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한 사람이 초등교사라는 직업을 택하기까지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각각의 이유들을 펼쳐가다 보면 한 가지는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시절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공통점 말입니다.
제가 다닌 학교는 경기도 시골의 전교생이 20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학교였습니다.
그 오래된 학교에서 저는 구름사다리에 거꾸로 매달려 고목들이 형성해 준 그늘을 즐기며 자랐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밖으로 나가 단체 줄넘기를 하였고, 우유급식을 해주는 물류차에 매달려 있는 친구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곤 하였습니다.
정월대보름 즈음 수업 때는 논으로 나가 쥐불놀이를 하였으며 점심시간에는 뒷산을 올라 밤을 주워오곤 했더랬죠.
교사의 눈으로 다시 되돌아보면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일과였습니다.
그 학교에는 갓 발령을 받아서 오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시골의 소규모 학교라 한 명의 교사당 참 많은 업무들이 있었을 것이고 선호되지 않는 학교였기 때문 아닐까요. 초등학생 때는 학교로 저녁 산책을 가도 켜져 있는 교실을 보며 우리 선생님이 근처에 친구가 없어 심심해서 학교에 남아 계시는구나 생각하곤 했어요.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였습니다.
"선생님 신규시죠?"라는 얘기를 학부모 상담 첫마디로 했다는 저희 반 학부모의 일화를 들어서일까요.
보통의 신규들보다 조금 더 나이가 차 교사가 된 저는 신규교사인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초등학생일 때는 '우리 반 선생님은 신규다'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더 당돌하게 빼빼로데이에 빼빼로를 가져오지 말라는 선생님 말을 어기고 강당에 빼빼로를 친구들과 단체로 숨겨놓고 주고받았던 것 같습니다.
소외되는 친구를 살필 시야가 아직 장착되기 전이었다는 말로 변명할 수 있을까요.
지금의 저는 "왜 우리 반만 점심을 먹고 기다렸다가 같이 교실로 올라가야 돼요?"라는 학생의 질문에 "선생님 마음"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 학생도 우리 반에 선생님이 지켜보지 않는 매 순간 문제행동이 나타나는 학생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는 깨달을 때가 올까요.
신규발령을 받고 두 달여간은 매일매일 그 학생을 대하며 제가 소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첫 주에 지도를 하며 "선생님이 ㅇㅇ이 좋아하는 것 알지?" 했을 때 "아뇨,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한 순간부터였을까요. 저는 우리 반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을 주고 있는데 그 학생은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저를 거부했습니다. 그 학생은 제가 교실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문을 몸으로 막고 있기도 했더랬어요.
학부모상담날 올해는 "선생님 신규시죠?"대신 "선생님은 저희 애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나요?"라는 학부모의 말에 "저는 1대 23을 지도하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수업 시 ㅇㅇ이가 문제행동을 할 시 계속해서 하지 말라고 지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을 때의 무기력함 때문일까요. 제가 교사로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저를 지나갔던 많은 선생님들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그분들도 처음 시작이 힘들었을까. 나에게는 그 시절이 행복한 기억인데. 지금 내가 힘들지만 내 학생들도 나중에 지금을 행복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ㅇㅇ이 보호자께서 아이에 관한 진단을 받으셨다고, 다른 학교에서 새롭게 출발해보고 싶으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같은 날 은사 찾기를 통해 번호를 남겨놓았던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다정함이 있었습니다.
긴 시절을 지나면서도 다정함을 지키고 계시는 선생님들이 존재한다면, 저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 저는 50여 일 만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힘이 들었습니다. 목소리에 너무 많은 힘을 주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게 필요한 것은 큰 목소리가 아니라 다정한 목소리 아니었을까요.
조금 더 힘을 빼고, 조금 더 단단하게.
결국 다정한 것이 살아남으니까.
그렇게 교사가 되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