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의 그림자

그럴듯한 결과보다 그걸 만들게 된 배경이 더 무서워.

by 해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넘쳤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는 사람이기에 항상 이야기가 많은 나였다.

몇 달을 신나게 쓰다가 동네 도서관에서 AI를 학습하는 Learning Circle을 하면서 글이 굳었버렸다.


구글 AI 에센셜들이라는 프로그램을 지원해 줘서 다 같이 각자 학습하고 모여서 복습 및 예습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빅테크 회사의 AI 교육? 권장?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계속 반복해서 들었던 문장은 "AI가 인간의 업무 능력을 크게 향상할 수 있습니다"였다. AI는 인간을 일대일로 대체 하지 않겠지만, 빅테크 회사들이 누구보다 먼저 직원 감축에 돌입했다는 뉴스가 벌써 몇 번 나왔다. 누군가의 업무 능력이 크게 올라가면서 다른 이들의 능력이 필요 없어진 걸 테다.


그들은 모두 AI를 활용할 때 인간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었다.

AI는 거짓 정보를 줄 수 있으니 인간이 AI가 도출한 내용을 꼭 감수해야 하기에 인간이 꼭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내 귀에는 그 말이 '아직 AI가 완전하지 않으니 그 내용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너에게 있다'라고 들렸다. AI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만들어 낸 것을 설명할 때 '할루시네이션'이라는 단어를 쓴다. 마치 사용자가 조심해야 하는 것처럼 들린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지만, 이런 나의 불안과 상관없이 점차 모든 산업에 AI가 도입될 것이다. 그리고 그 도입의 결과는 다시 AI가 분석할 것이기에 속도는 배로 빨라질 것 같다.


AI 분야는 발전이 너무 빠르다. AI를 설명하는 이 프로그램도 이미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정도다. 같이 모여 학습하던 사람들은 그 급한 변화에 대해 접하는 것보다 그 저변에 깔린 AI회사들의 목표가 무엇일지 생각하는 것이 더 두렵다고 했다. 나도 동감한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보던 미치광이 과학자가 생각난다.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에 신나서 점점 더 강력한 것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던 그 과학자!


'난 이런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생각이 떠오르면서부터는 글이 써지지 않았다.

마치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여러 갈래로 뻗은 생각이 서로를 잡아끌어 흐름을 꽉 조여버렸다.


AI가 할 수 없는 것.

인간만 할 수 있는 것.

AI가 가진 제한.

인간이 가진 제한.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니 나의 생각들이 점점 피폐해져 갔다.

물리적인 내 세상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데 내 생각은 알 수 없는 미래에 잠식되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AI에게 없는 걸 생각해 내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몸이 없다.


AI는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시스템을 차용하면서 발전했다. 하지만 그 시스템은 인간의 뇌에 비하면 아직 단순하다. 인간은 무한대로 뻗어갈 수 있는 뇌가 있지만, 몸이 그 능력에 제한을 건다. 왜 이렇게 설계된 걸까? 그 한계를 만드는 시스템이 궁금했다. 몸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런 생각의 끝에 난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이상한 결론 같지만 AI에게는 없는 몸이라는 것에 힘을 길러보고 싶어졌다.


아직 내 불안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조금씩 형체 없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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