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을 학습한다?

누군들 배우고 싶어서 배웠겠는가.

by 해날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용어가 있다.

Learned Helplessness라고 하는데, helpless는 '도움이 없는' 상태라기보다 '더 시도하지 않는'이라는 말이 더 비슷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I couldn't help myself ( )'은 '난 ( )을 하는 나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었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손 놓고 무기력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을 때 쓰는 표현이다. 그래서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번역된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무기력을 학습할 수 있을까?


요즘 들어 많이 보편화된 단어인 가스라이팅도 이 학습된 무기력을 만들 수가 있다.

'그렇게 해봤자 힘들 거야.'

'다른 사람들도 다 해봤는데 안되던데 니가 하면 달라질까?'

'요즘 불경기라던데 구직이 될까?'

'넌 아무리 해도 나 같은 사람 못 만나.'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 들으면 마치 작은 병에 갇혔던 벼룩이 병이 사라졌을 때도 그 병의 크기만큼 밖에 뛰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의 한계를 너무 과소평가하여 실망과 좌절만 하면서 살게 될 수 있다. 극단적인 케이스로는 학대당하는 피해자들이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맞서 싸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가해자가 있는 장소를 벗어나기 힘들어하는 것도 비슷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자율성이 있고, 나를 위한 선택을 할 능력이 나 자신에게 있다고 자각할 때 주체성이 생긴다고 한다. 주체적으로 행동할 기회가 있어야 그런 주체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세상의 많은 부분은 선택이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선택을 의식적으로 한다는 '자각'이 필요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감각을 키워주려면 주변의 어른들의 인내심이 강해야 한다. 돌봐주고 싶고, 해주고 싶고, 세세하게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은 나쁜 것이 아니기에 맘껏 펼쳐도 될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타이밍을 잘 맞춰서 스스로 하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거나 자신감이 없이 불안한 아이가 될 수 있다. 어른과 아이, 사수와 팀원, 선생님과 학생, 이런 상하 관계에서 제일 힘든 것은 이 기다림인 것 같다.


작은 선택을 하면서 얻는 자신감은 큰 선택도 가능한 어른이 되게 한다. 독립적으로 혼자 설 수 있으며 어떻게든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책임감도 생긴다.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어른을 만나는 것은 큰 복이다. 그렇게 나 자신을 안전지대에서 성장시켜서 나도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어른을 만나면 의심병이 생긴다. 내 능력이 과연 쓸만한지, 내 결정이 옳은 건지 아닌지, 지금 가는 방향이 올바른지를 계속 의심하게 된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무기력을 학습하게 된다. 기준점을 잡을 수 없는 피드백과 내 의견은 항상 묵살되는 관계 속에서 무언가를 시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아무런 힘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일부러 선택을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간단하게 자신이 원하는 카페에서 좋아하는 음료를 주문한다던지,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잠시 걷는다던지 하는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것들로 시작하면 좋다고 한다. 미래의 자신을 더 괴롭게 하는 금융치료는 주체성이 아닌 자괴감을 불러올 수도 있으니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부터 챙겨보는 것이 좋겠다. ㅎ

내 삶은 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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