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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탕과 온탕사이

36.5도는 어디에든 적응할 수 있다.

by 해날

지킬 앤드 하이드.

아수라 백작.

두 얼굴의 사나이.

모두 작품을 직접 접한 적은 없다. 그저 서로 상반된 두 자아가 한 사람에게 나타날 때 언급되는 표현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이런 모습이 있지 않나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한국인에게 인기 많은 성격테스트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적이 있어서 좀 더 생각해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난 내향형 인간으로 살고 있다. 그니까 난 I로 시작하는 타입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는 상당히 외향적인 성격이었어서 E로 시작하는 타입이었다. 20대 후반에 우연히 전문가에게 이 테스트를 받은 적이 있어서 진단지가 남아있는데, 그 전문가 분이 어떤 항목에 수치가 많이 높다면 실은 반대 성향을 보완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일 수 있으니 더 자세히 검사해야 진정한? 타입을 알 수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외향형이었다가 내향형으로 바뀐 건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른 세 가지는 그럼 왜 반대가 나오는 것일까?

숲을 보다가 나무를 보는 타입으로 바뀐 걸까?

모험적이었다가 놀라는 경험을 하고 은둔형이 된 걸까?

세상 모든 것을 경험할 것처럼 나대다가 내 상상 속이 제일 재밌다는 것을 알게 된 걸까?

여러 가지 개인 적인 경험을 떠올리며 수수께끼를 풀어보려고 애쓰다가 깨달았다.


디아스포라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지킬 앤드 하이드 상황이구나...!


일명 '서구권'으로 이주했기에 사회를 잘 몰랐던 나는 우선 덤벼보자 하는 방식의 삶을 선택했다. 흥미를 기준으로 삼아 이방인으로서의 이점을 누렸다. 이방인은 룰을 모를 것이라 기대하니 실제로 어리숙하게 행동해도 지적당하지 않는다. 태도만 정중하면 뜻밖의 혜택을 얻게 되기도 한다. 난 열심히 관찰했고 정보를 모아서 비교하며 나의 길을 정했다. 하지만 항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고 불안한 마음을 조금은 과한 당당함으로 가려야 했다. 서구권에 익숙한 사람의 모습을 적당히 섞어가며 나를 만들어 갔다.


한국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그냥 오롯이 나로 존재하며 '잘 아는 사회'에서 경계를 풀고 편안하게 있을 수 있기에 좀 더 안으로 집중하지 않았을까 싶... 까지 생각을 하다 보니 오히려 반대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다르면 주목을 받는 사회이기에 외국인이라는 타이틀 아래에 숨었던 것 같다. '잘 아는 사회'라 숨는 방법은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나만의 공간에서 마치 명상하는 사람처럼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한국을 떠나 받았던 다양한 자극들을 떠올려서 하나씩 야금야금 소화하는 과정을 보내며 내향형으로 나의 에너지를 안에서부터 충전하게 된 과정으로 느껴진다.


재밌는 것은, 가장 최근에 전문가에게 다른 종류의 성향? 성격? 테스트를 하게 되었는데 '알 수 없음'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분명 진지하게 응했는데, 상담가께서 급히 하셨는지 결과가 오염된 듯 보인다며 그런 경우에 이렇게 어떤 타입으로 특정하기 어려운 영역의 점수가 나온다고 하셨다. 급히 하지 않고 상당히 집중한 상태에서 했지만, 하나로 결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고 말씀드리면서 다문화권에서 살다 보니 어떤 특정타입으로 살지 않게 되더라는 얘기를 했다. 이런저런 질문을 추가로 하시더니 나의 타입은 알 수 없음이 맞게 반영된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런 사람도 있다면서 그게 그냥 자신이라고 받아들여 살면 어떠냐며 밝은 목소리로 격려? 해 주셨다. 상담사님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맑은 시냇물 같은 즐거움에 덩달아 나도 기분이 무척 좋아졌었는데, 이제 생각해 보면 내 지킬과 하이드를 전문상담가 분이 다 인정해 줘서 기분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던 것 같다.


난 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형태를 정하지 않고 흐르는 대로 흘러가고, 담는 그릇에 맞춰 변형되는 그런 타입의 사람이 되고 싶다.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듯 보이다가도 소나기처럼 내리고 고인 듯 보여도 스며들고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에이치투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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