쉭.
이무기는 눈을 번뜩이며 흥부에게 제 머리를 들이밀었다.
- 기억하고 말고. 네놈의 잔머리를 내 잊을 리 없지.
"무슨 소리냐."
날름거리는 혓바닥이 닿을 듯 가까워진 탓에 흥부의 얼굴은 붉어 보였다. 시뻘개진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서서. 이무기와 얼굴을 마주하고.
- 이 눈이었어. 이 건방진 눈.
이무기의 눈에서 뿜어지는 붉은 빛이 번개처럼 점멸했다.
- 조그말 때도 그렇게 맹랑하더니 여전하구나.
이무기가 이죽거렸다.
- 맞는 말이야. 이걸 잡아먹으면 배는 부르지 않아도 기분은 풀릴테지.
이무기의 머리가 다시 연수를 향한다. 연수의 낯이 시퍼랬다.
- 제법 맹랑한 짓을 했다만, 이번에는 봐주마.
쉬르륵 하고 거대한 뱀의 몸이 빠르게 땅을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수풀이 크게 흔들렸다. 무언가 애써 발버둥치는 소리와 나무들 사이로 숲이 열리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이무기의 길고 굵은 몸뚱이가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려는 찰나.
쐐액.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이무기의 몸이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 미물들이 발버둥을 치는구나.
동시에 사방에서 사냥꾼들이 뛰어든다. 손을 맞추는 연습을 거듭한 덕에 달려드는 모양새가 제법 근사했다. 순서를 맞춰서,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로, 재빠르지만 정확하게. 바로 코앞에서 날리는 화살과 총알이 맹렬했다.
이무기가 높게 머리를 들어올리며 몸을 흔들었다. 아아악. 비명소리가 울린다. 칼과 화살이 이무기를 비껴간다. 붉은 빛이 번뜩인다. 이무기는 꼬리로 단단히 붙든 사냥꾼을 마치 무기처럼 휘둘렀다. 연수는 그가 사냥꾼 이강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의 손에서 불 붙지 못한 화약이 떨어졌다.
이무기가 이강의 몸을 들어올린다. 사냥꾼들이 훌쩍 뒤로 물러섰다. 무진이 연수를 감싸 잡아끈다. 휘청이며 끌려간다. 한 켠으로 치성이 흥부를 챙기는 모습이 보였다.
이무기의 눈이 밝았다.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밝은 붉은 빛. 이 정도 빛이면 마을에서도 볼 수 있을 게 틀림 없었다. 번뜩인다.
- 피로구나.
이무기의 음성은 기쁨으로 물들어 있었다. 군데군데 활과 총이 스친 자리에 비늘이 벗겨지고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신경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연수는 다시 한 번 그때의 전율을 느낀다.
'동짓날 밤 놀부를 데려오라.'
그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잊을 수 없었다.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화색이 감도는 이무기의 목소리와 온몸에 전율이 이는 듯한, 가슴 속 어딘가에서 올라오는 제 것이 아닌 기쁨. 입맛을 돋우는 피냄새. 설렘.
구렁이에게 붙들린 이강의 비명소리가 마치 음악 같았다.
연수의 눈에서 붉은 빛이 일렁인다. 무진이 놀라는 게 느껴졌다. 인간 나부랭이들의 소요가 피부로 느껴진다. 어리석다. 어리석다. 어리석다.
"정신 차려!"
거칠게 손목을 당기는 손길이 있었다. 흥부였다. 하찮은 인간. 맛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선한 자는 맛이 없다. 그저 탐욕. 탐욕만이 최고의 미식이다.
연수의 입에 불유쾌한 미소가 걸렸다. 흥부의 안색이 시뻘개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철썩.
연수의 뺨을 내리쳤다.
"정신 차리지 않고!"
연수의 고개가 팩 꺾였다. 이무기의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 어리석구나, 인간아.
붉은 빛.
- 그것은 나의 것이다.
눈 앞을 가득 메운다.
붉다.
피.
새끼들의, 붉은.
"……."
연수의 눈에서 붉은 빛이 꺼졌다.
- 놀랍군.
이무기의 탄성이었다.
연수는 고개를 들었다. 결연한 얼굴이었다.
"네놈을 잡으러 왔다."
그래. 너를.
이무기 너를 잡으러 왔다.
