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도 적었다시피 저희 회사는 한창 새로운 사람들을 채용하고 있는데요. 영국 회사이다 보니 인터뷰를 하면서 백인 영국인도 있고, 인도계 영국인도 있고, 동양인도 있고 참 다양한 후보자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게 있습니다.
백인 영국인들은 CV나 포트폴리오를 보면 딱히 뭐 특출 난 것도 없는데 굉장히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인터뷰를 하는 반면, 동양인들은 굉장히 멋진 이력과 포트폴리오를 가지고도 수동적이고 부끄러워하며 자신감이 결여된 모습을 보인다는 겁니다.
예시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최근 아시아계 후보자 엘리 Elly(가명)와 백인 영국인 후보자 존 John (가명) 둘 을 인터뷰했다고 칩시다. 인터뷰를 할 때는 엘리는 뭔가 수줍어 보이고, 겸손하지만 뭔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 같다는 인상을 주진 않습니다.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아 팀원들과 잘 어울릴 것 같지만, 음.. 면접관에게 확실한 Yes를 주긴 부족해 보입니다.
존은 인터뷰가 굉장히 편안해 보입니다. 면접관들과 가벼운 농담도 잘하고, 자기의 강점이 무엇이며 지난 회사에서 어떤 걸 해왔는지 자신감 있게 말하는 편입니다. 면접관들의 반응이 좋습니다.
자, 최종 결정을 위해 그동안 했던 면접 과제, 이력서, 포트폴리오를 놓고 팀원들이 모여 비교 검토를 합니다.
이런? 엘리의 모든 것이 존을 뛰어넘습니다. 포트폴리오, 과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했습니다. 모두가 놀랍니다. 그런데 왜 인터뷰에서만큼은 엘리는 자신감이 없어 보였던 것일까요??
이건 사실 엘리만의 문제가 아닌, 동양인인 저 스스로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인데요. 저도 실제로 지난 영국 런던 투자회사에 6개월 동안 공석이었던 디자이너 자리에 1등으로 합격을 하고도, 회사를 처음 다니는 4개월 동안 자신감이 결여된 채 불안해하며 회사를 다녔습니다.
현재 영국에서 7번째로 큰 은행으로 이직을 하고도, 잡 (job) 공고에 너무나 많은 월급을 보고 겁이 난 나머지 내가 붙을 거라는 생각을 안 하고 면접을 봤습니다. (물론 면접 준비는 피와 땀을 갈아서 했지만요.)
이유가 뭘까요? 사람의 행동양식과 그 이유에 대해 관심이 많은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한번 생각을 해봤습니다.
1. 외국인(소수자)으로서 사는 삶이 더 힘들다. 그리고 이는 자신감 하락의 자연스러운 원인이다.
백인 영국인들이 주류(Majority)로서 영국에서 받는 가시적, 비가시적 혜택, 사회적 자원들은 당연히 소수자의 그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살면서 한 번도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는 이들의 어려움을 생각할 필요도, 이해할 필요도 없었듯, 자연스레 그 나라의 주류로 살며 얻는 혜택은 이들의 자신감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됐을 거라 생각합니다.
언어를 따로 배울 필요가 없었고, 그 나라의 주류 문화를 알고, 백인이라면 친구 사귀기도 소수자보다 더 쉬울 것이고. 게다가 대부분의 영국 회사들은 웬만해서는 영국인들을 먼저 고용하려는 편이니까요.
비자가 없는 외국인이라면, 실력과 상관없이 회사가 비자를 지원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말 많은 탈락을 경험할 수 있는데요. 대부분의 HR들이 탈락 메일을 보낼 때 "우리는 비자를 지원해주지 못해서 너를 탈락을 시켰다." 고 일일이 명시하지 않고, 대부분 "아쉽게도 이번은 인연이 닿지 않았다." "더 맞는 사람에게 자리가 갔다."라며 돌려 말하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를 알기 힘듭니다. 그러니 자신의 실력 때문에 떨어진다고 생각을 하게 되죠. 이는 자신감 하락에 큰 원인이 됩니다.
2. 언어적 문제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듣고 체득한 언어가 아닌, 다 커서 배운 남의 나라 언어를 하다 보면 자신감이 떨어지는 건 당연합니다. 물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유럽인들도 영어로 일 잘하지 않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 있습니다. 그런데 알파벳을 공유하고, 비슷한 단어가 많고, 어순(문법)이 동일한 제2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이와 정말 반대되는 언어를 배우는 것은 다릅니다.
