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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귀하

-입고 가능할까요? (단골책방에 알려주시겠어요)

by 시인 이문숙

(댓글에 문학전문책방 아시면 알려주세요. 제가 책을 입고해 보려고요)


시 쓰는 이문숙이에요. 제가 시도 산문도 아닌 에세이를 냈어요. 고맙게도 2024년 서울문화재단 지원금으로요. 작고 예쁜 독서록이어요.


한 문장, 한 송이 장미 . 문장의 아름다움에서 촉발한 줄거리도 감상도 없는 시적인 산문이어요. 첨부한 이미지 자료를 살펴보시고, 귀하의 작은책방에 입고 가능한지 여쭙고 싶어요.


장미薔薇는 장미章美다. 문장의 아름다움이다. 문장에서 장미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시간!


시인 이문숙 1991년 「현대시학」으로 나왔다. 2005년 시집 「천둥을 쪼개고 씨앗을 심다」(창비), 2009년 「한 발짝을 옮기는 동안」(창비), 2017년 「무릎이 무르팍이 되기까지」(문학동네)를 펴냈다.



*각 부 구절


1부 봄 훌라후프


그녀는 문학적 훌라후프였어

토성의 고리를 지녔지


2부 여름 물고기 빗


비는 빗

흑호黑虎의 슬픔조차 빗겨주는 빗

비는 빗


3부 가을 도토리배


당신의 심연에 받아주세요

‘진척’이라는 배 한 척


4부 ㅅ ㅅ ㅅ


세심의 사화집

깻잎은 늘 초조하고 착해


5부 겨울 아랑곳


‘딴청’이라는 통통통

심지어 배우고

옮겨오고 싶은 통통통


Gather ye rosebuds

while ye may,

Old Time is still a-

flying;

And this same flower

that smiles today,

Tomorrow will be

dying.


시인의 말


모을 수 있을 때, 물방울 맺힌 아침 장미 봉오리를 모아라. 그 장미 봉오리 문장으로 아침 샤워를 하여라. 서랍 속에는 문장을 모아두어라. 사람을 넣어두어라. 장미 수집가가 되어라.


장미, 장미, 장미. 장미薔薇는 장미章美다. 문장의 아름다움이다. 아침 샤워 대신, 아름다운 문장 샤워!


장미정원에서 본다. 노란 댄싱걸dancing girl, 파란 블루라이트blue light, 순백의 아이스버그iceberg, 붉은행성red planet 등등. 모두 색이 곱고 아름답다. 그러나 색이 고정되지 않고 시시각각 변하는 포에트리poetry라는 장미.


그러니 받아주시겠어요. 이 작고 소박한 책 위에 ‘포에트리’ 한 송이를 놓아 드릴게요. 읽을 때마다 시시각각 달라지고 변화하는 문장들이 거기 있다면.

무릎을 접으면 생기는 둥근 고원을 좋아한다. 그 고원에 하얀 구근을 심어두고 야바위꾼, 폐광의 주인, 떠돌이 약장수와 함께 들여다보는 걸 좋아한다.


2019년 작은책방 파견작가로서, '장미가시독서클럽’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그때 읽었던 책들. 책 속 문장에서 발화하는 장미, 장미들.


시도 산문도 아닌 무릎이 사랑한 이 에세이를 골목 속 또다른 장미들인 작은책방들에게 헌정하고 싶다.


추천의 말


장미(薔薇)를 모으는 여인들의 그림에서 문장의 아름다움(章美)를 발견하는 시인. 그렇다면 그의 이름 문숙은 문장의 맑음(文淑)일까. 그 특유의 맑은 문장으로 이문숙은 봄의 책, 여름의 책, 가을과 겨울과 혹은 그 사이 어딘가 이름 없는 계절의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중에는 내가 모르는 책도 있고 아는 책도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전부 모르는 책 같다. 이토록 낯설고 아름답고 엉뚱하고 다정한 독서록이라니. 분명히 읽은 책인데 생전 처음 보는 책처럼 강렬한 호기심으로 다시 첫 장을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아니, 원전은 아무래도 좋고 나는 그저 문장이 아름답고 맑은 이 독서록을 천천히 오래 아껴 읽고 싶을 뿐이다.


세상에 ‘시작하고 전진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연필은 없다지만 이문숙의 연필은 거기서 더 나아간다. 춤추고 노래하고 길가의 장미를 따고 이정표를 지나쳐 가까운 길도 멀리 돌아간다. 그 여정에 이 어여쁜 책이 놓여 있다.

-소설가 김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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