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목표는 27km 떨어져 있는 모텔까지였다. 전날보다는 8km나 짧은 거리.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산을 넘어야 했고 비라는 복병이 있었다. 걷는 거리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선산, 봉곡, 덕촌, 대원까지는 구미시에 비룡, 낙동, 화산, 신상, 성동은 상주시에 속하는 것 같다.)
지도로 검색을 하니 모텔까지 가는 도중에 식당과 편의점이 없는 것 같아서 아침에 근처 편의점에서 하루치 먹을 것을 샀다. 사면서 아침은 컵라면+삼각김밥+계란으로 정했다. 먹을 것을 가방에 넣으니 가방이 매우 많이 무거워졌다.
(예전에 인도 여행했을 때도 가방이 이 정도로 무거웠는데 그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오늘은 비 예보도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몰라서 가방을 비닐로 둘렀다.
아침 공기는 시원하니 매우 좋았다. 도로는 한적했고, 러닝을 하는 시민도 보였다. 나는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가볍게 길을 나섰다. 주변에 꽃과 새들이 반겨주었다.
어제 왔던 길은 거의 도심과 도로였다면 오늘 가는 길은 농촌의 자연 풍경이었다. 논에는 노랗게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주변의 꽃들이 나를 심심하지 않게 해 주었다. 기온도 선선하여 덥지 않았고 구름도 적당히 있어 트레킹 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점점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지만 나의 기분을 더 좋게만 만들 뿐이었다.
하지만 점차 빗줄기는 굵어졌고, 길은 평지가 아닌 산을 넘는 오르막길이 나왔다.
시원하고 좋던 비도 계속 맞으니 점점 추워오기 시작했고, 가방도 젖지 않으리라는 장담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비닐과 여분의 옷으로 비를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우산은 없어도 될 것 같아서 안 가져왔는데 우산을 가져왔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아니면 판초 우의를 구했어야 하는 건데 비가 많이 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한 탓에 준비가 허술했다. 이렇게 경험치가 느는가 보다. 비는 소나기처럼 많이 내렸고, 나는 몇 시간을 비를 맞으면서 갔다. 중간에 어떤 아주머니가 비를 맞으며 가는 나를 응원해 주었고, 소도 나를 응원해 주었다.
선산에서 상주로 가는 길은 시골을 느끼기 위한 길이었다. 한국 중부의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곳곳에 시골집들과 들판이 보였다.
비가 계속 내리니 점점 추워졌고,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을에 있는 정자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음식들이 차가웠지만 김밥과 어묵 국물이 나를 달래주었다.
음식을 먹고 다시 힘을 내어 주렁주렁 열린 감과 석류와 대추들을 보며 계속 길을 걸었다.
20km가 넘은 시점에서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걸었다. 그러다 보니 갈림길에서 지도도 보지 않고 가다가 다른 길로 가기도 했다. 그래서 원래 27km인 거리를 28~30km는 족히 걸은 것 같다. 음악을 들으면서 갔는데 마지막 4~5km를 남겨두고는 비몽사몽 졸면서 걸었다.
(원래 경로라면 안 봐도 될 낙동면행정복지센터)
겨우겨우 모텔에 도착하니 사장님 아주머니가 나를 반겨줬다. 사장님 아저씨에게 얘기를 들은 탓인지 주변에 식당도 편의점도 없다며 같이 밥을 먹자고 술도 한잔 하라고 하시기도 했고, 아저씨가 안동에서 오는데 오면 편의점에 데려다 주겠다며 인심을 베푸셨다.
모텔은 정말 시골 모텔이었고, 현금으로 하니 싸게 해 주셨다. (이래서 여행에 현금도 갖고 다니면 좋다.)
나는 씻고 피로에 지친 다리를 쉬고 있었는데 사장님 따님이 남편과 같이 편의점에 데려다 준다고 하였다. 시골 모텔은 뭔가 달랐다.
나는 차를 얻어 타고 근처 편의점에서 저녁에 먹을 음식들을 사서 돌아왔다. 순두부찌개, 술 안주로 할 닭발, 막걸리와 소주, 김치, 과자 등등.
아직 오후 이른 시간이었지만 식사와 함께한 술이 나를 취하게 만들어 일찍 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