유럽인들이 비슷한 언어 그룹인 영어를 배우는 것과, 아예 다른 언어 그룹인 아시아계 언어를 배우는 데는 실로 4배에 가까운 시간 차이가 납니다. (1,100 시간 vs 4000시간)
http://learnalanguageortwo.blogspot.com/2007/12/how-long-does-it-take-to-learn-language.html
3-1. 문화적 문제- 자신감을 중시하는 서양문화, 겸손함이 인정받는 동양 문화
물론 영국은 미국만큼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거나 자신감에 뿜뿜 차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동양에서 요구되는 만큼의 '겸손함'이 요구되지는 않습니다.
동양문화는 내가 뭘 잘하고 뛰어나더라도 그걸 굳이 입으로 동네방네 떠벌리기보다는 "아휴~ 아니에요" "아직은 부족해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요? 그리고 그런 겸손한 사람들이 실제로 주변의 존경을 받고 신임도 얻고, 성공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여기는 내가 잘한 것에 대해서 정말 잘했다고 당당하게 얘기하지 않으면, 아예 못하거나 안 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면접 또는 연봉 협상, 인사평가 시에, 내가 직접 한 것이고 심지어 결과까지 좋았던 것이라면 당당하게 그렇다고 공격적으로 표현하고, 그에 맞는 합당한 대가를 요구해야 합니다. 요구안 하면 아무도 알아서 연봉 안 올려줍니다.
3-2. 문화적 문제- 칭찬에 후한 서양문화, 칭찬에 각박한 동양문화
영국 회사를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단점보다는 장점을 많이 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별로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지 않은데, 칭찬에 굉장히 후하고요. 발표 마치거나 뭘 할 때마다 "Great work!" "You're amazing" 라면서 칭찬을 자주 해줍니다.
한국은 그런가요? 동양권들은 일이던지 공부던지 특출 나게 잘해야만 칭찬을 해주지 않나요?
한국에서 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80-70점 정도는 그냥 평균인 거고 90점은 넘어야 잘한 것, 전교 1등-30등 정도는 돼야 주변 친구들이나 부모님에게 "공부 잘한다"라는 소리 듣지 않나요? 대학도 인서 울안에서 서열을 정말 촘촘히 나누죠. 저도 초등학교 때 평균 93-95점 맞아보고도 그 틀린 몇 문제 때문에 "더 노력해야 한다"는 소리를 부모님께 들었던 것 같습니다...
스웨덴 부모들, 영국 부모들은 기대치가 다릅니다. C를 평균 또는 그럭저럭 잘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양권 부모 밑에서는 개인이 자신감을 기르기 힘듭니다.
3-3. 문화적 문제- 표현하는 서양문화, 주입식의 동양 문화
동양권 나라들은 워낙 인구수가 많아서 그런지, 개개인을 평가하기 위해 시험지 위주의 평균화된 시험을 대학, 취업 같은 상황에서 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게 아무래도 많은 인구를 상대로 점수를 매기기 빠르고 편하니까요. 한정된 자원에 인구는 많고 경쟁은 치열하다 보니 0.1점 차로 사람을 떨어뜨리는 방법은 점수제의 시험들이 편하죠.
그런데 서양권들은 토론, 인터뷰, 오랄 테스트 같이 단순히 앉아서 문제풀이만 하는 것보다 이런 다양한 구술 활동에 좀 더 중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언어를 배워도 단어만 줄줄 외우고 문제풀이만 하는 게 아니라 글쓰기, 말하기로 배운 것을 표현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 아무래도 자신을 표현하는 데 좀 더 익숙하고 유리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동양인들은 이전에도 자신감이 없었으니 그러므로 앞으로도 자신감이 없어야 하나?"라고 물으신다면 절대 아닙니다.
다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자신감을 올리자!"라고 결심한다 해서 갑자기 자신감이 알아서 올라가지 않음을, 저 스스로도 경험해보았고 여러분들도 어느 정도 느끼고 계시지 않나요?
저는 자신감을 올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먼저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스스로를 탓하지 말고, 사실 자신감이 결여된 이유는 이러한 이유들이 있고, 사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내가 자신감이 없는 이유도 어느 정도 타당한 이유에서 비롯되지 않았던 가요?
이제 스스로를 이해했으니, 천천히 각자 자신에게 맞고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