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루 궈의 ‘연인들을 위한 중국어 사전'
바르셀로나 개선문arc de triomf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조금 걷는다. 북역 버스터미널에서 야간버스 알사를 탄다. 캄캄한 밤으로 흘러간다. 창 밖만 보던 옆자리 청년은 결국 나에게 말을 건다. 알고 보니 그는 중국 유학생 칸이다.
나에게 한자를 쓸 줄 아냐고 묻는다. 서울을 서울의 다른 말을. 나는 한성이라고 손바닥에 써 보인다, 그거 말구. 나는 다른 거 생각나지 않는다. 지나고 나니 그가 원했던 건 한양이었으리라. 샤오루 궈 Xiaolu guo의 ‘연인들을 위한 중국어 사전'에서 읽은 그 누슈Nushu로, 나는 서울이라는 단어를 적는다. ~¡^*.
아아아, 그 누슈로, 오래 전 중국 여인들이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눌 때 쓰던 점, 선, 쉼표, 곡선으로 이루어진 언어 누슈. 그걸로 친다면, 나의 사전에는 한양, 한성 따위란 없다. 그냥 물 쪼로록 흐르는 서울, 이를테면 ~¡^*. 흐르는 물~과 곧추선 사람들의 어깨i와 가끔은 그들의 샐쭉해지는 눈썹 선^과 볼에 화안한 빛*같은 서울.
~¡^*. ~¡^*.
‘햇 마드리드HAT Madrid’는 나에게 모자 하나를 선물한다. 너는 이 모자를 쓰고 춤출 수 있다. 지금껏 인생이 지루했다면 이 모자를 쓰고 춤추라. 먹고 노래하고 쓰라. 6인용 여성 전용 방 이층 침대에 배정된다. 나는 1층 시트 덮인 침대에 걸터앉는다. 사다리를 기어올라갈 힘도 없다. 나는 지배인에게 말한다. 바꿔달라고. 나는 눈빛에 누슈의 언어를 담아 말한다. 이층침대는 절벽을 기어오르는 것만큼 벅차다고. 그의 파란 눈 속에 심연이 잠깐 흔들리더니 조용히 묻는다. 시트를 썼냐고. 나는 빈 1층 침대에 앉아만 있었다고 대답한다.
2층의 오스트레일리아 여자 비비안이 올라갈 때마다 침대는 삐꺽거린다. 침대는 보채는 아이같다. 밤은 정말 바닥까지 하얘진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톨레도에 간다. 버스에서 만난 스웨덴 남자는 리얼터다. 까르프에서 샀다는 샐러드에서 방울토마토를 몇 개 골라내 이방의 여자에게 건네준다. 신문을 펴더니 얼마 전 혼자 다니던 동양여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살해되었다고 조심스레 사진을 보여준다. 그도 손때 묻은 스페인어 종이사전을 찾으며 읽는다. 여자 kvinna.
스페인 중늙은이 남자 오베는 전망 좋다는 톨레도의 호텔 대신, 톨레도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 수천년 넘었다는 도서관으로 나를 데려간다. 도서관은 bibliotẹk. 비블리오테크. 영원의 돌로 건축한 서지학. 그는 유대인이다. 유대인 회당에 나를 데려간다. Judéen Synagoga. 후뎅 신나고가. 그의 발음은 나직하고 나른하고 평화롭다. 무데하르 양식처럼 회랑의 문양처럼 흘러간다.
골목은 다정한 창문들을 꺼내 보여준다. 열린 문으로 집들은 타일들의 음악을 들려준다. 그곳에 조용히 마르는 빨래가 있다. 발꿈치에 닿는 돌들이 있다. 아이들이 있다. 네 명의 아이들은 이방의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검은 눈동자가 다리미 같다. 뜨겁다. 뜨거워진다. 그애의 아버지는 결국 묻는다. 어디서 왔냐고. 하-안-국, 나는 우리말로 먼저 말하고 다시 코레아라고 덧붙인다.
그런 나라는 전혀 모른다, 정말 모르겠다고.
나는 누슈로 네 아이의 손바닥을 번갈아가며 이렇게 적어준다.
~¡^*. ~¡^*. ~¡^*. ~¡^*.
그의 파란 눈이 누슈를 따라 흘러간다. 그의 손에는 익숙한 로고의 핸드폰이 들려 있다. 나는 바로 그 폰의 나라라고 말한다. 그는 말한다. 나는 알아듣지 못한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발음이다. 까마득한 은하수 주조장 같은 발음.
그곳에는 코레아는 없고 지금 바로 앞에 선 검은 머리 여자는 있다. 별 세 개의 삼성은 없고 샘슝은 있다. 있다없다있다없다.
나는 그곳에서 내가 임의로 이름 붙인 스페인 남자 오베라는 부동산 중개상을 만났고 그의 손에는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벽돌 크기의 스페인어 사전이 있다. 나만의 누슈로 그 시간을 어떻게 표현할까. 사전, 영원의 돌로 만든 사전, 그 서지학이라는 웅얼거림을.
누슈는 여자들만의 기호다. 우리는 이 기호로 추억을 기록할 수 있다. 그때 그 특정한 순간을, 그 오롯한 시간을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언어로 어떻게 표출해낼 수 있을까. 눈을 감고 누슈로 상형해 본 그날의 추억은 영구보존법으로 누워 있는 미라의 투명한 살갗.
다음은 어떤 작가가 독자와 누슈로 나눈 어느날의 대화이다. 게재되었던 잡지는 절판되었다고 한다. 잡지의 제목은 ‘시시각각’이었다고 전해진다. 그후 작가는 여행 도중 실종되었다.
-작가님만의 누슈로 작가님의 작품은 어떻게 표기되는지 살짝 알려주면 안될까요?
아직은 저를 잘 모르네요. 찾아가는 중. (;&!)"?<*
저의 누슈는 매일의 첨삭;&!과 '악화되는 공백'속 은일자(;&!), 단일한 옷걸이와 질문들 )"?, 세계를 응시하는 눈?<*, 꼭맞춤이 닫고 여는 쪽창, 때로 바깥에서 살짝 열리는<*.
시시각각 생각은 달라져요. 아직은 저를 잘 모르네요. 찾아가는 중. (;&!)"?<*, 그래서 고정되지 않으려는 도끼와 자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