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는 최정례 시인을 위하여
가는 봄이여
새 울고 고기 눈엔
어리는 눈물
마츠오 바쇼오의 하이쿠를 읽는다. 가는 봄이 아쉬워 고기 눈에 어리는 눈물이라니! 똥그란, 꿈쩍없는, 쬐그만 단추같은 그런 눈 속에 언제 감정의 일렁거림이 있었던가.(지금 마악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르네 마그리뜨의 ‘진실의 추구’라는 그림. 그속에는 바다에서 이탈한 물고기가 규격화된 벽돌을 쌓아올린 벽에 기대 직립해 있다. 물고기는 삶에서 고립된 인간의 모습을 환유하는 듯하다. 화면 왼쪽에 놓여 있는 뻥뚫린 사각창 너머로 바다는 직선으로 굳어 있고 구름은 그 뒤쪽으로 마구 흩어져 있다. 처음부터 바다는 ‘철썩거리는 소리’를 잃어 버린 소리가 소거된 바다다. 그렇게 바다를 박탈당한 고기도 결코 눈물 따위를 흘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눈에 맺히는 눈물이라니. 고기의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이라니. 그의 시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눈먼 물고기로 살았습니다. 지느러미를 떼내고 바위 그늘에 숨어 오래 앓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 이런 부신 날에는 맑은 물이 솟고 가슴 한 쪽이 뻐근해지는 것입니다
- 능소화가 있는 마을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며 고기 눈에 괸 눈물을 떠올린다. 그의 <없는 허공나무>에 매달리는 맑고 질펀한 눈물을. 그 눈물 구슬들. 차고 매끈하고 단단한 것이 아닌 삶의 때와 똥을 거름으로 수확한 물렁물렁한 단물이 가득 든 하늘복숭아의 육질같은 눈물복숭아들.
어느 가을 그와 나는 지는 빛이 여기저기 엉겨 있는 올림픽 공원에 간 적이 있다. 그 빛을 흩뜨리려는 듯 둔덕의 억새는 자주 흔들렸다. 그와 나는 잘 다듬어진 잔디밭을 에워싼 지루하도록 긴 철책을 돌아 산길답지 않게 시멘포장이 된 퍽퍽한 길을 한참이나 올라갔다. 불쑥 무덤이 나타났다. 올림픽주경기장의 메인스타디움이 내다보이는 곳에 남아 있는 누군가의 무덤. 무덤 앞에는 돌로 지은 숫양이 있었다. 형체가 뭉개지기 시작한 다른 곳과는 달리 숫양의 성(性)은 정말 실제의 것처럼 튼실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한동안 유명했던 유홍준이 찬탄했다는 그것. 그는 나에게 그걸 보여 주었다. 육탈을 끝낸 뼈다귀마저 그러쥐고자 하는 풍요로운 후생의 꿈이 거기 응축된 것일까.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농익은 저 불의 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가 ‘꽃핀 복숭나무에게’에서 그린 그가 그렇게 낳고 싶다는 하늘복숭아와 참으로 비슷하다.
당신의 앞마당에 붉은꽃 헝클어뜨리고 복숭나무 한 그루 서 있습니다
뜻도 모르고 책장을 넘기는 아이처럼 복숭나무 그 난해하나 아름다운 한 그루 책 앞에 머뭇거립니다
사실 나 머리 빗고 꽃 핀 복숭나무에게 시집가고 싶으면서 딴청을 부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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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하늘복숭아를 낳아 가지에 매달게 된다면 나도
오랜 목마름 잊고 하늘 복숭아 하나를 낳아 바치리라 바치리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꽃핀 복숭나무에게
파브르의 곤충기에는 머리에 황금투구를 쓰고 태양을 굴려 하루를 열고 닫는 스카라베 사쿠레-쇠똥구리가 나온다. 그 쇠똥구리는 꼭 물구나무를 서서 똥구슬을 굴린다. 넙적하고 활처럼 구부러진 앞다리로 쉽게 구슬을 밀어내지 않고 물구나무를 서서 구슬을 뒷다리로 밀어내는 쇠똥구리는 참으로 어리석다. 아니 치열하다. 쇠똥구리는 질펀한 똥 속으로 길을 내고 똥을 뭉치고 깎고 잘라내 구슬을 빚는다. 이런 점에서 모든 시인들은 쇠똥구리를 닮았다. 그도 예외가 아니다. 그가 그렇게 낳고 싶어하던 하늘복숭아. 대상에게 시집가 그 대상과 하나가 되어야 써지는 좋은 시라는 것. (이집트 사람들은 쇠똥구리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태양을 굴리는 신의 화신으로 생각했다 한다.) 그렇다면 쇠똥구리의 똥구슬은 태양이다.
