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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일엔 이가체프 Jun 01. 2016

네팔에 보내는 편지


 안녕?

 잘 지내니?


 부끄럽게도 내가 너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네. 매번 부지런한 너는 편지를 보내줬는데 나는 맨날 바쁘다는 핑계를 습관처럼 달고서 결국 또 못 보내고 말았어.


 이번에 온 너의 성장일지를 보고 나는 조금 놀랐어. 사진으로 본 너는 매번 무뚝뚝한 표정이었거든. 그런데 이번 사진 속에 너는 아주 활짝 웃고 있더라. 처음이었어. 그렇게 웃는 네 얼굴을 본 건. 그 웃음이 하도 맑아서 나도 덩달아 웃고 말았지. 그리고 부쩍 큰 키, 또 양갈래 머리 끝에 묶은 예쁜 리본. 왠지 소녀에서 숙녀가 된 것 같은 너를 보면서 네 나이를 다시 세어보기도 하고 어느새 꾸미는 것에 관심이 생긴 나이가 되었구나 싶어서 내 마음도 생글거렸어. 그렇게 예쁘게 단장하고 수줍게 웃고 있는 널 보면서 '아이고, 예뻐라' 혼자 중얼거렸지 뭐야.


 얼마 전 네팔에 큰 지진이 있었지. 가장 먼저 네 생각이 났어. 그래서 부랴부랴 후원기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상황을 살폈지. 그런데 곧바로 문자 몇 통이 오더라. 후원 어린이가 사는 동네의 피해를 파악하고 있다, 통신이 조금 어려운 상황이지만 파악이 되는대로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아주 긴 메시지였어. 나보다 더 앞장서서 너를 걱정하고 달려가 준 사람들이 있어 감사했고, 선뜻 달려가지 못한 나라서 미안했어. 그리고 며칠 뒤에 네가 사는 동네와 너의 가족 모두 건강하다는 소식을 전해왔어. 정말 감사하고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한편으로는 모국에서 그 큰 일을 겪으며 마음이 많이 무거울 널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그 마음을 나의 이 몇 마디 말로 달래줄 수가 있을까, 그래도 마음을 담아서 건네고 싶었어. 많이 무섭고 아팠겠지만 그 상처가 너의 마음을 너무 상하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더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래도 그 후에 받은 사진 속에서 웃고있는 널 보니까 한결 마음이 놓였어. 어려운 일들 속에서도 그순간 널 미소짓게 한 즐거움이 있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한 마음 뿐.



 매해 연말이 되면 후원기관에서 좋은이웃 콘서트라는 걸 열어. 이름이 참 좋지? 나는 매년 그 콘서트에 신청을 해서 참석한단다.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는 것도 좋지만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아. 그 무렵이면 한국은 정말 추운 날씨고 눈이 펑펑 쏟아지기도 하는데, 퇴근하고 발을 동동거리면서도 추위를 뚫고 그곳으로 달려가는 건 그곳에 모인 따뜻함이 좋아서야. 꽁꽁 언 추위를 녹여주는 따뜻한 마음들. 세상에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겨울에도 그곳엔 온기가 가득하지.


 한번은 그 자리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무대에 나와 사연을 소개해줬어. 그분은 방글라데시에 인연을 둔 아이가 있었어. 아주머니는 후원기관에서 하는 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방글라데시에 다녀오셨고 아이를 만날 수 있었지. 기관에서 그 과정을 영상에 담아 무대위에서 보여주는 시간을 갖었어.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영상을 보면서 저마다 자신의 후원 아이를 만난 것처럼 미소가 가득했고, 눈물이 반짝였지. 영상이 끝나고 무대 위에서는 아주머니의 인터뷰가 이어졌어. 인터뷰가 끝나고 진행자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주머니에게 깜짝 선물이 있다며 다시 영상을 틀어주었지. 사실 아주머니가 방문하기 전에 선발팀이 먼저 출발해서 아이를 만났고 아주머니를 기다리는 그 아이와 가족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놓았던 거야. 아이는 후원자를 처음 만난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어. 어찌나 신이 나 있던지, 생글거리며 가족들과 함께 후원자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지. 아이는 누군가의 얼굴이 담긴 그림을 그렸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후원자의 얼굴이라고 했어. 그리고 이렇게 말했지.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어떤 분일까 항상 상상했어요. 그리고 제가 생각했던 얼굴을 그렸어요.'


