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다, 너.

색깔은 우리 머릿속에 있는 것

by 해날

자아가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 중에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실험이 있다. 거울 속의 형상이 나라는 것을 인식하면 자아가 있는 것이고 타인인 줄 알고 공격하거나 거울 뒤로 가본다거나 하면 자아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본다고 한다. 인간은 자아를 인식하는 동물이다. 나도 거울을 보면서 이게 나의 외모구나... 하고 인식한다. 다만 거울 속에 있는 내 모습이 항상 낯설다.


사진에서의 나의 모습과 거울에서의 나의 모습이 많이 달라서 낯설다기보다는 뭔가 정이 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넌 이런 얼굴을 하고 살고 있구나 생각할 때도 있고, 사람들은 너의 외모를 어떻게 생각할까 물어볼 때도 있다. 난 거울을 보지 않으면 내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오히려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내 얼굴을 훨씬 오래 자주 많이 보게 된다. 그들이 내 외모에 나보다 더 익숙한 것이다.


난 내 몸과 연결되어 이동을 하고 몸을 통해서 소통을 하고 교류를 한다. 하지만 가끔 몸만 존재하고 있을 뿐 마음과 생각은 다른 곳에 있을 때도 있다. 몸, 마음, 생각은 다 따로 행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나의 외모는 A라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도, 마음과 생각은 다른 분위기 일수도 있다. 동안이라고 신체나이가 어린것이 아니고, 노안이라고 생각이 깊은 것도 아니다. 인상이라는 것은 안에 들어있는 정신세계를 반영한다고 한다. 인상은 생김새와 분위기가 함께 작용한다. 거울에 비친 나를 볼 때 보이는 것은 생김새일까 분위기일까 인상일까?


나를 잘 아는 사람들과 쇼핑을 가면 내 스타일이라면서 보여주는 다양한 물품들이 있다. 열에 아홉은 내 스타일이다. 캐주얼, 정장, 스포츠웨어 등등 옷차림도 다양하고 거기에 액세서리까지 보자면 엄청나게 광범위한 영역인데도 내 스타일을 쏙쏙 잡아낸다. 나도 가까운 사람들의 스타일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린 정작 뭔가를 사려고 쇼핑을 가면 대부분의 것들이 내 스타일이 아니라며 적절한 '내 것'을 고르는데 한참의 시간을 소비한다.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쇼핑을 마치고 집에 오면 '내 것'은 비슷한 스타일의 내 다른 것들 사이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이 온갖 색을 품고 있는 모자이크 같아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도대체가 모르겠는데 타인은 나라는 하나의 작품을 보고 있으니 그 현란한 색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이미 어떤 형상을 이룬 듯 보이는 것 같다. 말하자면 나는 위험한 빨간색, 서늘한 파란색, 차분한 초록색, 통통 튀는 노란색으로 자꾸 바뀌는 자신이 적응이 안 되는데 멀리서 봤을 때 난 일곱 가지 색을 가진 무지개인 거다. 하지만, 방금 경계가 모호한 보라색이었던 나는 거울에 보이는 다른 여섯 가지 색을 더 가진 무지개가 너무 낯설다. '니가 이런 색도 가진 애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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