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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일엔 이가체프 Mar 30. 2016

봄을 달리는 버스

402번 버스에 올랐다

 강남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402번 버스에 올랐다.  나는 창문 밖으로 풍경을 감상한다.


 강남역과 신사를 지나는데 사람들의 옷차림이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 여유로운 걸음걸이, 활기찬 표정에서 봄을 느낀 것은 기분 탓일까. 어쨌거나 그들이건 나이건 봄을 의식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버스는 한강 다리를 달리며 익숙한 야경 대신 강물에 부서지는 햇살을 보여준다. 창문을 두드리는 햇살에 눈을 찡긋, 미간을 찡그리지만 기분이 나빠서는 아니다.



 버스가 남산을 오를 때 남산 밑자락에서 목련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봉오리에서 살짝 내민 흰 얼굴이 왠지 수줍어 보인다. 겨우내 덮고 있던 이불 사이로 얼굴만 빼꼼 내밀고는 나갈지 말지 망설이는 꽃잎을 봤다. 응달의 목련은 아직은 춥다고 볕을 조금 더 기다리기로 한다.


 버스가 속도를 내어 달리자 이번에는 옆동네 개나리를 만난다. 양지의 개나리는 조금 더 과감하다. 몸을 반쯤 내밀고 바깥의 봄을 살핀다. 분명 들리는 소리는 없었지만 개나리가 소리를 낸다면 그 소리는 '쫑알쫑알'일 거라며 혼자 웃었다. 그 옆에서 같은 볕을 받은 목련은 아까 본 응달의 목련보다 얼굴을 더 내밀었다.


우리가 봄의 상징 같겠지만,
우리도 봄을 기다려요

 봄을 기다리기는 꽃들도 나와 마찬가지인가보다.



 소월길을 달리던 버스가 속도를 줄이자 건너편 정류장에 눈길이 멈춘다. '휴식'이라는 이름의 정류장에서 김소월 시 한 구절을 읽는다. '만나려는 심사'라는 제목에 설렌다. 봄을 만나고 싶었던 나의 심사를 대입하며 제멋대로 시를 해석하면서 그 자리를 지난다.


저녁 해는 지고서 어스름의 길
저 먼 산엔 어두워 잃어진 구름
만나려는 심사는 웬 셈일까요
그 사람이야 올 길 바이 없는데
발길은 뉘 마중을 가잔 말이냐
하늘엔 달 오르며 우는 기러기

- 김소월 '만나려는 심사'


 남산 도서관을 지날 때 공원길을 내려오는 버스 한대를 만났다. 봄 만나기를 허탕친 버스가 다음 기회를 노린다. 다음 번에 이 길을 지날 때면 봄꽃이 만개해 있겠지. 그때는 벚꽃의 대환영을 받을 수 있겠지.


 버스가 굽이굽이 남산을 도는 동안에도 햇살은 쉼이 없다. 햇살은 자꾸만 창을 두드리며 나를 부르는데 나는 그런 햇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 못내 아쉽다.


 굴곡진 남산에서 내려온 버스는 이제야 숨을 고르는 듯 했는데 다시 도심의 수많은 차들을 만난다. 시청을 지나 광화문으로 향하는 길에 교보빌딩이 보인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보다 먼저 봄맞이 글을 걸어 둔 부지런함 덕분에 나는 그렇게 봄을 읽는다.

봄이 부서질까봐
조심조심 속삭였다
아무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 최하림 '봄' (교보빌딩 글판에서)


 버스는 광화문 앞을 돌아 세종문화회관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나를 내려준 버스는 다시 남산을 오르겠지. 그리고 다시 누군가에게 또다른 봄을 보여주겠지.




* 메인과 글에 담긴 사진은 남산을 달리는 버스에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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