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숙#아르코문학창작기금선정작
-아테를 위하여
인체의 신비전
그 전시관 회랑처럼
복도 끝이 뵈지 않아서 하얘
내가 선생이라서 하얘
네가 제자라서 하얘
제발 한 번만 얼굴 보게 해 줘요
우리는 선생과 제잔데
왜 면회 불가란 말이예요
사이에 놓인 자동 유리문
끝내 보여주지 못한 관계증명서가 하얘
직계가족만 면회가 된다구요
요요요요요요
카운터에서 간호 조무사는
얼굴도 들지 않고 똑같은 말만 반복해
아무리 굴뚝을 들락대도
얼굴이 더러워지지 않는 굴뚝 청소부 같아
누가 발등에
날개를 달아준 거야
겨드랑이도 아니고 어깨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발등에
몇 시간 동안
대기실 바닥을 디딜 듯 말 듯 떠다니면서
우리 관계는 증명이 안 되고
내가 질끈 밟은 내 머리는 깨질 듯 아프고
인터폰 너머 제자 목소리가 하얘
걱정하지 마시고 돌아가세요
이제 저에게도 얇은 뼈 같은 게 생겨
창 밖으로 뛰어내리지는 않으리란 걸 알아요
백양나무 대기실이 하얘
멜론 맛 시럽 현탁액이 빛을 튕겨내서 하얘
공산품은 반입되지만
오렌지는 다시 갖고 돌아가세요
조무사가 들고 간 물건을 일일이 검사하며
오렌지는 어떤 부작용을 갖고 있는지
검증이 안 되서요
그 너머로 보이는
허공에서 내려오는 기계식 약 트레이들
근데 선생님, 저는 처방전 봉투에서 약을 꺼내 늘어놓고 꽃도 만들고 나비도 만들고 별도 만들어요 그리고 주섬주섬 담아 바로 쓰레기통에
봉투째 버려요
창 밖 오래된 상가 건물
금강종합보수 입간판이 하얘
백양나무 목소리가 하얘
제자 뺨에 보조개가 하얘
선생님
보조개는 세포 하나가 빠져서 생긴 거래요
영원히 보수되지 않는데요
우울이 거기 고여 마르지 않아요
요요요요요
백양나무는 금강이 아니라서 하얘
(그냥 피라미이고)
종합이 아니라서 하얘
(그냥 부분이었고)
보수가 아니라서 하얘
(그냥 무너지기 직전)
백양나무 흔들릴 때마다 수관에 파득파득
피라미떼들이 몰려다니는 것 같아요
요요요요요요
그때마다 제 몸 속으로
얇고 부서지지 않는 뼈들이 들어앉는 게 보여요
하루에도 수천 번
발등에 달린 날개가 뒤뚱뒤뚱
머리를 밟고 가도 저는 넘어지지 않아요
잉어도 망둥이도 쏨뱅이도 아닌
피라미는
몸이 얇아 어떤 위험한 강물도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요
선생과 제자는
직계가족이 아니라서 하얘
대기실에서
나는 뒤뚱거리며
몇 시간이나 몇 만 년 시간이나
백양나무가 짜나가는 미망의 실
그 그물망을 보며
굴뚝 청소부처럼 앉아있어
*아테Ate, 미망(迷妄)의 여신, 발등에 날개가 달려, 사람들의 머리를 자주 밟게 된다. 그래서 이 미망에 사람들은 자주 걸려 넘어진다.
*습지에헌화, photo by 이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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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문학창작기금수혜자의무연재,11월18일까지30편. 지켜봐주세요. 매일2편씩15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