그의 태양 속에는 호랑이 새끼들이 우글우글거리거나 돌밭이 지글지글하다. 무쏘 앞에 쓰러진 사과장수가 있고 수치의 구덩이인 말이 길길이 뛰어오른다. 시인의 눈은 돌출되어 있거나 깊게 패여 있다.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바라보려는 자들. 사물의 밋밋한 거죽에 싸여 있던 시의 핏줄에 붉은 피를 휘돌게 하려는 자들.
내가 알고 있는 그는 따뜻한 시의 엄마다. 사만사십육 명의 아이를 낳았다는 아폴리네르의 여인처럼 그는 하찮은 돌에게까지 젖을 물리고 돌을 재우고 돌밭을 일군다. 시라는 똥구슬에 말의 알을 낳고 새끼를 먹인다. 나는 좋은 재료로 만들어진 그의 착한 시가 좋다. 광기로 얼룩지지도 탐닉도 탕진도 없는, 향기롭고 질좋은 똥으로 만들어진 그 구슬 속에 알들.
돌멩이 따뜻하구나
돌멩이 착하구나
돌멩이 잘도 자는구나
달래고 달래어 재웠습니다
-돌멩이 어떻게 새가 되었을까
가끔 휙 새같은 것이 스쳐갈 때 나는 그의 <없는 나무> -백탄처럼 시간이 스러지거나 그 때문에 목젖에서 맹수처럼 끓는- 태양이 죽죽 떠오르고 만상이 흘러가는 나무의 실체를 본다. 그가 띄워올린 허공나무에 매달리는 쌉사름한 잎사귀들. 생은 결코 달콤하지 않다. 오히려 비릿하거나 쌉싸름해야 한다. 그래서 봄날 나비는 그 냄새를 쫓아 수십리를 날아오를 수 있고 잎에 매달려 파들거리며 알을 낳을 수 있다. 사마귀도 알을 낳고는 고통으로 얼마동안을 꼼짝하지 못한다고 한다.
제발 피에 젖은 이 몸뚱이라도
불붙여 강물에 던져다오
창밖에 미루나무 숯으로 주저앉고
- 해산
그가 시를 낳는 고통도 이러하리라. 누군가 쇠항아리를 깨부수듯 달겨붙는 박쥐떼를 떼내며 하나의 질펀한 똥구슬을 빚기 위해 혼신을 다하리라.
우리는 이따금 신촌기차역 앞 찻집에서 만난다. 기차둑 아래로 길보다도 낮은 집들이 먼지로 지워진 희미한 점집간판을 걸고 서 있고 기차역에는 무개화차들이 서 있거나 빈 레일들이 햇빛을 튕겨내고 있다. 어느날 보니 기차길을 따라 심어논 향나무를 걷어내고 방음벽을 쌓아 버렸다. 그는 그것을 아쉬워했다. 그의 어린 시절에 남아 있는 기찻길 옆 풍경 때문이리라. 그의 시에는 기차가 많이 등장한다. 실제로 역무원이었던 아버지를 기다리는 그가 기찻길에서 배운 것은 시간에 대한 거다. 언제가는 한 생이 다하고 말 시간에 대한 걸 그는 기찻길을 통해 거의 생래적으로 터득한 듯하다.
기차가 지나가 창마다 단풍잎같은 꽃불을 매달고 기차가, 거기 가방을 들고 서 있었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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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갈 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던 적이 있었어 기차가 다 지나가고 기적처럼 한 생이 후딱 지나갔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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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얼굴들 다 사라지고 몸을 잃은 내가 반딧불보다 작아져서 허공을 흘러다녀 저 소리 기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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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 불꽃은 바퀴소리를 끌고 가 작아진 나는 몸이 없어 바라만 보고 서 있어
-나뭇잎에서 나뭇잎으로
그가 종종 시간이라는 기차를 타고 과거, 현재, 미래라는 별을 오가는 건 다 어린 시절의 기억 탓이리라. 그 별들은 유수로처럼 잘 이어져 서로 흘러들고 흘러간다. 시간의 또랑에 부유하는 잔재물들은 그 유수로에서 잘 정화되어 흐른다. 일상적으로 절단된 시간이 아닌 통합된 시간. 분노와 죽음조차 맑게 걸러내 시 속에 들어온 시간. 그래서 그의 시는 늘 잘 절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아득한 먼지로부터 몸뚱이를 얻은 것들이 다시 먼지로 환원되는 시간. ‘지락와도’에 나귀가 아득한 시간으로부터 그의 눈 속으로 걸어 들어와 흙발을 툭툭 터는 시간.
