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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왕수 Nov 18. 2018

누구나 풀코스 마라톤 뛸 수 있는 방법

첫 42.195km 준비법

달리기는 인기 스포츠가 아니다. 남자들끼리는 첫 만남에 으레 무슨 운동을 좋아하는지 묻곤한다. 축구나 농구, 야구는 단골손님 격인 대답이고, 직장인이 되서는 간혹 골프나 테니스를 좋아한다는 대답도 듣는다. 하지만 아직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대답을 들은 기억은 없다. 나 또한 달리기를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어린시절 나는 스포츠 경기 보는 것을 즐겨했다. 인기종목은 말할 것도 없고, 핸드볼이나 배드민턴, 탁구와 같은 종목도 밤을 새며 세계선수권 대회를 챙겨보는 스포츠 마니아였다. 당연히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과 같은 스포츠대회도 사랑했다. 하지만 수많은 스포츠 경기 중 마라톤, 그 중에서도 남자마라톤만은 영 호감이 가지 않았다. 2시간 넘게 똑같은 자세로 달리는 모습을 보고있는 것은 여간 지루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올림픽은 항상 남자마라톤을 끝으로 폐막을 하니, 나에게 남자마라톤은 대회의 끝을 알리는 우울한 소식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끔은 올림픽을 보면서 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마라톤이 행사의 대미를 장식해야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축구나 농구로 바꾸면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며 축제를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달리기는 나에게 확실한 비호감 종목이었다.


이대로 2시간을 뛰는데 왜 봐야할까!


그런 내가 달리기에 처음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것은 군대에서였다. 남들이 다 축구나 족구를 열심히 할 때 달리기에 재미를 붙인건 달리기에서, 정확히 말하면 '오래 달리기'에서 나도 모르는 재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실 학창시절 밤새 각종 스포츠 경기를 챙겨볼 정도면 직접 몸을 쓰며 운동을 하는 것도 좋아할 만하다. 하지만 나에게 스포츠가 '그저 보는 것'에 머물렀던 이유는 나의 몹쓸 운동신경 덕분이다. 친구들과 스포츠 이야기를 하면 정확한 선수 이름과 성적까지 대며 아는체를 했던 나는 경기장에만 들어서면 '구멍' 신세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축구를 하면 내가 맡는 지역에서 항상 골 찬스가 생겼고, 농구를 하면 나의 상대가 늘 득점왕이 됐다. 그렇다고 힘이 썩 센 것도 아니어서 줄다리기를 하거나 팔씨름을 해도 별로 빛을 볼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직접하는 스포츠와는 자연히 점점 거리가 멀어져갔다. 학창시절 대부분 스포츠가 반대항이나 팀대항 성격을 띄었던 것도 운동과 멀어진 데에 한몫했다. 그러다보니 운동 자체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환경은 없었고,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구분만 있을 뿐이었다. 


군대에서는 운동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냥 해야했다. 아침마다 달리기를 하는건 예외없는 의무였다. 아침 달리기에서는 대개 3-5km 를 뛰곤 했는데, 이 정도의 장거리 달리기는 사실 딱히 운동신경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뛰기만 하면 완주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나는 몸무게가 과하게 나가는 것도 아니고 흡연을 했던 것도 아니라 달리기를 하면 곧잘 선두 그룹에 속해서 골인을 하곤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못하지 않는 운동' 을 발견했다. 늘 남자로서 한두가지 정도는 잘하는 운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적성에 맞는 운동을 찾게된 것도 반가웠다. 자연히 달리기를 더 잘하고 싶어졌다.


군대에서의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는 것은 많은 남자들의 화두다. 나 또한 똑같은 2년이라도 이왕이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게 쓰고싶었다. 영어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고 책을 읽는 친구도 있었다. 그 때 나는 뭐에 홀렸는지 중앙일보 마라톤 대회를 신청했다. 당시(2006년)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일년에 두 번은 꼭 출전을 하는 메이저 대회가 있었는데, 3월에 열리는 동아일보 마라톤 대회와 가을의 중앙일보 대회가 있었다. 나는 제대를 앞두고 시간이 많을 것 같은 중앙일보 대회를 택했다. 마라톤 대회를 신청하고나니 세상에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꽤나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주 곳곳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심지어는 50km 나 100km 를 완주해야하는 울트라 마라톤 대회도 종종 열렸다. 동아일보나 중앙일보 마라톤 대회는 대회 참가자수만 2-3만명을 넘긴다는 사실도 이 때 처음 알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달리기는 재미있는 운동이었다. 