산은 고요했다. 모두 달아났는지 새소리도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무기의 입에서 새는 쉿쉿거리는 바람소리와 번뜩이는 붉은 빛만이 그들이 거기에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였다.
- 제비야.
이무기가 말했다.
- 벌써 잊었느냐.
이무기는 속삭인다.
- 새끼들의 원한을, 죽음의 고통을, 벌써 잊었느냐?
그 말과 함께 고통이 밀려들었다. 머리가 깨지고 다리가 부러진 고통. 옴쭉달싹 할 수 없었던 죽음의 순간.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고통이 온 몸을 습격했다.
연수의 몸이 무너졌다. 쓰러지는 연수를 무진이 붙들어 안는다.
아파. 아프다.
눈물이 시야를 가린다. 아팠다.
'기회를 주마.'
마음 속에서 이무기의 목소리가 울렸다.
'내 눈 앞에서 흥부를 찔러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목소리는 강력했고, 연수는 너무 아팠다.
연수는 무진을 뿌리친다. 비틀거리며 몸을 바로 세웠다. 이제는 눈이 아니라 온 몸에 붉은 빛을 두르고 흥부를 노려보았다.
사냥꾼들 사이로 긴장한 공기가 맴돈다. 이무기가 기절한 이강을 한쪽으로 내팽개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도 아무도 그쪽으로 향하지 못 한다.
"흥부야."
연수의 목소리가 거칠었다.
"네 형님을 내놓아라."
이무기가 낄낄거린다.
"그럼 네 목숨만은 살려주마."
언뜻 보아도 귀기 어린 요괴의 모습이었다. 온 몸에 붉은 빛을 두르고 눈은 형형하다. 딱딱하게 굳은 낯은 가면 같았다.
이무기가 스르르 움직였다. 연수를 향해 다가온다. 사냥꾼들이 재빨리 연수의 곁에서 물러나 거리를 벌린다. 흥부를 잡아끈다. 인간들이 순식간에 멀어지고 이무기의 몸이 친근하게 연수를 휘감았다.
그리고.
- 끄아악!
이무기가 비명을 질렀다.
연수의 손이 붉었다. 정확하게 구렁이의 심장을 움켜쥔 손. 그 손에서 붉은 빛이 일렁였다.
"네놈이다."
연수가 중얼거렸다.
"나를 괴물로 만든 건."
이무기의 힘으로 이무기의 심장을 움켜쥔다. 두근거리는 박동이 손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괴물은 괴물이 잡아야겠지."
심장을 쥔 손에 힘을 준다. 몸부림치려는 구렁이의 몸뚱이를 한 손으로 붙들었다. 거대한 몸뚱이가 사방을 휘저었지만 연수의 몸에 닿지는 못했다.
"죽어라."
푸왁하고 피가 터지는 감각. 붉었다.
붉디 붉었다.
이무기의 몸이 완전히 힘을 잃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연수는 이무기의 거대한 몸뚱이 사이에 주저 앉았다. 사냥꾼들과 흥부는 저 멀리 달아났고, 이무기는 죽었다. 이제 연수 차례였다.
눈을 감는다.
죽음의 고통을 느끼며 깨달은 것이 있었다. 자신은 곧 죽을 것이다. 그 고통은 제비의 고통. 아직 사라지지 않은 죽음의 통증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연수는 아직 죽어가는 중일지도 몰랐다.
"곧 보겠구나."
나의 아이들아.
연수는 쓰게 웃는다. 죽고 싶지 않았는데 정작 죽음을 코앞에 둔 지금은 그렇게 두렵지가 않았다.
인간의 삶은 이런 것인가. 지독히도 흔들렸고, 혼란 속에서 아파했다. 제비로 돌아가면 다시 이런 고뇌에 빠지는 일은 없겠지.
물론 그럴 시간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좋았다.
돌아간다. 더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으로 족했다.
동이 트고 있었다.
*
흥부는 사냥꾼들과 함께 기절한 이강을 들쳐업고 산 아래로 내려왔다. 연수가 없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강을 봐줄 의원을 부르고 난 뒤였다.
미안한 마음에 산으로 달려가는 중, 뒤에서 흥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네이놈, 흥부야!"
익숙한 목소리였다. 흥부는 뒤를 돌아본다.
"형님."
"이 몹쓸 것. 연수는 어디있느냐."
