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도 못해 살지도 못해

by 은도진


죽기를 몇 번이나 시도하고 죽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비참해서 울었다. 살지도 못해서 죽으려고 했는데, 죽지도 못하다니.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 어둠 속에서 홀로 삶과 죽음 사이에서 투쟁했다.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외롭고 처절한 투쟁을. 그리고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몸부림과 투쟁을 뚫고 죽은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던 것이었는지를.


삶의 마지막에서 희미한 불빛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긴 문 때문에 사람들이 들어오기 힘들면 어떡하지. 들어왔다가 내 모습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길 텐데. 내 컴퓨터 파일을 사람들이 열어 볼 텐데. 휴대폰은 못 열어보겠지. 내 재산이 그 사람한테 가면 안 될 텐데. 이 방법이 안 되면 저 방법으로 해 볼까. 그 사람에게 한 번만 더 연락을 해 볼까. 지금은 자고 있을 텐데 연락을 받을까. 차라리 여기서 죽을 거면 다 그만두고 여행이나 갈까. 내 인생은 여기까지일까.


생각과 시도, 갈등과 주저 속에서 결국 실패하고 누웠다. 피로가 몰려왔다. 처음에는 잠이 오지 않았는데, 어둠 속에서 했던 생각과 행동들에 점점 지쳤던 것이다. 그렇다. 죽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힘든 일이다. 그리고 몸 어딘가에도 흔적이 남아 있다. 그 감각도 생각보다 오래간다. 죽음에서 살아와 일상을 살다가 몸의 그 감각이 느껴지면, 피부에 남은 흔적을 발견하면, 아, 내가 죽으려고 했었지, 그리고 지금은 살아있네.


산다는 건 이런 것이다. 어쩌면 우연히 살았을 수도 있다. 죽지 못해서 살아 있을 수 있다. 생각만이 아니라 실제로 죽기를 실패해서 살아 있을 수 있다. 처음에는 내가 원해서 살아 있는 게 아니었는데, 나중에는 죽는 걸 원해도 살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누군가에게 연락을 했는데 여전히 나는 세상으로부터 환영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포기하려고 했던 마음이 다시 '하자'로 바뀌기도 하고, 못할 것 같던 일들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기도 한다. 내가 그렇게 미웠던 사람이, 그 미움이 오히려 반대였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그 순간. 삶과 죽음 경계에서의 그 순간. 그 순간은 매우 중요하다. 그 순간은 삶으로 기울 수도 있고, 죽음으로 기울 수도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 순간을 처절히 느끼고 나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 선명해지기 때문에 중요하다. 내가 사는 이유가 뭔지도, 내가 죽으려는 이유가 뭔지도, 내 삶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도 선명해져서 중요하다.


'죽지 못해 산다'는 것이 단순히 겨우겨우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죽지 못하면서 경험한 나 자신과 생각들로 더 선명하게 산다'는 의미도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죽음을 안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죽음과 어쩌면 반대인 삶을 더 자세히 안다는 것. 역설인 것 같지만 죽음을 알 수록 삶을 더 잘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