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이래서 무서운 건가 보다
코 끝부터 꼬리 끝까지 딱 두 뼘이었던 검은색 털북숭이는 한때 37킬로까지 커졌었다.
자고 일어나면 커지는 그 속도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어린 모습을 기억하는 가족들에게는 커다란 덩치의 어린이였지만, 산책을 나가면 그 외모에 놀라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놀라지 않는다면 개를 키우는 사람인가 보다 싶었다. 하지만, 그 몸집과 달리 성격은 무척이나 온순하고 친근했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사진만 봐도 순한 친구라는 것을 알아볼 정도였다. 노견이 되어서도 학습이 가능할 만큼 영리했고, 상황 파악도 무척이나 빠른 친구였다. 인내심도 넓어서 나중에는 오빠처럼 느껴졌다.
하루는 엄마가 혼자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뭔가를 계속 살펴보며 돌아다니기에 무슨 일인지 물어봤는데, 코스트코에서 연어를 사 온 것 같은데 없는 것 같다고 못 찾겠다고 했다. 사 왔는데 어떻게 없어지겠느냐 사 온 걸로 착각하는 걸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얼마뒤에 우리는 울 집의 커다란 털북숭이가 서랍형 김치냉장고를 여는 능력을 얻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야 엄마의 수수께끼는 풀렸다. 분명 연어를 사 왔는데 없어졌고, 키친 바닥에 스티로폼 패키징이 떨어져 있던 이유가 이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었구나...! 엄마와 나는 그 큰 연어를 어떻게 한 번에 다 먹어치웠는지, 그러고도 어떻게 배탈이 나지 않았는지, 울 집의 큰 개의 위장에 몇 번이고 놀라고 또 놀랐다. 그때의 우리는 개라는 동물을 잘 몰랐다. 래브라도는 더 몰랐다.
우리가 뭔가를 입에 넣는다는 건 그를 부른다는 말과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개를 모르기에 무엇을 먹여도 되는지 안되는지 몰라서 무조건 안 먹이는 쪽을 택했다. 항상 '이건 너 먹는 거 아냐'라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개들의 그 간절한 눈빛은 사람의 마음을 스르르 녹여버린다. 먹어도 되니까 이렇게 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개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검색했다.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은 닿지 않는 곳에 두었다. '닿지 않는 곳'이란 리스트는 점점 짧아졌다. '오빠'는 참 먹고 싶은 것이 많았다.ㅎ
"안 먹는대. 냄새 맡더니 쳐다보지도 않는데...?!"
"걔는 그러더라. 한번 안 먹으면 다시 줘도 안 먹어."
현재 같이 살고 있는 울집 네발 식구는 음식에 덤비지 않는다. 단단한 앞니로 어떻게든 꺼내가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는 스낵의 예상 낙하지점에도 관심이 없다. 내 손에 더 남아있는지 아닌지 확인하지도 않는다. 침의 양으로 호감도를 표시하는 일도 거의 없다. 방에서 스낵 봉지를 부스럭거린다고 올 일은 없다. 그 봉지를 열어서 바닥에 떨어뜨리고 5초에서 10초는 되어야 등장한다. 이것도 항상 있는 일은 아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몇 년 전 한국에서 간식을 사 왔다가 봉지 하나를 거부당한 적이 있었다. 다른 간식을 두 세 종류 더 사 왔으니 망정이지, 정말 크게 슬플 뻔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집 식구들은 말한다. "OO이는 안 그랬는데..."
둘째의 서러움을 겪고 있는 울집 네발 식구는 새초롬하고 독립적이다. 식탁에서 밥을 먹는데 저 멀리서 옆으로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이 낯설지만, 좋아하는 간식 앞에서는 온갖 애교를 부린다. 삶은 댤걀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달걀 까는 소리만 나면 어느샌가 옆에 앉아있다. 래브라도의 3분의 1 크기라서 발소리도 거의 안 들리기에 옆에 있는 걸보고 깜짝 놀라는 때가 많다. 자신도 그 음식을 좋아한다고 큰 몸짓으로 크게 어필하지는 않지만, 코로 계속 허벅지를 누른다. 가끔은 급한지 앞발로 긁기도 한다. 그게 그녀에게는 최대치라는 것을 알기에 알았다고 꼭 말해준다.
친근했던 우리 '오빠'는 그만큼 스킨십도 많았다. 간식을 줄 때면, 마치 "맛있겠다. 나 먹을래. 나 줘. 얼른 줘. 몇 개 줄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손바닥에 올려 주면 침으로 범벅을 해놔서 다 주고 나면 꼭 손을 씻어야 했다. 소파에 앉아있으면 와서 꼭 등이나 다리를 내 몸에 닿게 앉았다. 손을 멀리 뻗을 필요 없이 그저 쓰다듬을 수 있었다. 그 큰 몸을 안을 수 있게 내줘서 둘이 낮잠도 잘 수 있었다. 물론 개들은 우리보다 체온이 높으니 처음에는 좋았더라도 금방 더워지고 그 뒤는 참아주는 것이었을 테다. 그걸 알았기에 금방 갈 수 있게 해 주면 가기도 하고 또 머물기도 했었다.
지금 친구는 엄마 옆에서도 잘 잔다. 바닥에서도 자고, 복도에서도 자고, 자기 자리에서도 잔다. 자유로운 독립체이다. 쓰다듬으면 가만히 있기도 하고, 표로롱 가버리기도 한다. 먹을 건 선정해서 먹는다. 먹어보고 맛없으면 뱉는다. 그럼 다시 주워 먹지 않는다. 한 번은 내가 계속 맛있게 먹으니 다시 한번 입에 넣어보더라. 하지만, 다시 뱉었다.ㅎ 아무래도 자신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나 보다.
친근한 '오빠'와 독립적인 친구 둘 다 똑같이 하는 것은 있다.
사료나 물을 채워주면 나를 올려다보고 눈을 맞춰준다.
마치 '고마워'라고 말하듯이 잠시 따뜻한 눈빛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