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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켜쥐기 연습

그건 내려놓고 이걸 잡아야지

by 해날

세상에 오래 있었던 분들은 간혹 자신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휘둘렀던 자신을 후회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더 해볼걸 그랬다, 남의 의견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더라 하는 회환을 말합니다. 결국 들었어야 하는 소리는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오는 소리였으니 남에게 크게 해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자기 자신으로 살라고 조언합니다.


지금보다 조금 덜 살았을 때는 이런 이야기가 뭔가를 선택할 때 듣게 되는 수많은 의견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입학, 진로 선택, 배우자 선택 등의 인생에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내 의견보다 우선시하면 이런 후회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오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남의 의견에 휘둘리는 상황이 용서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처음엔 내가 용서를 해야 할 일이 생기고 살면서는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이 생기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반대의 순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내뱉는 말들이 얼마나 칼날같이 날카로운지 때 묻은 어른들은 모두 한 번쯤 깊이 찔려봤을 겁니다. 정직한 눈으로 보는 세상에서 이미 관습에 쩔어버린 어른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분명 나도 그런 아이의 시기를 지나서 사회성을 지닌 '원래' 그런 사람이 되었을 테니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치만, 이런 관계는 모두 면죄부를 줄 수도 있으니 그저 한쪽 눈 감고 슬쩍 넘겨주기로 해봅니다.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고, 전부 좋은 사람이나 전부 나쁜 사람은 없으니 웬만하면 그냥 서로 잘 어울려 산다고 하시는 세상을 오랜 시간 겪었던 분들도 얘기하다 보면 가슴에 크던 작던 한으로 박힌 용서하기 힘든 순간들이 하나씩 있습니다. 상처와 용서는 동전의 앞 뒷면 같은 거라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둘이 전혀 연관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상처는 치료를 해야 나아지고 다 나은 후에는 흉터가 남습니다. 깊은 상처일수록 치료가 쉽지 않은 이유는 무의식의 영역까지 할퀴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치료가 쉽지 않습니다.


상처를 만든 이가 누구이건 용서해야 할 사람은 항상 둘 이상이 됩니다. 나 자신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나이지만 내가 아닌 그 누군가도 용서해야 하고, 나에게 상처를 준 이도 용서해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습니다. 둘 중 누구든 내 가슴에 남아서 나를 괴롭힌다면 나는 결국 오롯이 나 자신이 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나 '현재를 움켜쥐어라'라는 말은 이런 상황에서 엮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내 삶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생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새겨볼 수 있습니다. 그 많은 사건 사고와 항상 가까이 있는 죽음에서 벗어나 살아있다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모든 순간을 움켜쥐어야죠. Seize the day! 오늘을 잡아서 최대치를 뽑아내라! 그러려면 미워할 에너지와 시간이 아까우니 나의 미움과 화를 놓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순간들이 모이면 언젠가는 다 내려놓고 용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은 다 놓지 못했지만, 내 삶은 소중하니까 오늘도 해봅니다, 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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