정신없이 뛰어온 탓에 숨이 차 헥헥거리면서도 놀부는 연수를 찾았다. 연수의 무엇이 놀부를 그리도 사로잡았을까 신비할 따름이다. 무엇이든 욕심을 내놓고선 정작 손에 넣고 나서는 흥미를 잃어버리는 놀부였다. 이무기의 사술일까. 그렇다면 어째서 아직까지도 형님은 연수를 찾는 것일까. 알쏭달쏭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흥부는 제안했다. 놀부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려면 눈으로 보여주는 게 가장 빠를 것 같았다.
놀부는 의심스럽다는 듯 흥부를 쳐다보았다.
"연수가 있는 곳으로 가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가겠다."
흥부가 앞장을 서고 놀부가 뒤를 따랐다. 마음이 급했으나 놀부는 산을 오르는 것이 서투르고 무척이나 힘겨워하여 걸음이 빠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흥부는 놀부를 부축하며 천천히 산을 올랐다.
이무기와 만났던 공터에 도달했을 때는 태양이 완전히 하늘에 올라 있었다. 거대한 이무기의 사체를 발견한 놀부가 놀라 자빠진다.
"괴물이야!"
그래, 괴물이었다. 빛 아래에서 보니 이렇게 거대할 수가 없었다. 몸 길이는 성인 장정의 키보다 길었고, 굵기는 흥부의 허벅지 보다도 굵었다. 이런 것이 말을 하고 사술까지 부린 것이다. 괴물이 아닐 수 없었다.
"죽은 것이냐?"
놀부가 물었다.
"예."
흥부가 대답했다.
놀부는 자빠진 상태에서도 재빨리 주변을 둘러본다.
"연수는 어디 있느냐."
놀부가 재차 물었다. 흥부는 대답하지 못 했다.
연수가 없었다.
무슨 짓을 했길래 연수가 이런 괴물과 같이 있냐고 떽떽거리는 놀부를 뒤로 하고 흥부는 조심스레 이무기의 시체를 살폈다. 연수는 이곳에서 구렁이의 심장을 찔렀다. 피를 뒤집어썼으니 어딘가로 이동했다면 흔적이 남았으리란 생각이었다. 그리고.
흥부는 발견했다.
이무기의 심장 근처에 죽어가는 제비가 있었다. 온 몸이 피투성이인데 그것이 제비의 피인지 이무기의 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너로구나."
조심스레 제비의 몸에 손을 얹었다. 다행히 아직 온기가 있었다. 작은 심장 박동이 손을 타고 흘러들었다.
"연수를 찾았어?"
놀부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흥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찾았습니다."
다가온 놀부가 피투성이 제비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흥부는 겉옷을 벗어 제비를 감싸안는다. 하얀 옷에 천천히 빨간 물이 들었다.
"이건 또 무어냐. 연수는 어디있고."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우선 내려가시죠."
놀부는 납득하지 못한 눈치였지만, 흥부는 더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산을 내려왔다.
산을 내려온 흥부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사냥꾼들이었다. 산에서 지내는 이들이니 자신보다는 제비를 잘 알리라. 흥부는 진심으로 제비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치성이 새를 잘 알았다. 그는 혀를 차곤,
"어렵겠는데."
라고 말했지만 조속히 조치에 들어갔다. 이제는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흥부는 제비를 치성에게 맡겨두고 방을 나왔다. 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말해봐라. 연수는 어디 있느냐."
놀부가 물었다. 흥부는 웃고 만다.
"이 와중에도 연수의 행방만 중요하십니까."
놀부가 코웃음쳤다.
"구렁이건 제비건 알 바 아니다. 연수가 무사하면 돼."
흥부는 숙연해진다. 놀부의 마음이 너무도 진심이어서 이 상황을 어찌 전달해야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비로소 깨닫는 것이다. 연수의 눈물이 이런 의미였겠구나, 하고.
"들어가시죠."
놀부를 빈 방으로 이끈 흥부는 고민했다. 무슨 말부터 전하면 좋을까.
"형님. 제가 제비를 구하고 그 보답으로 금은보화를 얻은 일을 기억하시지요."
거기서부터였다. 모든 비극의 시작점.
흥부는 무슨 엉뚱한 소리냐며 툴툴대는 놀부를 붙들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