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야, 나비야.

나비가 알려준 망각이 주는 자유로움

by 해날

공원을 걷다가 만난 팔랑팔랑 가볍게 날아다니는 하얀 나비가 참 예뻤다.

화려한 무늬와 색상을 뽐내는 나비도 예쁘지만 따스함이 도는 하얀색의 작은 나비의 아름다움도 전혀 모자라지 않다. 나비의 날아다니는 모습이 어딘가 기분 좋아 보이는 발랄함이 있어서 더 자유로워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나비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를 가져다주는 것 같다.


예전에 몬트리올에서 나비가 잔뜩 있는 생물원? 같은 곳에 간 적이 있다.

식물원 같은 환경 속에서 나비가 온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꽤 넓은 곳이었는데 걸어 다니면서 다양한 나비를 계속 보다 보니 마지막쯤에는 눈을 사로잡는 나비의 날개가 아닌 다른 부분도 보이게 되었다. 나비도 결국 머리, 가슴, 배로 이뤄진 곤충이더라. 당연한 건데도 한참을 홀려서 기본적인 것이 보이지 않았던 거다. 근데 참 묘하게도 전체를 인지하게 되니 나비가 더 이상 예쁘지만 보이지 않았다. 나비 입장에서는 참 억울했을 거다.


만약 성체의 나비가 자신의 삶을 기억할 수 있다면,

애벌레 시절의 징그러운 자신의 모습을 혐오하던 사람들의 시선을 기억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자신의 과거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을 수도 있고, 갑자기 생각나면 우울해질 수도 있겠다.

번데기의 시기동안의 혼란스러움을 기억해 성체가 되어도 자신감이 많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데도 과거의 모습에 갇혀 자신의 아름다움을 믿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실은 그 모든 시간을 성실히 살아서 지금의 아름다운 성체를 갖게 된 것인데도...!


물론 유교사상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는 올챙이적 시절을 기억하여 자중해야 하는 개구리처럼, 나비도 애벌레의 시간을 기억해서 현재의 매력적인 성체에도 오만하게 행동하지 않고 겸손해야 할 거다. 정성을 들이고 성실히 사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일 뿐이니 번데기 시간의 혼란스러움도 그렇게 큰 고비도 아니라고 세뇌될 거다.


흠... 나비가 유교사상을 몰라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해서 정말 다행이다.

경거망동하지도 않았는데 개구리와 함께 묶여 겸손 수업을 듣지 않아도 돼서 정말 다행이다.

그저 현재의 자신에만 집중하여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살아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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