인기 마라톤 대회는 2만명 이상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다


마라톤 대회에 접수를 하고 기분 좋게 새옷을 사들고 달리기를 나갔다. 평소 5km 를 가뿐하게 뛰기에 오늘은 한번 되는데까지 달려보자는 심산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대회를 나간다고 생각하니 근육도 경직되고 생각만큼 달리기가 쉽지 않았다. 10km 를 넘어서면서 부터는 종아리랑 허벅지 근육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통증을 호소해왔다. 12km 나 뛰었을까, 나는 마라톤의 높은 벽을 처음으로 실감하고 공부와 유경험자의 조언을 바탕으로 훈련계획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마라톤 완주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회 참가 2주전까지 40km 이상을 뛰어 보는 것이다. 사실 풀코스 대회에 참가한다고 하는 사람중에 호흡이 차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달리기를 완주할 수 있고 없고는 다리 근육의 지구력에서 판가름이 난다. 이 지구력을 길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매번 달리는 거리를 계속 높여서 40km 이상까지 한번에 뛸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달리기를 해보면 지난번에 뛰었던 거리보다 한번에 10km 이상을 늘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10km 를 1시간에 뛰었으니 20km 면 2시간이면 뛸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큰 착각이다. 12km 쯤 지나면 다리에 흡사 쇠라도 달아둔 것만큼 허벅지와 종아리가 무거워진다. 15km 정도까지 버텼다면 다리에서 이내 이 이상은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그래서 나는 매주 5km 씩 달리는 거리를 늘리는 연습을 했다. 대회 2주전까지 40km 를 뛰어야 하니 역으로 계산하면 최소한 대회 2달 전부터는 제대로 연습을 해야한다. 게다가 20km 이상을 뛸 때는 회복시간도 고려를 해야하기 때문에 적어도 대회 3달 전부터 스케줄을 잡고 연습을 했다. 이런 연습 스케줄을 고려한다면, 대회 

참가 2달전쯤 하프마라톤을 한번 뛰어보는 것이 좋다.


마라톤 완주가 목표라면 3달 전부터는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대회 준비에 돌입했다면 꾸준한 연습외에 지켜야 할 것이 또 있다. 바로 이 기간동안 술과 담배를 끊는 것이다. 술이야 가볍게 마시는 것은 괜찮다고 하지만, 담배는 장거리 달리기에 정말 좋지 않다. 많은 애연가들도 평소에 흡연을 하시다가도 대회 준비에 돌입하면 흡연을 무섭게 멈춘다. 경험자들의 말에 따르면 담배 한모금이라도 호흡에 엄청난 영향을 줘서 다리를 무겁게 한다고 하니 초심자들로서는 새겨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마라톤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습관은 등산이다. 등산은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의 다리힘을 길러주는 데 가장 효과가 좋다. 다리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도 좋지만 경사가 급하지 않은 산을 뛰어가듯 오르는 것도 좋다. 막상 풀코스를 뛰어보면 내가 계속 다리힘을 강조하는 이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위의 방법으로 대회 3개월전부터 꾸준히 운동을 했고 습관들을 조절해왔다. 어차피 군대에 있어서 술도 먹지 못하는 최상의 환경에 있어 나로서는 대회 준비가 수월했다. 


중앙일보나 동아일보와 같은 대회는 대회 당일 날씨가 많이 춥다. 몸의 차가운 상태로 달리기를 시작하면 근육이 쉽게 경직되기 때문에 몸을 따뜻하게 할 장갑과 큰 비닐봉지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큰 비닐봉지는 목이 들어갈 구멍을 뚫어서 입기 위함이다.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날씨가 많이 춥지만 이내 몸에 열이 발생하면 긴팔이나 두꺼운 옷은 거추장스럽다. 이럴 때를 위해 달리다가 벗어서 버릴 수 있는 헌옷이나 비닐봉지를 미리 준비하면 매우 좋다. 

 

세탁소 비닐봉지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렇게 갖은 준비를 하여 2006년 11월 5일 드디어 나는 이봉주 선수와 함께 잠실의 도로를 함께 달렸다. 내가 15키로 지점을 통과할때 이미 35키로를 통과하던 이봉주 선수와 함께 달렸다고 표현해도 좋을지는 모르겠다. 어쨋든 나는 생애 처음으로 풀코스를 완주했다. 시간적인 목표도 있었지만 개인적인 목표는 42.195km 를 말 그대로 걷지 않고 '완주' 하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힘들고 중간에 걷고 싶었지만 철저한 준비덕분에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했다. 3시간 43분 28초. 첫 풀코스 치고는 꽤나 좋은 성적으로 완주할 수 있었다.


함께 뛰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이봉주 선수


특별한 운동신경이 없어도 성실함과 노력이 있다면 누구나 도전해 볼 수 있는 마라톤을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인생에서 잊지 못할 큰 추억과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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