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트’라는 말

-안산 일기

by 시인 이문숙

오후 1:30

날밤 새고 지하철 리듬에 실려 잠 좀 자자. ‘닌나난나’하려고 무작정. 인어가 사랑한 뱃사공처럼 푹 좀 자려고 근데 말똥댄다. 지하철 리듬 좋은데.


홍제역 갑작 안산 궁금하다. 오래전 축제 같은 거 없던 때. 개울 건너편 직장였던 때. 거기 동구 밖 길 고목 왕벚 군락 있어. 보러 짝꿍 여선생과 갔다.


고단하지만 퇴근길. 개울 건너 물레방아 지나 방죽 너머. 와 이런 곳 누가 숨겨둔 거야.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주지 말자. 사람들 몰려들면 이곳 또 개발한다구 난리날 거야. 공원 축제 정원 다 좋은 말인데. 관이 알면 또 부수고 깨고 조성해. 그거 우린 싫어. 자연 좀 그냥 놔두자.


천변에서 오리 짝꿍 헤엄쳐 간다. 머리초록 왕관 수컷. 암컷을 물결로 감싸며. 고가 간선도로 그림자도 쟤네들 지나는데는 비껴간다. 오, 보호받구 싶다. 세상의 먼지로부터. 오 엘엘엘엘hell.


폭포 떨어진다. 개울 건너 물레방아 돌아간다. 노란 빛 떨어진다. 저거 개나리 아니고 영춘화예요. 개나리 잎 네 장. 영춘화는 다섯 장. 개나리는 줄기 목근이고 저건 새파랗죠. 머릿속에 낙차가 요즘 부쩍 심한데.


노란 빛 떨어진다. ‘히어리’라는 팻말. 두 여자 루페 목에 걸고 간다. 저거 외래종인가요. 아니예요. 우리나라 자생종이어요. 히어리는 순우리말. 노란 초롱 총총 콩과 식물. 아름답죠. 묻는 내게 같이 다녀도 좋다 한다. 그 옆은 풍년화 처음 본다. 저게 피면 풍년 든대요. 둘 다 일부러 심은 거예요.


내리받이 석축 돌단풍 흰꽃. 루페로 보니 꽃 속 붉은 술. 겨울 이긴 봄꽃들은 모두 ‘로제트’라 한다. 하나두 이파리 겹쳐나지 않는다. 깨좁쌀볕이라도 함께 나누려고. 괴불나물. 바닥에 찰싹 붙은 아기똥풀. 모두 로제트, 스테인드글라스 ‘장미’ 창처럼요. 서로 잘 나눠요. 혼자 독차지란 없어요.


오후 2:45

물도랑 소리 따라 올라간다. 도룡뇽 흰 순대 두꺼비 전선 줄. 알 모양이 그래요. 떠내려가면 안 되니까 물살 사납지 않은데. 낙엽들 물에 떠서 엉겨있는데 있어요. 위장색 아시죠. 포식자 새가 쪼아먹으면 안 되니까. 갈색 사이.


와 여기 도룡뇽 알 있어요. 얼마전 두꺼비 교미 장면 본 사람 있대요. 커단 암컷이 작은 수컷 등에 업고 있는 거. 호호 재밌어요. 조류 수컷 엄청 화려하죠. 양서류는 아주 쬐그맣죠. 암컷 어떻게든 차지해야 하니까. 경쟁이 사람보다 빡세니. 치장하고 몸 가뿐히 가꾸고요.


방죽에 올해 설치한 조형물. 대형 두꺼비와 오리. 웬 뜬금없는 백조까지. 여긴 서식하지 않는데. 관이 하는 일 다 저렇지. 빤하구 틀려. 틀려도 안 고쳐.


저 조형물은 청둥오리인가요. 아닌 것 같아요. 눈가 날개 깃 모두 초록. 처음 보네요. 청둥오리보단 훨씬 작네요.


혹시 청둥오리와 쇠오리 어떻게 달라요. 쇠오리요. ‘쇠’는 일반적으로 작다는 뜻인데. 쇠비름 쇠깔깔매미 쇠기러기. 암튼 청둥오린 아니에요. 제가 좀 찾아볼게요. 아, 저게 쇠오리네요. 초록 눈가 초록 날개 깃. 그린오로라 빛. 지속가능한 서울의 상징 색깔. 쇠오리가 참 예뻐요. 그린오로라 빛 쇠오리. 청둥오린 머리만 파랗죠.


아 저기 물 속 흰 순대 보여요. 맞아요. 도롱뇽 알이어요. 여기도 저기도 방죽 잘 찾아보면 보여요. 아는 만큼 보인다잖아요. 요즘 도롱뇽 집에서도 키운대요. 반려 양서류라는데. 와 신기해요. 여기 돌 틈 바위취 보이시죠. 흰꽃 피면 발레리나 같아요.