그는 한동안 국립박물관에서 하는 박물관 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경복궁의 꽃담같은 것들과 그의 첫시집 서문의 내용들은 그때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듯하다.
흙으로 빚은 물새를 보았다. 흙으로 빚은 작은 배를 보았다. 흙으로 빚은 짚신 한 짝도 보았다. 그것들은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천 년 전 신라나 가야에 살던 이들은 멀리 떠나는 이를 위하여 새를, 배를, 짚신을 무덤에 함께 넣어 주었다. 그들의 몸을 빌려 멀리 가 보이시라고
그때부터 그는 시간의 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시를 쓴 것 같다. 그의 두번째 시집 ‘햇빛 속에 호랑이’ 1부는 전부 시간에 대한 것으로 가득차 있다.
그는 이화여고 재학 시절 문예반 반장이었다. 서울고, 경복고, 경기고 연합 문학써클인 ‘서우회’에서 그는 활동을 했다. (소설가 이균영과 최시한이 당시의 멤버다. 중앙일보 문학 담당 기자인 이경철과 시인 황인숙이 그 뒷세대다.) 연세대 문예백일장에서 입상하기도 하고 교내 소설공모에서 ‘장마’라는 작품이 당선되어 교지에 게재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고대 국문과에 들어가서는 창작에 힘쓰지 못했다. 그는 문학이 두려워서 문학을 피해 다녔다. 어쩌면 ‘헛것’일지도 모를 문학이 끼칠 상처가 두려워 그는 도망을 다녔다. 그는 삶에 발딛고 있어야 할 문학이 종종 그렇지 못한 게 무서웠다. 시간은 빠르게 그를 세상 속으로 밀어넣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을 얻고. 그러나 삶은 그를 조금씩 삭아내리게 했다. 그것은 훗날 그의 시에 드러난 삶의 다양한 경험들로 육화된다.
문학이 내 존재의 뿌리 전체를 흔들어 결국은 이곳 이 자리의 현실에 뿌리 내리고 살 수 없게 할 것만 같았다 ......... 나는 문학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안간힘을 썼다. 잘 먹고 잘 살아 보겠다고. 나는 덧없는 집을 마련하고 있었다. 허물어지기 마련인 살을 위하여 열심히 미련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곳에도 뿌리내리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허공을 떠다닌다 .......
시가 나를 감금해 놓은 현실의 한계를 밀쳐줄 것임을. 시만이 제한적이고 덧없는 내 존재를 터트려 실현시켜 줄 것이라고 매달린다 어리석게도.
- 1997 안암의 젊은 시인들 ‘시작 노트’
그런 그에게 다시 시가 찾아들었다. 그때 그의 마음을 반영하는 시가 바로 ‘거울 속에 거울 거울 거울’이다. 이 시에는 당시의 마음의 풍경이 잘 그려져 있다.
이마 위로는 산이 보이고
산 위에는 창문처럼
작은 밭이 있었던가
그랬던가
정거장 끝으로 헐벗은 나무들 늘어섰던가
그때도
애를 업고 섰었던가
빈 손의 추운 남자들 대어(大魚)의 살 다
뜯긴 채
뼈만 끌고 돌아오는 곳
..........................
쓸데없이
지나간 시간들을 내 몸 속에 쌓아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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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힌 아이 울다 잠든 지 오래고
오래고 오래 전이라서
뚜렷하지 않던가
그때도 바람이 불었던가
바람이
내 얼굴 한쪽을 때리면
내 몸에서 삭은 종이 부서져
가라앉는 소리 났던가
- 거울 속에 거울 거울 거울
아마 그의 문학은 그의 시 ‘천사’에 나오는 것처럼 아무도 증거할 자도 없는 폐광처럼 버려져 있던 듯하다. 아니 은폐되어 있던 듯하다.
