까.
둘째를 낳은 시민작가 세라의 젖이 불었다. 얼른 가서 수유를 해야지. 딸 제나의 입이 한껏 벌어져 있을 것만 같다. 뭔지도 모를 ‘꼭지’를 향해. 촐촐한 맑고 단아한 창자가 신생아 제나에게 시킨 일이겠지만.
라온제나, 아들 라온과 딸 제나. 세라는 라온을 분만하기 전 만삭에도 시민작가 모임에 시를 빠지지 않고 적어온 걸 뱃속의 라온 너는 잘 알지. 너는 시가 분만한 아이야.
세라는 벌써 두 아이 엄마가 되었네. 나도 어떤 ‘꼭지’를 향한 촐촐함.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 그렇다 하지만 여성의 ‘젖꼭지’는 환산 불가. 그렇지 않니. 아기 제나야.
제나야. 우리 아기 제나야. 라온제나는 순 우리말. 라온은 나온, 즐거운. 제나는 제 자신의 나.
제 자신의 나도 어렵지만, 거기에 즐거운 ‘제 자신의 나’가 되려면
#이문숙#독서록# 장미, 장미, 장미#시여우#시적산문#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