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폭탄 있어

-루시, 당신 이름을 불러요.

by 시인 이문숙

전시 5부


폭탄을 만들었다구. 정말. 그래 정말. 그거 어디다 투하하려구. 내가 알아봤다니까. 너는 아닌 듯 그런 테러분자야.


SeMA, 최재은 Where beings be, 이런 폭탄 있다. 씨앗폭탄seed bomb. 씨앗 살포 어려운 위험한 DMZ 지뢰 매립지역에 투하한다. 전시 마지막 ‘자연국가Nature rules’ 파트, 양파망처럼 붉은 망에 담겨 있다.


빚어본다. 한 알은 큰키해바라기, 미술관 앞에 심어 8월에는 해바라기 밭 될 거라 한다. 와, 장관이겠다. 한 알은 앉은뱅이 해바라기. 집에 데려와 토분에 심을 거.


고향 파주 금촌이라 이 프로젝트에 더욱 끌린다는 내 말. 이게 무슨 우연이지. 진행자 역시 금촌 살고 있단다. 미디어 작가. 금촌 재개발 지역 다큐 작업을 하고 있다 한다. 그렇잖아도 수용소 마을 다 없어져서 속상했어요. 부모님이 개성 피난민이라 어렸을 때 수용소 살았어요.


옛날엔 수용소가 뭐야 싫었는데. 작년 옛집 보러갔다 없어져 펑펑 울었어요. 시청에서 해체되기 전 기록이나 했는지. 거기 살던 피난민들 구술 채록했는지. 그곳의 일부라도 역사적 장소로 보존해야 한다고 촉구했는데. 답이 없었다. 정말 이 현장 기록하고 있다니 너무 고마워요.


씨앗폭탄은 이렇게 만든다. 만두피처럼 진흙 펼친다. 그 속 부엽토 세 숟갈 넣고 만든 만두 모양 진흙. 손으로 굴려 경단을 만든다. 뾰족한 씨앗 방향으로 두 세 개 꽂는다. 설날 홍두깨로 밀어 빚던 만두. 강정 만들기 전 뜬 조청에 담궈먹던 경단. 앞에 앉은 젊은 여자분이 내게 말한다.


어떻게 그리 잘 빚으세요. 어렸을 때 많이 빚었어요. 웃으면서 우리, 8월에 우리 빚은 씨앗폭탄에서 발아된 키큰해바라기 보러 꼭 와요. 네 와요.


전시 4부


두꺼운 학습 전과 사이 맷돌로 눌러놓던 식물 표본. 난 그 숙제가 싫었다. 여기저기 볕에 맨얼굴 밀짚 모자 하나 없이 돌아다닌다.


발견하면 일단 식물 뿌리째 뽑는다. 사풀 황새냉이 돌나물 갯쑥 남산제비 여뀌 부처꽃 등.


책 갈피에 잘 펴서 돌로 눌러 놓는다. 오랜 시간 눌러 마른 압화. 하나하나 종이에 붙여 표본집 만든다.


그 채집 장소 적는다. 황골 가는 활터. 장님네 움집 앞. 피난민 홀아비 땜쟁이 아저씨 뒷담. 도립병원 진료소 처마 밑. 역전 뱀사탕집 앞. 새재강 모래톱.


그거 바쁘게 캐러 다니던 때 볕은 좋기도 따갑기도 했다. 갖가지 자연의 색깔에 쏙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식물들 다 말라가면 왜였을까. 남는 건 이유 모를 불안 공포 같은 것들.


새재 활터 활 피잉 과녁 뚫는 소리. 도살장 핏물 스며든 도랑. 어디선가 끌려온 여성재활원 진료소 철창 속 여자들 비명 소리. 그 압화에 스며있는 거 같았다. 돌이 심장을 눌러. 어서 이 돌 좀 누가 치워줘.


다니다 배 고프고 목 마르면 깜부기 까마중 따먹는다. 입술 보라 붉자주 검은 빛으로 변한다.


최재은 전시 4부 ‘미명微名’. 작은 이름들. 무명은 아니나 미명의 작은 식물들 압화. 통로를 사이로 양옆에 전시되어 있다. 와, 이거 몇 년 동안 한 작업일까.