그는 그가 사라진 줄을 모른다
바보처럼 한 때 천사였던 것도 모른다
너무나 깊숙이 사라졌기에
버려진 폐광의 내 속을 캐고 캐도
그는 이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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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비춰볼 웅덩이
그를 파낼 유일한 광부인
나조차 사라지게 되면
그는 아예 없었던 게 된다
그가 잠시 찬란한 천사였던 걸
증거할 자도
세상 천지도
-천사
그런 그에게 기꺼이 시라는 천사를 캐내는 유일한 광부로서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무슨 광고회사에 다니다 그만두고 중학교에 들어온다. 그는 거기에서 같은 국어선생이었던 내 친구 김희자, 시인 윤제림의 아내를 만난다. 정작 그의 주변에는 시를 쓰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가까이서 시를 쓰는 사람을 만난 게 윤제림이 처음이었다고 하니. 그때부터 자기도 시를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고 윤제림을 만난 자리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 즈음 서울예전에서 교사를 위한 시창작프로그램을 개설했다. 그는 거기에서 오규원 선생님을 만난다. 그때부터 그는 시를 쓰기만 하면 오규원 선생님께 보인다.
89년 그 무렵부터 우리는 만났다. 화요일 저녁마다 명동 한복판에서. 왜 그곳이었는지. 남들이 쇼핑을 하고 외식을 즐기며 명동 거리를 쏘다닐 동안 우리는 바보스럽게 시에만 매달렸다. 음식점 환풍기가 틀어내는 갖가지 질식할 것같은 냄새와 늘 훅훅거렸던 열기가 지금도 기억난다. 우리는 백지에 또박또박 손으로 써온 시를 거의 경배하다시피 했다. 서로 나누어 읽어보고 평을 하고. 끝난 뒤에도 우리는 그 보잘것 없는 시를 함부로 구겨 버릴 수가 없었다. 지금도 내 서랍 속에는 그때의 것들이 차곡차곡 간직되어 있다. 그때는 누구든 떨렸다. 조바심을 쳤다. 그는 누구보다 적극적이어서 가장 먼저 시를 내밀고 평을 들었다. 남의 시를 논할 때도 그는 쫄깃한 말솜씨로 문제점을 지적해 주곤 했다. 우리는 그때 조심스럽게 건넸던 말들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메모했다. 그후로 우리는 만날 때마다 시를 들고 간다. 써논 시가 없을 때는 옛날 공책이라도 뒤져 갖고 나간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행복하다. 스스럼없이 시를 보여 줄 수 있는 친구가 있으니.
뭔가 할 말이 많던 우리는 시 속에 모든 걸 다 집어넣으려 했다. 두렵지만 우리는 마음 속으로 늘 오규원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셨다. 그분의 말씀은 혼란스런 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주곤 했다. 좋은 시는 사실의 정확한 인식에서 나온다는 것. 시 속에도 하나의 내밀한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 <말 하나하나의 저 밑에서 나는 나의 탄생에 참석할>수 있다는 그분의 말씀은 함부로 시 속에 모든 것을 넣으려는 우리의 욕심을 비우게 했다. 그가 두 번째 시집을 냈을 때 그 칭찬에 인색하시다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그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는 선생님의 제자 중 제 길을 가는 몇 사람 안에 든 것이다.
이진명 시인이 첫시집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를 냈을 때 우리는 조촐하게 민음사 앞에서 축하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이진명 시인과 그는 등단한 해가 같고 동갑내기다. 같은 시기를 산 그들은 비슷한 모양의 추억을 갖고 있을 테고 그래서 그랬던지 아주 친하다. 시 속에 그려지는 풍경도 비슷하고 아픔 따위를 꾹 눌러 둔 것같은 경건한 무엇이 시의 안쪽을 흘러가는 것도 그렇다. 그들의 시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아주 순정적인 것이 깃들어 있다.밖으로 흘러 넘치지 않는 어쩌면 밖으로 쏟아내지 못한 채 안에 담아두는 그런 안간힘같은 아름다움은 우리를 아주 쓸쓸하게 한다. 그의 ‘팔정사 백일홍’이라는 시에는 그 즈음 성북동에서 혼자 살고 있던 이진명 시인과 절에 놀러가 백일홍꽃잎이 벌어지는 절마당에서 그 꽃이 늦가을까지 환할까 어쩔까를 걱정하는 예쁜 비구니 같은 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는 다니던 학교를 10년만에 그만뒀다. 학교를 다니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딸 다솔이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이후로 더욱 시에 전념할 걸 보면 딸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 즈음에 쓴 시가 바로 ‘라면을 먹는다’이다.