오후 3:20

잎 세 개 얘는 뭘까요. 소나무인 거 같긴 한데. 소나무는 잎 두 개예요. 세 개는 리끼다소나무. 송진두 껍질두 송화가루도 주죠. 송화는 수꽃. 저 긴 게 암꽃. 바람이 송화가루 날려 수정해요. 같이 있어도 거리 둬요. 사람두 거리 두기 힘든데.


저기 소나무 쓰러진 거 봐요. 요즘 습설 많아서. 소나무는 표면장력 세서 다 빨아들여요. 털어내지 못하고. 가지가 결국 다른 나무보다 잘 부러져요. 솔숲 사라지고 있어요. 기후가 변해서. 우리가 잘해야 되는데. 못하니까.


오후 4:00

쉼터 테이블에 앉는다. 주워온 메타세퀘이아 열매. 잘 보면 여러 개 입술 보인다. 팔찌 만든다. 초록 끈으로. 팔찌 낀 세 손 모아본다. 오늘 체험은 한 분 신청하셨는데. 우연히 한 분 합류해 더 잘 되었어요. 둘은 부담스러운데. 셋이라서 균형이 잘.


가방에서 끝으로 싱잉 볼 꺼낸다. 해본다. 막대를 끌어올려서 부드럽게 치세요. 막대를 빙. 볼 둘레 요렇게 돌려보세요. 이 소리 배꼽 창자 손톱까지 스며들어요. 이걸 짊어지고 해종일 다닌 사람. 은숙씨입니다.


심지어 이중내열 투명 잔에 차까지. 노란 차 든 잔 들어 여기 들어오는 풍경 보란다. 오, 노란 색유리에 안산 자락.


이 차는. 메리골드 수레국화 쑥부쟁이. 다 아니고 맞춰봐요. 국화 같은데 벌개미취까지. 맞아요, 서양 국화 캐모마일. 목 마를까 그것도 지고 다닌 사람. 은숙씨란다. 어깨 빠졌겠다.


두 개의 손보다 세 개의 손. 같이 모으니 오늘 본 ‘로제트’에 가까워졌다. 스테인드글라스가 괜히 장미 모양 아니구나.


겨울 이긴 봄풀 ‘로제트’ 형상. 겨울 수난 이긴 꽃은 십자화가 많아. 냉이는 양치기 지갑이라는데 이유가 뭘까요. 씨 맺으면 지갑 모양이라 그럴까요. 또 만나서 씨앗 나중 같이 루페로 봐요.


오후 5:10

이름 잘 붙인 눈 밝은 사람들 참 많았다. 옛적 지금 내일 ‘히어리’처럼 있다. ‘로제트’라는 말 들고 안산에 서 있다.


깨좁살볕도 나누려고 절대 겹쳐 나지 않는 봄꽃살이. 나도 ‘로제트’라는 말 들고 온다. 닌나난나 나폴리 방언처럼 졸며 지하철 리듬에 실려. 이런 하루의 리듬은 *’닌나난나’지. 인어가 짝사랑하는 뱃사공에게 불러주는 금자동아 은자동아, 자장자장이지.


pm 7:20

지하철에서 내려 문촌 4단지 지난다. 서울제비꽃 폈다. 낮게 잎들 땅에 바짝 붙인 채. 납죽 앉아서나 볼 수 있다. 보라 아닌 흰제비. 손수건 같다.


파리 에릭 사티가 살았다는 오베르쥐 뒤 클루Auberge du clou. 일명 손톱 여인숙. 손톱만한 땅. 손톱만한 방이면 뭐든 할 수 있다. 반反예술이든 사상이든 후장사실주의든 미래파든.


아르쾨이 사티 장례식에는 붉은 마호가니 관. 25 프랑짜리 인조 제비꽃. 리본에는 세입자 무슈 사티에게.


숨 거두기 얼마전 아르쾨이에 가서 건물관리인으로부터 맡긴 세탁물을 받아왔다. 세탁부에게 맡긴 거 손수건 99장 혹은 백 장. 98장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메리 데이비스Marry Davis, 에릭 사티Erik Satie/이석호 역/걷는 책


pm 7:40

은숙씨가 따준 검은 씨앗. 한 꼬투리 세 개 씨앗 뭉쳐 있다. 역시 로제트 형상. 이름은 안 알려줬다. 집에 가서 심으라고. 뭐가 나오는지 보라고. 집에 오자마자 심었다. 자장자장 씨앗 닌나난나했어.


씨앗은 잠재적 숲입니다.


*핑크 마트니, 나폴리 방언으로 부른 자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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