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의 '길들지 않는 땅'
에이프론 두른 아가씨가 쭈그리고 앉아 지우려고 애쓴다. 가게앞 작은 흑판, 어제 내린 비가 주룩주룩 글씨를 흘러내리게 한, '모든 것이 그렇듯, 는 내일부터.'
' 는' 무엇일까. 비는 거기에 무슨 글자를 지우고 다시 써넣으려 했던 걸까.
한 줌 머리칼이 보랏빛인 그 아가씨는, 가끔 그 가게를 흘러나와 음음음 입술을 부비며 영혼을 기화시키는 저 남자들은, 모든 것이 그렇듯, 내일부터 무엇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프리모 레비가 그랬듯, 칠면조 깃털을 심으면 칠면조들을 재배할 수 있었을까. 깃털 하나가 칠면조로 무럭무럭 자라는 내일은 언제나 예비되었으나 불가능한 내일.
줌파 라히리Zhumpa lahiri의 '길들지 않는 땅'을 읽는다. '복잡과 불화'의 이 이질적인 적응 불능의 '붉은 행성.' 그곳에서 도시락을 남몰래 펼치고 '원더 브레드'를 한 입 베어먹는다. 감자 카레 샌드위치를 싸면 빵이 초록색이 된다는 사실.
혼자 숨어 먹던 수치의 모욕의 불화의 부끄러운 고립의 초록빛 빵. 감자의 변색으로 초록빛이 된 샌드위치.
빛에 감염된 감자는 파래진다. 파란 감자의 초록 빛이 물든 샌드위치를 먹고 난 뒤 파란 입술. 파란 이빨. 파란 혀. 파란 내장. 그 파란 곤궁과 궁핍.
모든 것이 그렇듯, 제대로 격식을 갖춘 '양상치가 하늘거리고 토마토가 살캉하고 치즈와 햄이 얄판한 샌드위치는' 내일부터. 그런 반질하고 안정된 온건한 삶은 내일부터.
초록 소파의 염료가 가진 차츰차츰의 독성처럼 벵골인인 아버지가 결코 이민자의 땅에서 끊임없이 오늘을 유보하고 지연시키며 '원더 브레드'를 살아내야 했던 나날들.
오늘에 길들여지지 못했다면 '내일'이라는 미지의 대륙에 어떻게 길들여질 수 있었을까.
센 아주머니는 말한다. 바다를 가리키면서 저 파도가 빨랫줄에 걸린 사리 같다고.
인도 여자들은 이 낯선 땅에서도 사리를 두르고 붉은 점을 미간에 찍고 활보한다. 모든것이 그렇듯 ' 는' 내일부터. 모든 적응과 길들여짐에의 거부.
소설 속의 아이는 장난감들을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신문지 크기의 밭이랑에 심는다. 분홍색 고무공, 레고 트럭 몇 대, 별이 새겨진 나무 블록. 그리고 부치지 못한 아버지의 엽서.
새로운 땅에서 정착한다는 거, 정주하고 번식하고 전파하고 재배해야 했던 내일이라는 밭이랑.
비의 얼룩이 감추고 있는, 에이프론 두른 아가씨가 다시 써넣으려고 했던 ' 는' 무엇일까.
분홍색 공에 물을 준다. 레고트럭이 잘 자라도록 흙을 북돋아준다. 나무 블록을 솎아준다. 부치지 못한 엽서가 시들지 않도록 벌레를 잡아준다.
오늘도 한 입, 이 '길들여지지 않는 땅'에서 베어물고 가는 이 속악하고 가난한 '원더 브레드.'
그러나 오늘의 누옥이 내일의 고대광실이 될 수 있을까. 오늘의 비루가 내일의 탐닉이 될 수 있을까.
비를 머금은 나무들이 철철 흘리는 푸른 피. 그 피가 내일부터 해야 할 어떤 내밀한 약속의 하혈같아.
에이프론을 두른 아가씨는 ' 는'을 끝끝내 빈 공백으로 남겨두고 주방에 남겨둔 설거지를 하러 갈지도 모르겠네. 그러면 칠면조 재배법처럼, ' 는'은 지나가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거칠게 퍼덕거리겠네.
깃털 하나로 칠면조를 재배할 수 없지만, 만일 그런 내일이 있다면 그 미망에 흔쾌하게 빠져, 모든 일이 그렇듯, ' 는' 내일부터.
존재하지 않는 '원더랜드'만큼이나 비현실인 '원더 브레드'의 파란 입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