라면을 끓인다 혼자 낮에 냄비 가득 물을 붓고 냄비 밖으로 튀어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끓는 물에 라면을 분질러 넣는다 달걀을 풀어젓고 파까지 썰어 넣으며 이왕이면
화려한 라면을 먹자고 혼자 말해 본다 어제는 사표를 쓰고 그래 튀어나가 보자 심정으로 10년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라면을 먹는다
정말 그는 한낮에 라면을 끓이며 알 수 없는 허기를 시로 달랬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그는 진정 부글부글 끓는 세상의 얄팍한 틀로부터 자유롭게 튀어나간 자이다. 나는 세상이 요구하는 시간을 거절하고 그가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하려 했던 그의 용기가 늘 부러웠다. 그는 부지런히 발표를 했다.
언젠가 그가 고대 사회교육원에 시강의를 할 때 가 본 적이 있다. 무슨 시던가. 이상의 시였던가. 그때 나는 그가 누구에게 이상의 시세계를 가르치기보다 자신이 공부하고 있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의 ‘3분자동세차장에서’라는 시에 이상의 동화 ‘황소와 도깨비’가 적절히 수용되어 있는 걸 보면 내 생각은 더욱 틀림이 없어진다. 또 그 시를 발표하기 전에 자신의 수강생들과 먼저 시를 읽고 평을 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드센 시 쓰는 사람들. 나같아도 그렇게는 못했으리라. 자신이 가르치는 이들에게 시를 내밀고 그들의 말을 수용해 몇 차례나 시를 고치는 일은.
광광 드럼이 터지고 금속성 기타가 질주하는 청각적인, 무언가를 듣도록 강제하는 폭발적인 불의 시대, 80년대를 우리는 거쳐왔다. 느릿느릿한 물을 보여주는, 현 위를 흘러가는-그가 최근에 발표한 시에는 청산별곡에서 차용한 사슴이 해금을 혜노라란 구절이 나온다. 우연이 아니리라- 90년대의 마지막 해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기완의 록 & 론(論)에서 부분 인용>
가짜눈물이 있다. 어떤 결정적인 순간 재빨리 꺼내 붙인다는 포스라름. 얼마 전부터 일본에서 발매되어 매진되었다는 그것. 흘러내리지도 말라붙지도 못하는 차디찬 구슬같은, 현대인들의 눈물에 대한 향수가 만들어낸 또다른 욕망의 기호, 가짜눈물.
어리석어라, 나여.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이런 상상을 한다. 어떤 나라가 있다. 그 나라에서 가장 잘 팔리는 건 시집이다. 사람들은 시집을 읽고 받은 감동을 밤새 눈물로 지어 대낮에는 뺨에 붙이고 다닌다. 그것은 사람들이 걸어다닐 때마다 별처럼 반짝반짝 흔들린다. 인도 여인들이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보석처럼. 하나의 증표로
그의 시에는 이런 눈물이 배여 있다. 우리는 잘 그려진 그의 안온한 물의 그림으로부터 위로받는다. 치유받는다. 느릿느릿한 착란의 길에서 사유와 반성이 낳은 눈물의 그림들.
그의 시에도 두 가지 햇빛이 나온다. 무언가를 들려주는 햇빛과 보여주는 햇빛.
부동자세로 두 눈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는 거라 빠빳한 수염털 사이로 노랑 이그르한 빨강 아니 불타는 초록의 호랑이 눈깔을
햇빛은 광광 내리붓고
아스팔트 너무나 고요한 비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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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통 염통 다 내놓으시지
-내장도 마저 꺼내 놓으시지
저 햇빛 사나와 햇빛 속에 우글우글
아이구 저 호랑이 새끼들
-햇빛 속에 호랑이
우리를 짓누르는 여러 억압의 기제들. 개인사의 질곡이든 사회관습적인 질서든 그때의 햇빛은 광광 내리붓는 청각적인 것이다. 희생을 강제하는 대상에게 그는 쉽게 저항할 수가 없다. 그때 차용하는 시적 장치 역시 떡 하나 주지 않으면 널 잡아 먹지 하는 민담이다. 불처럼 이그르 타오르는 호랑이 새끼의 눈깔로 그려진 햇빛은 그것이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라도 민담처럼 우리에게 무언가를 듣도록 강제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80년대 식의 햇빛.
