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없는 사람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를 생각하면,
왁자지껄한 교실에서 혼자 차분히 칠판을 보고 앉아 수업을 준비하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 있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난 거기 있었지만 없는 사람이었다.
학교가 이상한 동네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당시 우리 반 애들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난 그들에게 낯선 이방인이었고 그들도 새로운 생활의 시작이기에 설렘, 두려움, 즐거움, 걱정들을 서로 나누느라 바빴을 뿐이다. 내가 6학년 말에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갔고 그래서 이런 상황이 생겼을 뿐 무슨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며칠이 지나고 주변을 볼 여유가 생긴 친구들 중에 인사를 걸어오는 친구도 생겼고 난 그럭저럭 대충 섞여서 지내기 시작했다. 표면상으로는 그랬다. 곧이 고대로 듣는 나와 엄마의 성격 탓에 난 그 길었던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아침마다 얌전해지지 않는 내 머리카락들과 싸웠다. 분명히 생머리였는데 자르니 곱슬이 되어있어서 도대체가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내 머리카락은 나보다 먼저 사춘기가 왔다. 내 몸을 녹색으로 휘감는 교복도 참 별로였다. 옷장에는 들이지도 않을 색을 누가 교복에 썼는지 녹색어머니회도 이보다 녹색일 수는 없을 거다. 심지어 스타킹도 녹색을 팔았다. 녹색을 가장 좋아하는 지금 되돌아봐도 그 녹색은 정말 옷에 쓸 색깔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 색을 학교 전체가 입고 있으니 참 가관이었다. 겉으로는 초록초록했던 중학교 생활.
이미지와 감정으로 각인된 '군중 속의 고독'의 순간은 그 처음이 강렬해서 그런지 생각하면 항상 나를 중학교에 입학시키지만 실은 그 후속 편이 여러 개가 있다.
분명히 한국어인데 받아쓸 수는 있어도 뜻은 하나도 모르겠는 대화를 하고 있는 애들 사이에서도 겪었고, 다민족 사이에서 믿을 수 없게도 중학교 교복보다 더 촌스러운 교복을 입고도 겪어봤고, 식탁보 같은 치마를 입고도 겪어봤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첫날에 친구들을 많이 사귈 거라면서 환한 웃음과 작은 선물들을 들고 가는 타입은 아니라는 거다. 최대한 없는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서 상황을 파악하는 타입인 것 같다.
나에게 1 대 다수인 상황이 힘든 이유는 내가 상대적으로 약자처럼 느껴져서 그런 게 아니다. 물론 그런 상황도 겪어봤지만, 그럴 때는 오히려 각오를 하고 가기에 덜 어렵게 느껴진다. '다 덤벼' 모드일 때는 다가오는 모두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하면 되니 괜찮은데, 그 자리와 사람들이 파악되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니 그게 어려운 것 같다. 역할이 정해진 곳에서는 그 역할에 맞는 행동을 하면 되는데, 그저 나로 있을 때는 어느 만큼을 내놓아야 하는지 기준이 없는 거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상황은 새로운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처음으로 하게 되는 상황이다. 생각해 보면 자기소개는 처음 하는 사람이 항상 길이나 내용의 기준점이 돼서 나머지가 모두 비슷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나처럼 낮은 텐션의 사람을 시키면 안 되고 무리 중에 가장 즐거워 보이는 사람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부러 밝게 해 봐도 다 보이는 것 같더라...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이제 '군중 속의 고독'은 '고독의 재미'가 되었다.
첫째로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일 때 군중은 실은 한 집단이라기보다는 많은 개인의 모임이라는 것을 알았다. 1대 다수가 한 사람 대 한 집단이 아니라 한 사람 대 여러 개인들로 시각을 바꾸니 다들 나와 같은 상황이라는 이해가 생겼다. 두 번째로는 나에게는 사람들 구경이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구경이라 이런 상황은 관찰의 기회가 된다. 옷차림, 말투, 행동, 표정 등을 보면서 혼자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고 마치 실시간 소설 읽기처럼 구성해 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세상은 어딜 가나 '군중 속의 고독'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내가 재미를 느낄 정도로 마음이 편한 상태가 되니 경계가 풀리고 다가와 말 걸어 주는 사람을 감사한 마음으로 대하게 되었다.
혼자 잘 있어야 다른 혼자를 잘 만나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