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얼굴은 자기가 씻고 살아야지
실명한 친구 개는 움직이지 않고 운다. 집에 혼자 있으면 더 심해진다. 어디 다칠까봐(식탁 다리에 걸려 넘어진 어머니)어디 부딪칠까 이런 걱정은 없단다. 근데 움직이지 않고 안 보이니 운다. 내내 운다. 잠시 자리를 비우기 어렵단다.
그걸 ‘하울링’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만 ‘운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녀의 검은 동공이 건포도알처럼(포도사상균처럼) 작아진다. 강아지 눈에는 모든 것이 흑백으로 보인다고 한다. 흑백조차 꺼지면 무엇이 될까.
흑과 백은 ‘black과 blanc’은 ‘bla’를 공유한다. 흑이다가 백이다가 어떤 색깔로 바뀔 것도 같다. 어루어룽 총천연색. 그것 때문에 아연실색의 울음이 터질 수도 있다. 처음 마주하는 색이라서.
얼마전 문해력 교육 할머니 시화전. 그림 속 플라스틱 총천연색 꽃 테두리 액자. 그속에 남자는 아연실색하고 있다. 남자는 필시 그녀의 바깥 양반일 것이다. 왜 이렇게 좋아하지 하는 남자의 어리둥절한 표정.
그 액자 속 인물을 바라보는 식구들. 아내인 할머니 포함 아들 딸은 모두 활짝 웃고 있다. 여기서 비로소 그 시화를 보는 이의 마음이 야릇해진다. ‘아주 잘 갔다는 듯’ 액자를 둘러싼 꽃심 안에도 웃는 입술이 그려져 있다. 가서 비로소 기쁘다는 듯.
그걸 액자 속에서 바라보던 남자는 처음에는 의아해한다. 그러다가 삐죽대며 울기 시작한다. 근데 그 울음은 액자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액자 밖 사람들은 너무 좋아서 ‘흐엉흐엉’ 웃는다.
‘아버지 아주 잘 갔어. 맨날 늙은 엄마만 한글도 못 읽는다 구박하구. 부려먹고. 자기가 무슨 왕이야, 왕. 이제 엄마가 한글 배워서 시까지 썼네. 왕두 자리에서 쫓겨 나올 때 있다고. 잘됐어, 잘.’
실명한 작은 개는 흑백 분간이 안되는 울음 소리낸다. 그 흰 개의 이름은 일명 ‘막스’다. 합스부르크 왕가 ‘막스밀리언’의 이름이다. 왕가의 쇠락과 멸망을 향해 가는 황제의 이름.
액자 속에 들어갈 나와 또다른 너가 그 시화를 보고 가장 오래 머문다. 킥킥댄다. 인기 투표 빨간 스티커가 가장 많이 붙은 시화.
ㅇㅇㅇ는 왕
맨날 세수 물 떠다 받혀써요
이제 나 조말순이 왕임니다.
내 얼골은 내가 씻자
골로 갈 때까지
너무 조흐다
우리 식구 하하하 웃었다
혼자 남겨질 때 우는 막스야. 그 흑백을 섞어 에릭 사티 연인 수잔 발라동. 수잔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처럼. 흑이 감춰진 오늘의 그림을 그려줘. 흰 캔버스에 ‘흐흐흐’ 흰 물감.
막스의 울음을 달래려고 아무리 아양을 떨어도 너는 딸꾹질하듯 우네. 흐엉흐잉흐얼. ‘흐’라는 소리만이 분명하고 뒤는 잘 모르는 소리를 덧붙이네.
‘흐’는 웃음 소리 ‘흐흐’에도 닿아 있어. 가끔 친구는 막스의 울음 소리가 웃음 소리로도 들린다. 그렇게 속아주며 바깥에 나왔다가 후딱 들어간다.
액자를 굳이 영정이라 부르지 못하는 마음. 시화 속 그림. 가장 화려한 꽃을 두르고 있는 액자. 자기 얼굴은 자기가 씻으며 살아야지.
보살핌에 가끔씩만 열중할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사랑한다
-김연덕, ‘낮의 크레페’
*문해력 시화전에 대한 내용은 친구에게 들은 얘기를 각색해서 구체화했다.
*모리스 위트릴로, ‘두유의 교회’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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