그러나 또 다른 햇빛은 느릿느릿 흐르는 물같은 것이다. 물과 같이 촉촉히 스며들어 상처를 치유하는 햇빛 -이러한 치유의 이미지는 화평약국이 한없이 불을 켜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것은 민화와 같은 그림을 우리에게 펼쳐준다.
산벚꽃나무 기운없이 늘어진 걸 보니
봄이 왔지요
냄비를 부시다 말고
앓아 누운 여자 그림자를 안아다
양지쪽에 눕히고
햇빛을 깔고 햇빛을 덮어주고
종잇장같이 얇은 그녀도 하얗게 늙어가지요
산벚꽃나무 장님처녀 눈곱 달 듯
한 두 송이 꽃 매달지요
그녀의 이마가 그녀의 볼이 따뜻하지요
아니 차디차지요
이 봄은 믿을 수가 없지요
그녀를 눕혔던 자리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그녀가 천천히 날아가지요
산벚꽃나무 너무 늙어 겨우 꽃잎
두 장 매달았다 떨구지요
또 봄은 가지요
그녀는 세상에 없는 여자고
그래도 그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지요
산벚꽃나무하고 여자 그림자하고
-산벚꽃나무하고 여자 그림자하고
나는 그의 이 시가 좋다. 실향민이 많이 살던 내 어린 날의 동네에도 움막에서 기어나온 새깜쟁이 사내가 냄비를 씻는 풍경를 본 적이 있다. 사내의 상처가 어떤 것이든 그가 사는 곳은 굴딱지같은 컴컴한 어둠 속, 두고온 고향 혹은 자궁같은 곳이어야 하고 그가 현실 속에서 간신히 할 수 있는 것은 냄비를 씻는 일이다. 사내와 사는 이는 벚꽃나무 그림자같은 여자인지 모른다. 그 여자를 안아 햇빛을 깔고 덮어주는 그의 손길은 가히 제의적이다. 그때 햇빛은 어떤 메시지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준다. 그림자처럼 조용히. 나는 이런 그의 시를 편애한다.
광광 내려붓는 햇빛에 내 귀는 쉽게 망가진다. 조용히 여자 그림자를 안아올리는 햇빛은 나를 치유한다. 그의 시가 안온한 물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은 이렇게 볼 때 당연한 귀결이다.
소낙비 쏟아지는 게 좋아 소낙비 속에 물레방아간 같은 소낙비 매맞는 움막 같은
수숫단 같은 수숫단을 비집고 들어가는 3분 자동세차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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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도깨비처럼 황소 뱃속에 세들고 싶었지
-3분 자동 세차장에서
그가 3분 자동 세차장에서 물의 세례를 받을 때 씻겨지는 것은 차가 아니라 그의 과거다.그의 과거의 고통은 아무리 아픈 것이라도 그곳에서 씻겨지는 것으로 환기된다. 물은 그 고통을 부드럽게 껴안아 그의 내면으로 돌려준다. 마찬가지로 ‘무쏘 앞에 흩어진 사과장수’에서의 무쏘 역시 그 자리에 다른 차종이 들어온다면 감동이 없다. 반드시 무쏘여만 한다. 물을 상실한 무정물의 철덩어리에 불과한 소. 그렇기 때문에 한순간 흩어진 사과장수의 죽음과는 무관할 수밖에 없다. 시인은 자신에게 우리에게 본 것을 말해보라고 다그치지만 아무도 그런 흔한 죽음 따위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에게 물은 어떻게든 회복되어야만 한다. 우리 내면의 캄캄한 바닥 속에 흐르고 있을 물은, 눈물은
이제 그의 작업은 제대로의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그가 지면을 통해 나에게 준 시 ‘보푸라기’에 인용한 백석의 시에서처럼 까마귀도 일가를 이루고 묘비가 깨져 금은보화를 땅에 묻는 긴긴 세월동안 나는 그가 끝까지 시의 길을 가기를 바란다. 부디 그여, 시에서 일가를 이루기를.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며 마츠오 바쇼오의 하이쿠를 떠올린다. 그의 풍요로운 눈물복숭아를 떠올린다. 가는 봄에 고기 눈에 어리는 눈물이라니! 무정한 고기 눈에 어리는 눈물이라니!
*최정례 시인이 1999년 김달진문학상을 받았을 때, ‘돌멩이와 서정시’에 실었던 글이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나의 ‘시의 언니’를 넘어 ‘시의 엄마’다. 우리는 서로를 배태하고 있다. 그렇다고 믿는다.
#최정례시인#이문숙시인#이진명시인#오규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