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울 도보] 5. 삼랑진-원동-양산-부산

by 은도진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발과 다리가 거의 망가져 있었기 때문에 다음 날 계속 도보로 갈지 아니면 기차를 타고 갈지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새 긴급 문자는 계속 왔다. 눈이 많이 왔고 길이 얼어서 조심하라고. 그래도 이왕 시작한 도보 여행인데 삼랑진에서 끝내면 이도저도 아닌 게 되기 때문에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다음 날은 영하 6도의 날씨였기 때문에 나는 비가 오지 않았지만 우의까지 입고, 발에 밴드를 잔뜩 붙이고 길을 나섰다.



지금 생각하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좋았다고 생각된다. 삼랑진부터 양산까지 이르는 길은 철도와 강만 있는 자전거 길인데 그때가 아니었으면 그 길을 자전거가 아닌 도보로 걸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다리는 아킬레스건의 통증 때문에 제대로 디딜 수 없는 지경이었고, 왼쪽 발은 물집 통증이 점점 심해지면서 감각이 둔해지고 있었다. 나는 음악의 힘을 빌리기로 했고, 음악을 들으면서 거의 정신력으로 버텼다. 다리는 점점 감각이 없어지면서 통증은 심해졌고, 거의 무아지경 상태로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걷는 사람은 나 외에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었다. 그 외에는 전부 자전거였기 때문에 자전거 속도와 대비되며 언제 도착할 수 있을지, 오늘 과연 부산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지 않았던가. (생각해 보면 내가 3박 4일 동안 걸은 거리는 총 250리인데 천리를 걷는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고속도로 기준으로 부산에서 서울까지가 400km, 즉 천리가 되는 셈이니 나의 4일 간 걷는 페이스 그대로 16일 동안 걸어야 천리를 걷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부산에서 서울까지 넉넉잡아 한 달이면 충분히 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번에 부산-대구를 걸었으니 다음에 대구-상주, 다음에 상주-충주, 다음에 충주-용인, 그다음에 용인-서울까지 걸으면 부산-서울을 주파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언젠가 할 수 있겠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니 불가능했던 거리도 조금씩 당겨져 있었고, 원동에서 자장면으로 배를 채우고, 걷고 걷고 하다 보니 양산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원래 계획은 부산 북구 지하철역까지 가려고 했지만 양산의 남쪽에 있는 증산 마을쯤 이르렀을 때 다리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아서 거기서부터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나중에 신발을 벗으니 양말에 피가 흥건했고, 나는 그 피를 보고 아주 뿌듯했다. 아쉬움이 없을 때까지 걸었고, 최선을 다하면서 끝까지 걸었던 내가 자랑스러웠다.





사실 내가 걷게 된 계기는 심적으로 힘들고 방황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산티아고 길도 걸으려고 했던 것이었지만 무산되었고, 이번에 대구-부산이라도 걷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생각이 많았고 고민이 많았지만 그래도 걸으면서 고민을 하니 생각도 건강해지고, 덩달아 육체도 건강해져서 좋은 것 같았다.


걷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4일간의 시간 동안 걸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따라갈 수 있었고, 결국 잠잠해지기도 했고, 여러 감정들도 느껴서 좋았다. 그리고 이번 3박 4일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대구 이후 서울까지 걸어서 완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산티아고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걸으면서 생각이 지나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좀 더 건강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뭔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은 세상을 헤쳐나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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