 '항상 상상했어요' 그 말이, 그 천진한 웃음이 왜그렇게 가슴에 박히던지. 그리고 아이의 엄마는 정성껏 수를 놓아 선물을 준비했지. 환하게 웃으며 수줍게 건네는 그 선물이 영상에 담겨 있었어. 고마운 마음을 담아 한 땀 한 땀 놓은 수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세상에 이렇게 벅찬 선물이 있을까. 영상이 끝나고 무대 위에서 아주머니는 울고 있었어. 그리고 말했어. '저는 사실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지만 내 아이들을 돌보고 식구를 챙기느라 후원 아이를 그렇게 자주 생각하지는 못하는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 아이를 보니까 나보다 훨씬 더 나를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어서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요.'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도 아마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정기 후원을 시작한 지 벌써 몇 해가 되었지만 내가 정말 하고 있는 건 뭘까. 마음을 많이 쏟지 못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후원금만 보내고 있는 것이 좋은 후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얄팍한 선량함으로 그저 내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렇게 꾸준히 편지를 보내 오는 너와 달리 오히려 나는 어려울 것 없는 편지 한 번을 못 부치고 있는데, 자금에 대한 것에 더불어 너에게 마음을 담은 위로를 보내지 못했던 내가, 마음만 먹고 번번이 잊어버리고 마는 내가 부끄러울 때가 많았어. 그날 아주머니의 눈물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그래도 이렇게 작은 걸음이라도 계속해볼게. 처음 너와 연이 닿던 날, 너의 일지에 담겨 있던 네 꿈이 생각나. 독서를 좋아하고 선생님이 꿈이라고 했던 너. 이제 어느새 청소년의 나이가 되어 꿈을 향해 열심히 걸어가고 있을 너를 생각하면서 나도 계속 걸어볼게. 나의 걸음이 너에게 자그마한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



 언젠가 퇴근을 하던 가을날, 널 생각했었어. 그날 너에게 보내려고 편지지도 샀었지. 그림을 참 잘 그리던 너의 편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곤 했었어. '보세요, 그림 정말 잘 그리죠?' 그렇게 동료에게 자랑하던 어떤 날, 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생각하고 편지지를 사고 예쁜 펜과 얇은 수첩도 샀어. 결국 깜박증이 특기인 나는 그걸 내 서랍 속에 넣어두고 잊어버렸지만. 그날이었어. 편지지를 사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이 예쁜 단풍들을 너도 보면 참 좋겠다, 폴라로이드를 가져와서 찍어서 같이 보내줄까, 꿈 같은 이야기지만 너랑 같이 이 길을 걸으며 수다를 나누는 상상도 했지.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 길을 소개해주면서 여긴 요즘 이런 날씨야, 단풍 참 예쁘지? 하고 그간에 우리가 지내온 이야기를 나누며 까르르 웃는다면 참 좋겠다고. 상상 속에서는 우리 둘에게 통역도 필요 없었어. 우리가 이렇게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인연의 고리를 맺은 것도 어떻게 보면 기적 같은 일일텐데 이런 꿈 같은 상상이 이루어지지 말란 법도 없지.


 그러니까 우리 힘차게 걸어보자. 너는 너대로의 방식으로, 나는 나의 방식으로 서로 다른 속도와 걸음이더라도 힘차게 걷다가 우리 꼭 반갑게 만나자.



p.s. 아마 이 편지를 다 보낼 수는 없을거야. 너무 길어서 번역자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요약하고 줄여야 하겠지. 그래도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적어보고 싶었어. 그리고 언젠가 네가 이 긴 편지도 읽을 수 있는 날을 나는 또 상상해봐. 그때 너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보다 더 들었을 언젠가일지라도. 그래서 이 긴 글도 지우지 않고 남겨두려고 해.



* 메인과 글에 담긴 사진은 아이의 편지와 콘서트에서, 퇴근길에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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