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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비 May 02. 2021

외모가 나에게 혜택을 주지 않는 삶

재택근무를 1년 넘게 하면서 화장을 하고 옷을 멋지게 차려입는 날이 눈에 띄게 줄었다. 약속이 있을 때는 나름 신경을 쓰긴 하지만 그마저도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나의 일상에서 화장은 필수가 아닌 '특별한 날에만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조금 까만 피부를 타고났다. 어렸을 땐 이것이 굉장히 콤플렉스였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 워낙 많이 언급하고 놀리기도 했고, '까만 피부는 덜 예쁘다'라는 한국의 미적 기준 때문에도 그러했다. 중, 고등학교를 올라가서는 조금이라도 하얗게 보이는 선크림을 찾아 발랐다. 강렬한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양산을 쓰고 긴팔을 입었고 햇빛이 강렬하면 아예 밖으로 나가질 않았다.




그러나 이곳에선 하얀 피부가 꼭 예쁨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 스웨덴 친구가 한 한국인에게 "피부가 우유같이 하얗다"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다며 내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 한국인은 분명 칭찬의 의미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친구에겐 피부가 하얗다는 것이 전혀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곳의 백인들에게 "피부가 하얗다"는 "Pale"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예쁘다는 느낌보다는 창백하고, 집에만 처박혀있어서 우울한 상태와 가까운 부정적인 어감이다.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Desperate housewives)을 본 사람은 알 수도 있겠지만, 태닝한 피부는 부와도 연결돼있다. 한국은 전통적 농경사회라 밭일을 하느라 새까맣게 탄 피부보다는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랐을 것 같은 하얀 피부를 동경한다. 그러나 영국/스웨덴은 여름에도 온도가 많이 올라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태닝한 피부는 스페인, 그리스, 태국 같이 따뜻한 남쪽 나라에 가서 별장/요트에서 긴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재력을 상징한다.


겨울에도 햇빛이 내리쬐는 한국과는 달리 특히나 유럽은 11월-1월 내 해를 보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렇기에 계절성 우울증을 겪기 쉽다. 수차례의 겨울을 겪으며 나는 햇빛이 주는 소중함과 그 효과를 톡톡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단순히 내 피부가 타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피했다면, 이제는 피부가 까매지는 것보다 나 스스로가 행복한 게 더 중요함을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 살다 보면 햇빛이 조금이라도 내리쬐는 날, 공원에서 일광욕 (Sun bathing)을 하거나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쉬이 볼 수 있다. (스웨덴도 해가 뜨는 날이면 학교 캠퍼스가 밖에서 점심을 먹는 이들로 가득 차곤 했다.) 백인들은 아무리 태닝을 해도 쉽게 태닝이 되지 않는 피부라 더 그런 것도 있지만, 여기선 태닝이 잘 안된다고 불평하는 분위기는 있어도 어느 누구도 하얀 피부를 대놓고 동경/자랑하지는 않는다. 




햇빛을 쬐고 산책을 하면 우울증과 기분전환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 햇빛을 충분히 받은 날이면 그날 저녁에 잠도 더 잘 오고 기분도 좋다. 이러한 효과들을 내가 매일매일 느끼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첫 번째 이유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피부가 좀 까매진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반응이나 불이익(?)을 느낄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내가 한 달간 홀로 유럽여행을 하고 와서 피부가 조금 탄 걸 보고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던 친구들이 많았다. 그리고 꼭 한 마디씩 했다. "너 피부가 왜 이리 까매?" "선크림 좀 바르지." 피부가 까만 것은 여자에게 예쁜 것이 아니라는 가치관을 밑바닥에 깐 말들이다.


여기는 내 피부에 기미가 조금 생기고 피부가 타더라도 그렇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피부가 엄청나게 하얗더라도 그걸 대놓고 칭찬/부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여기서 받은 콤플렉스는 "어떻게 하면 더 말을 잘하고 똑똑하고 논리적인 사람이 될 수 있지?"였다. 여기선 내가 자기주장을 제대로 못 펼치거나 그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않았을 때의 불이익이 내가 예쁘지 않았을 때의 불이익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 여성의 외적 아름다움을 너무 크게 보상한다. 그리고 외모가 여성이 가진 다른 어떤 가치에도 우선한다.


내가 대학을 처음 들어갔을 때 나는 동기들을 보고 너무 놀랐다. 왜 이렇게 예쁜 여자들이 많지?

다들 너무 마르고, 예쁜 여자들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고소득이든 저소득이든 명문대를 나오든 그렇지 않든 여성들은 대부분 예쁜 여자들이 많았다. 나는 그 이유가 아무리 여성이 똑똑하고 돈이 많아도 그건 그 자체로 매력으로 존재할 수 없고, 결국 여자는 "마르고 예쁘고 생머리에 가녀려야 한다."는 기준에 맞춰야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남성은 돈이 많거나 학벌이 좋으면 그것 자체가 매력이 된다. 그러나 여성은 그렇지 않다. 어쨌든 예뻐야 된다. 나는 대학시절 사진도 공유하기 전에 내 대학 때문에 소개팅 주선조차 성사되지 않은 적이 너무 많다. 학벌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상대방 대학교가 충분히 좋은 수준인데도 그러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나의 지적 수준이나 성격, 학벌이 연애 시장에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게 여성들은 다이어트를 하고 성형수술을 하고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는데 많은 돈과 시간을 보낸다. 그것에 대한 확실한 혜택과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국과 스웨덴에서도 외모지상주의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화장을 덜하고 옷을 덜 신경 쓰게 입는 것은 외모를 신경 썼을 때의 혜택이 한국에서처럼 대단하지 않다는 걸 나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예쁜 여성에게 미스코리아 상을 주고, 신분상승의 기회가 열리고, 연애 시장에서 더 많은 이득을 보고.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면, 그 나라에서 자라나는 어린 여자아이들은 "예쁨"이 굉장히 중요한 가치라고 인식하고 그걸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러나 영국이나 스웨덴에서 나는 뭘 위해 노력하는가? "좀 더 재밌는 사람" "좀 더 유쾌한 사람" "감사 표현을 잘하는 사람" "말을 논리 정연하게 하고 자기표현을 확실하게 하는 사람" 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노력했을 때 내 팀원들과 주위 사람들이 나를 더 좋아하는 게 느껴지고 인간관계가 넓어지고 내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몸소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그냥 자기주장 없이 잘 웃고 착하고 예쁘려고 노력했을 때, 내가 받는 보상은 별로 없다. (오히려 옐로우 피버가 꼬이기 때문에 보상이 아닌 처벌이 따라오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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