조금 걸을 척 ‘彳’에 가는 머리칼 빗는 여자를 상형한 글자를 더해서 만들어진 글자 ‘미微’. 작고 정교하면서 비천하기도 한 ‘미微’. 가늘가늘 여린 머리 빗는 여자의 정갈한 모습.


옻칠 판 위 수없이 많은 압화들 있다. 그 작은 이름 압화들. 식물들 그 맨아래쪽. 식물이 대상이 아니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자신을 묘사하는 글 있다.


나는 갯동방사니예요. 저는 화문석 자리 짜는데 쓰여요. 나는 원추수국이구요. 해열할 때 좋아요. 나는 산월계수예요. 독성 있어 물고기 잡을 때 써요. 갑자기 꽃 열어 날아든 곤충 기절 시키지요. 그 곤충에 가루 묻혀 자손 퍼뜨려요. 염증에 약이 되죠.


저는 검양옻이어요. 방수에 좋아 나무칠할 때 써요. 저는 락스퍼Larkspur예요. 독성 있어 악령 막이래요. 해충들 싫어해 해충 구제로도 쓰여요.


아쇼카의 숲Forest of Asoka. 인도의 전륜성왕. 학살을 많이 해서 그거 참회하려고 사람들에게 다섯 종의 나무를 줬다. 각각 집 땔감에너지 약과 열매, 관상용 꽃. 이 다섯 가지 주는 나무들. 갑자기 불꽃나무 부겐발리아가 떠오르네.


압화에는 볕 바람 서리 사람 말소리 우박 천둥 다 담겨있다. 여기 약쑥 있어. 골풀 있어. 여뀌꽃 있어. 나의 강제된 숙제 압화와는 다른 아직은 멸종 모르는 미물들. 아쇼카의 숲이라기보다 최재은의 솟길이며 숲. 식물국가가 이런 거네.


인간과 자연의 공생. 공생지약. 공생의 약속. 어쩌면 진부해서 귀에 들리지 않는 주제. 그 의미를 이런 방식으로 펼쳐놓는다. 너무 다양해서 다 볼 수가 없다. 다음에 또 몇차례 와서 봐야지.


어쩌면 상호의존interdependence이라는 당위적 과제가 프로파간다 같다. 나 잘하구 있는데 간섭이 들어오는 거 같아 싫다. 그러나 이 작은 풀꽃들은 그 자체로 자기를 이야기한다.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John Donne, For whom the bell tolls from Meditation 17


얼마나 많은 장소에서 이 식물 모았을까. 그걸 모아 이 작고 정교한 이름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일. 얼굴에 태양을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일.


작가는 70대, 우리 세대 여자들은 거의 억압된 ‘압화’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닌’ 여자들. 작가는 같은 세대인데도 다르게 살았다.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I was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John Donne, For whom the bell tolls from Meditation 17


그 당시 직장 가진 여자도 거의 없었던 시대. ‘깨여난 여자’라 해도 직장에서 돌아오면 가정에서 일만 했던 나와 너 늘 결여된 여자들. 맞아, 다른 누군가 죽음은 내 일부를 가져가. 같이 공유했던 감정 의식 기억. 그 일부가 그가 영영 없어짐으로 죽는 거니까.


‘땅에 쓴 시’ 정영선 조경가. 여기 최재은 작가. 황종례 도예가. 모두 앞서 나간 여자들이다. 40년 이상 자기 역사를 쓰는 예술가들. 시인들도 계신다. 팔순 넘어서 시 더 치열하게 쓴다.


그 1부 조형물 ‘루시’들이다. 발굴된 최초의 여자라고 믿었던 여자 ‘루시’. 그 골반뼈를 히말라야 *황백암으로 제작했다는 그 루시. 다시 나오면서 본다. 골반뼈 눈부시다. 하얀 왕관의 어머니 만년설로 뒤덮여 있는 것 같다. 빛 올 때마다 튄다. 튀어오른다.


*최재은 작가가 인용한 시

*황백암은 한백옥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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