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런 시간이 되었나 싶었다. 흥부 부인은 오후가 되면 바쁜 와중에도 한 번씩은 별당에 들러 흥부와 사냥꾼들, 그리고 연수의 상태를 살폈고, 때로는 간식거리를 대동하여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부인은 연수에게 다가와 말했다. 시선이 또렷했다.
"두려우냐."
연수는 부인을 마주보았다.
"두렵습니다."
부인은 깊은 눈으로 연수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렇겠지."
그리곤 돌아선다. 남자들의 열띤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방을 등진 부인이 말했다.
"잠시 걷지 않겠느냐?"
부인의 말씨는 부드러웠고 어디까지나 권유에 가까웠다. 연수는 잠시 고민했다.
내딛는다.
연수의 발걸음이 부인의 뒤를 따랐다.
부인은 정자를 둘러싼 정원으로 향했다. 연수는 그 뒤를 따르며 작지만 아늑한 별당의 모양이 부인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줄곧 묻고 싶었던 것이 있다."
부인의 말이었다.
"어쩌다 아주버님을 구하고자 마음을 먹었느냐?"
잔잔한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물소리 위에 얹혔다. 평이하게. 그래, 평이하게.
답하면 그만이다.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네 입으로도 복수를 원했노라 말했지. 어찌하여 마음이 바뀌었느냐."
부인이 연수를 돌아보았다. 그 얼굴이 한없이 다정하였다.
"아주버님을 용서하였느냐?"
연수는 꼴깍 침을 삼킨다. 용서하였을까. 그것을 용서라할 수 있을까.
연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용서하지 못 하였습니다."
부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너를 이리 행하게 만들었느냐?"
그 말에 숨은 작은 의심이 신발 속에 들어간 돌조각처럼 밟혔다.
연수는 답한다.
"두려웠습니다."
"무엇이?"
"무언가 제가 모를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두려웠습니다.
연수는 고백했다.
"제가 아는 세상은 마냥 두렵기만 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험하며, 마음 놓고 내려앉을 곳 하나 없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증오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어느샌가 부인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가 연수에게 다가온다.
"어디에도 믿을 것이 없었습니다. 마음 편히 몸을 누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가 미워서 모든 걸 파괴하고 싶었습니다. 매 순간 발톱으로 그의 목을 쥐어 뜯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제가 너무 두려웠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것을 보아도,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연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부인의 손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연수의 손 위에 얹혔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잘 모르겠습니다."
연수의 눈에서 다시 한 번 눈물이 흐른다.
"저는 제비입니까?"
고개를 젓는다.
"사람입니까?"
"그도 아니면 구렁이의 사술로 만들어진 요괴입니까?"
부인은 말없이 연수를 보듬었다. 도닥도닥 등을 두드리는 손이 다정했다.
울음을 진정시키고 시뻘개진 얼굴이 가라앉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부인과 연수가 남자들에게 돌아왔을 때는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부인은 흥부와 사냥꾼들에게 인사를 하고 연수를 데리고 그들의 식사가 준비된 방으로 갔다.
"의심했었다."
부인이 말했다. 밥상을 앞에 두고 부인의 고뇌가 길었다.
"네 말대로라면 너는 이무기의 하수인이다."
그렇지 않느냐.
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속이 쓰렸다.
"그렇다면 그 괴물이 바라는 것이 더 많은 목숨이 아니라고 어찌 확신할 수 있겠느냐."
부인은 한숨처럼 말하곤 수저를 든다.
"그 말씀은…?"
연수가 조심히 운을 뗀다.
"네가 서방님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지."
아.
연수는 입을 꼭 다물었다.
그리 보여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닐까. 외간 남자에게 빌붙어 그 부인을 쫓아낸 계집이 갑자기 자기 남편에게 붙어 따라왔다. 남편은 팔자에 없던 사냥을 준비하고, 계집은 자신이 제비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어찌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연수는 송구스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말 없이 식사를 했다. 상을 물리기까지 말이 없었다.
이제는 정말로 결전의 날이 머지 않았다.
구렁이와 약속한 시간까지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앞둔 때, 흥부가 연수를 불렀다. 사냥꾼들 없이 둘만 있는 자리였다.
사냥 준비가 본격화될수록 연수의 역할은 줄어들었다. 그만큼 연수가 흥부와 얼굴을 마주할 시간은 줄어들어 근 며칠간은 인사도 거의 못하던 차였다.
흥부의 방에 들어서자 날카로운 기운이 피부로 느껴졌다. 연수는 흠칫 놀랐으나 내색 없이 흥부의 앞에 앉았다. 그러나.
한없이 작아진다.
사냥을 앞둔 탓인지 흥부의 기세는 굶주린 호랑이마냥 사나웠다. 눈을 마주하는 것이 겁날만큼 맴렬하다. 연수는 그의 앞에 앉아 있는 것이 몹시도 괴로웠다.
"잘 지내었느냐."
"챙겨주신 덕에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연수는 눈을 감은 흥부를 몰래 살핀다. 전보다 제법 다부져진 체격이 눈에 띄었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흥부는 사냥꾼들에게 부탁해 훈련을 받고 있었다. 결과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을 것이 있어 불렀다."
흥부가 말했다.
"듣겠습니다."
연수가 말했다.
"제비로 돌아가고 싶으냐."
망설임도 없이 곧장 튀어나온 말이었다. 흥부의 얼굴은 단단했다. 연수는 두어번 눈을 깜빡였다. 놀랍게도 바로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예."
쥐어짜듯 겨우 뱉어낸 답이었다. 진심이었으나 제가 듣기에도 진심으로 들리지 않았다. 연수는 당황했다.
"이무기의 사술이 너를 인간으로 만들었다면, 그것을 잡는 순간 너는 틀림없이 제비로 돌아갈 것이다."
