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집

내가 준만큼 돌려주는 공간과 마음의 정직한 주고받기

by 해날

십여 년 전에 나는 단 한번 여행을 가 본 낯선 도시에서 일을 하며 살기 시작했었다.

누구나 꿈꾸는 바닷가 도시에서 살아보기를 할 수 있어서 무척 들떠있었다. 야자수가 줄지어 있는 공원 근처에 있는 원룸빌딩에 301호가 나의 첫 혼자살이의 보금자리였다. 신축이어서 집은 깨끗했고, 분리형 키친을 가진 구조였다. 베란다도 있고, 화장실에 예쁜 조약돌 타일도 깔려있었다. 집세의 대부분과 보증금은 직장에서 부담해 줬고 가구도 장만해 줬다. 물론 나올 때는 다 두고 나오는 조건이었지만, 내가 처음이어서 다 새 제품이었으니 불만은 없었다.


서울에서 먼 곳이라서 서울에 다녀오려면 고속버스를 타야 했다. 처음에는 서울에 갈 일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2주에 한 번은 왕복했다. 서울의 빌딩숲과 푸른 바닷가 공원이 모두 내 일상 속에 있었다. 버스 타는 것이 조금씩 지루해질 때쯤 바깥 풍경을 감상하다가 산중턱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들을 보았다. 누군가의 집이었다. 디자인, 효율성, 업사이클링 같은 테마를 위해 거주라는 용도를 가진 건물이 아니었다. 그 앞에 앉아있던 피부색이 진했던 사람은 외국인 노동자로 보였다. 한국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고향에서의 안락함을 얻어가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풍경은 곧 다른 모습으로 변했고 '컨테이너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은 거기서 마무리되었다. 그 이후에도 새로운 모습은 없었기에 그 풍경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한두 해가 지나고 난 그 해변가 도시를 떠나 다른 해변가 도시로 갔다.

조개껍질 모양을 못 하나 쓰지 않고 지었다는 오페라 하우스가 하버브리지 옆에 있는 해변 도시 시드니로 갔다. 일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길면 일 년 정도 머무를 생각이었다. 모두들 농장을 간다기에 농장생활이 궁금했던 나는 언어구사력과 상관없이 농장의 일자리를 찾았다.


운이 좋게 농장의 일자리는 금방 찾을 수 있었고, 시드니에서 2시간 정도의 거리였다. 도착한 농장에서 내가 머무를 방을 안내해 줬는데, 가보니 컨테이너 박스를 세 등분하여 만든 방이었다. 방 안에는 침대와 옷장, 서랍장이 있었고 창문도 있었다. 문을 잠글 수 있는 자물쇠도 줬는데, 잃어버리면 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침낭이 있으면 가져오라고 해서 가져간 터라 침대에 침낭을 올려놓고, 들고 간 캐리어와 백팩은 서랍장 옆에 두었다. 뭔가 기분이 묘했다. '컨테이너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는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가.


매니저가 나를 일찍 들어오게 한 거여서 며칠 동안은 스케줄이 없었다. 둘러보니 컨테이너는 서너 개가 있었고 어떤 방에는 두 명도 있었다. 친구들이 같이 왔거나 와서 친구가 된 것 같았다. 난 내 컨테이너 방에서 총 3주 정도 머물렀는데, 한번 정도 빗자루로 쓸었을 뿐 잠잘 때 외에는 거의 들어가지도 않았다. 거의 창고 같은 상태였다. 하지만 모두가 나처럼 사용했던 건 아녔다. 어디서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장판이 깔려있는 방도 있었다. 지금은 비싼 돈을 주고 사는 캠핑박스지만 그저 우유박스 같은 농장 여기저기 있는 박스를 수납장, 책상, 티테이블 등으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이도 있었고, 방 안에 철사를 연결하여 빨랫줄도 하고 데코레이션도 하는 이도 있었다.


자신이 머무르는 공간을 애정을 갖고 돌보는 모습이 성숙한 어른의 모습 같다고 느껴졌다. 잠시 머무르는 거지만 그동안에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자신의 기준에 맞게 만드는 것은 본받을 만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 내 방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한 이도 있었다. 매일 일이 끝나면 티셔츠를 빨아 널던 친구였는데, 난 뭔가 소꿈장난 하는 느낌이 들어서 괜찮다고 했다. 아직도 모르겠다. 잠시 머무르는 공간이라 생각해서 거절한 것인지, '컨테이너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아 거절한 것인지.


어느 프레임을 부숴버리지 못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의 난 성숙한 어른에서 한참 모자랐다. 그래도 지금의 나는 조금 성장했기에 지금의 내가 다시 그 컨테이너 방으로 돌아간다면 창고처럼 취급하지는 않을 거다. 그때의 난 내 마음속도 창고 같았기에 그 방의 삭막함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내가 컨테이너 방의 나를 만났다면, 삭막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방을 예쁘게 꾸며줬을 거다. 도와주겠다고 했던 그 친구의 말을 고맙게 받아들여 같이 박스도 찾고 고맙다고 밥도 대접하고 그랬을 거다.


작가의 이전글B와 D 사이의 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