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과 긍정이 합쳐서 부정이 되는 경우가 없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으면 어떤 이유로든 기분이 좋아진다.
찬찬히 그 칭찬을 곱씹으면서 더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
물론 풍선에 바람 빠지듯 스르륵 사그라들기도 한다. 그래도 기분 좋음은 은은하게 남아있다.
그 사람은 평소에 이러니까 내가 그렇게 보였겠거니.. 하는 논리적인 이유가 생각나면, 그냥 우린 다른 것인데 칭찬을 해준 사람이 고마워지기도 한다. 나는 그 사람에게 나쁜 맘을 먹고 나쁜 말을 한 적도 있는데, 그 사람은 나에게 좋은 말만 계속하면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미안한 마음에 계속 좋은 마음으로 대하면 난 계속 좋은 사람이 된다. 실은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도. 나에게도 그랬던 사람이 있을 거다. 다른 곳에서 다르게 말했기에, 미안해서 잘해주는 사람이 있겠지. 혹시나 나중에 알게 된다고 해도 미워하지 않아야겠다. 쩝.
칭찬으로 기분이 좋아지면 자신감이 왠지 올라가고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마냥 뿌듯해진다.
하지만, 이건 허상이다. 이런 생각은 누군가의 질책이 오면 바로 솜사탕이 물에 녹듯 사라진다. 솜사탕을 물에 씻어 먹으려고 했던 원숭이의 얼굴이 생각난다.
이런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일희일비하는 나 자신을 항상 부처의 웃음을 지닌 사람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남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며 가치절하 해야 희비 하지 않는 걸까?
어떤 의견이든 나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다며 나의 기준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하는 걸까?
모든 의견에 거리를 두고 멀찍이서 관찰자로 구경만 해야 하는 걸까?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다른 것은 무시하면 일희일비하지 않는 걸까?
나는 몇 가지 방법으로 의견을 접수하는데, 일단은 많은 접수되는 의견은 신뢰도를 높게 측정한다. 어디 가나 이 사람 저 사람 다 같은 말을 한다면 그 의견은 나에게 맞게 들리는 말이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나를 볼 때 나올 수 있는 의견인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어디 가나 머릿결이 좋다는 말을 듣는다면 나는 타고났거나 관리를 잘하거나 하는 이유로 머릿결이 다른 이보다 좋은 것일 테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나에게 웃음소리가 호탕하다고 한다면, 내가 크게 웃는다는 얘기일 테다. 이런 방법으로 접수된 의견은 신뢰도가 높다.
다른 방법은 나에 대한 의견을 말하면서 얘기한 배경이 내가 생각하는 나와 비슷할 때 그리고 자세할 때, 그 사람의 의견은 귀담아듣는다. 나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서 나를 분석해 주는 사람은 의견이 옳고 그르고 가 없다. 우선은 경청한다. 그리고 계속 잘 생각해 본다. 수긍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의견은 전체적으로 접수한다. 나에게 소중한 인연이기에 나도 잘 기억해 두려고 애쓴다.
칭찬을 받던, 질책을 받던,
다른 이의 의견은 실은 상대적이다.
내가 나에게 내리는 의견은 대부분 절대적이다.
그 성질이 다르기에 다른 이의 칭찬과 질책이 나의 본질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의견을 제시한 사람과의 관계는 그 의견의 내용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질책을 해도 수용이 가능하면 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지만, 칭찬을 해도 뭔가 꺼림칙한 게 느껴진다면 멀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