흥부가 말했다.
"그래도 괜찮겠느냐."
목소리에서부터 진심 어린 걱정을 담아내는 것은 어떤 능력일까. 연수는 입술을 살짝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저는 제비입니다."
무언가 말을 더 해야할 것 같은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머릿속이 새하얬다. 제비로 돌아간다면 좋은 일일텐데. 왜 답하기가 어려운지 알 수 없었다.
"그래. 그렇댔지."
흥부는 고개를 끄덕인다.
"네가 그렇다면 되었다."
그게 다였다. 흥부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연수는 묘한 기분에 휩싸여 잠을 설치고 말았다.
마침내 동짓날이 왔다.
흥부가 모은 사냥꾼은 셋만이 아니었다. 흥부는 최선을 다해 사냥꾼을 모았고, 결전의 날이 되어 모인 사냥꾼은 열이 넘었다. 그들 중 일부는 별당에 머물며 함께 사냥 준비에 열을 올렸고, 일부는 동짓날이 되어 겨우 도착했다. 그러니 소란스러울 수밖에.
안 그래도 바쁜 동짓날이었다. 별당 밖은 팥죽을 쑤네 고사를 지내네 하며 바빴다. 흥부 부인은 전날부터 별당에 들르지 않았다. 별당의 사냥꾼들과 연수에게도 동지 팥죽이 끼니로 나왔다. 팥죽은 맛있었지만, 연수는 절반도 채 비우지 못 했다. 심란한 탓이었다.
연수에게 주어진 역할은 미끼였다.
구렁이의 시선을 끌고, 그의 주의를 뺏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흥부가 동행하기로 하였다. 놀부를 데려갈 수는 없으니 흥부를 대신 데려가 눈속임을 하자는 것이었다.
사냥꾼들은 아침부터 덫을 설치하기 위해 산을 올랐다. 연수는 그런 움직임이 구렁이, 아니 이무기의 눈에 띄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허나 일개 인간이 어찌 영물을 맨손으로 상대하랴. 그것도 상대는 용이 되기 직전의 이무기였다.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일 것이다. 그러니 만반의 준비를 해야했다.
흥부도 긴장을 숨기지는 못 했다. 멀리서 본 그가 바쁘게 하인들을 지휘하는 중간중간 깊게 심호흡을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숨을 들이키기가 무서울 정도로 팽팽한 공기가 별당 안에 가득했다.
날이 저물었다.
연수와 흥부가 산을 오른다. 간만에 오르는 산이 멀고 높았다.
"형님을."
흥부가 말했다.
"예?"
제대로 듣지 못한 연수가 되물었다.
"형님을 원망하지는 않느냐."
아.
연수는 작게 탄식했다.
"원망하고 있습니다."
연수의 답이었다.
"원망스럽습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어쩌면 당신도. 끝말을 꿀꺽 삼킨다.
"어찌하여 형님을 살리기로 마음 먹었느냐."
흥부가 물었다.
"어찌하여 처음부터 그것을 묻지 않으셨습니까."
연수가 말했다.
"경황이 없었지."
흥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네 선함을 믿고 싶구나."
연수는 답하지 않았다. 딱히 답할 말이 없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라고 밖에는.
이무기와 자주 만나던 장소는 생각보다 멀었다. 연수의 기운은 산에 오르고부터 펄펄 살아났으나 흥부는 그렇지 않았다. 지친 기색은 없었으나 연수의 걸음에는 미치지 못 했고, 그 결과 그들이 공터에 도착한 것은 평소 연수가 오르던 것보다 늦었다.
그것은 불행이 아니었다. 늦춰진 시간만큼 사냥꾼들이 자리를 잡기에 적당한 시간이 생겼을 터였다.
"나오거라."
연수는 언제나처럼 거칠게 그것을 불렀다. 떨리는 마음은 다행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안한 심정을 가라앉힐 수 없다. 이무기 정도의 힘이라면 작은 제비의 긴장 정도는 쉬이 간파할 것 같았다. 흥부도 긴장했는지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무언가가 땅과 낙엽 사이를 누비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소리는 빠르게 다가왔다.
- 오랜만이구나, 제비야.
'그것’이 머리를 내밀었다. 커다란 뱀의 머리였다. 붉게 빛나는 눈을 가진 무척이나 요사스러운 머리였다.
"능청스럽구나."
연수는 코웃음쳤다.
- 약속을 어겼구나. 어리석은 제비야.
이무기의 눈이 흥부를 향했다. 흥부가 긴장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어째서?"
연수가 물었다. 연수의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목소리에 사나운 기색이 깃들었다.
"우리는 약속을 한 적이 없다. 네가 일방적으로 말했을 뿐이지."
연수는 이를 드러낸다. 흥부의 앞에선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표정이었다.
- 너도 부정하지 않았지.
그것의 목소리는 나긋하고 상냥하다. 눈에서 붉게 흔들리는 빛과 날름거리는 혓소리만 아니라면 다정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놈이 도망쳤다."
연수는 이를 악물었다. 있는 힘껏 분노를 짜낸다.
"이것이 도망시켰어."
흥부를 가리킨다. 손가락으로 화살이라도 쏘아낼 듯 사납다.
"그러니 이것을 잡아가라."
연수가 말했다.
이무기의 시선은 줄곧 흥부를 향해 있었다. 흥부는 긴장한 게 분명했지만 잘 견디고 있었다. 그것이 웃었다.
- 그렇지. 놀부에게는 착한 동생이 있었지. 기억하고 말고.
그것은 꼭 화가 난 것 같았다.
- 너무 착해서 못된 형의 죄를 모조리 뒤집어쓰려고 드는 착한 동생 말이다.
그것이 앞으로 기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