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by 은도진


어릴 때에는 계획을 잘 세웠다. 하루, 한 달, 일 년 계획은 물론, 10년, 20년, 30년 계획도 세웠다. 10년 뒤엔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이고, 20년 뒤에는 무엇을, 30년 뒤엔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이란 것도.


그 몇십 년 뒤를 지금 나는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아무것도 맞지 않았다. 그간에 계획에 없었던 일들이 일어났고, 계획에 전혀 없었던 삶을 살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10년 뒤를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5년, 아니 1년 뒤도 계획하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6개월 뒤의 일도 나에겐 아주 먼 일이 되어 버렸다.


하루가 다르고, 내일 나의 선택이 달라진다. 예상치 못한 일들은 하루가 다르게 생기고, 인생은 결코 계획대로 가지 않는다.


점차 미래를 보는 기간이 줄고 있다. 물론 몇 달 뒤에 해야 할 일을 위해서 준비를 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뿐이다. 어릴 때 나처럼 몇십 년 뒤를 위해서, 아니 몇 년 뒤를 위해서라도 현재를 살지 않는다. 현재는 오직 현재를 위해서만 존재하고, 미래는 현재가 되어야 의미가 있게 되었다.


주기가 더 짧아지면 다음 주가 아닌 일은 계획하지 않을 것 같다. 더 짧아지면 내일이 아닌 일은 계획하지 않게 될까. 더 심해지면 오늘이 아니면 생각하지 않게 되기도 할까. 그래도 일은 해야 하니까 계획은 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에 1년 치 일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일 앞에서 망설였다.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들에게 1년 뒤는 당연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나에게 1년이라는 시간은 알 수 없는 시간이었고, 어쩌면 없을지도 모를 시간이었기 때문에 확답하지 못했다. 물론 내가 망설인 탓에 그 일은 다른 이에게로 넘어갔다.


이런 식이다. 이제는 살 수 있는 힘도 점점 짧아지는 것 같다. 1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회에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이런 사람들도 세상에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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