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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비 Jul 12. 2021

해외 롱디, 성공적인 커플/케이스 유형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주변엔 굉장히 많은 해외 롱디 (최소 유럽-아시아, 북미-아시아 수준의 거리) 커플들이 있고 나 또한 해외 롱디 경험이 있다. 상대방과 전화 한 통화를 하기 위해 매번 시차를 계산하고 상대방이 잠이 든 시간 동안 하염없이 기다려본 적이 있다면, 서울-부산과의 거리는 사실 롱디라고 명함을 내밀기도 힘들 것이다. 


해외 롱디를 한다고 하면 대체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다. 


"절대 안 돼! 너무 힘들어."  
"몸이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대부분 거의 헤어져." 


나는 해외 롱디에 실패(?)했지만ㅡ연애의 끝이 결혼 아니면 헤어짐이니 헤어짐을 선택한 입장에서 본다면 실패라고 볼 수도?ㅡ나는 해외 롱디의 가능성은 50:50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모든 해외 롱디 커플이 헤어짐으로 끝나는 건 아니란 얘기다. 


내 주변엔 최소 3년-5년간의 해외 롱디를 끝내고 동거, 결혼까지 성공한 커플들이 반(50%), 오랜 외로움과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헤어짐을 선택한 이들이 반(50%)이다. 그렇기에 해외 롱디가 무조건 부정적이고 성공하지 못한다는 편견에는,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다만 오랜 시간 내 나름의 데이터와 경험을 통해 관찰 분석(?)을 해본 결과, 나는 해외 롱디를 잘 해낼 수 있는 커플 유형이 따로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유형 - (The Five Love Languages)


사랑의 언어 이론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연애 이론 좀 봤다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 유형. 이 이론은 사람이 사랑을 느끼는 표현 방식을 5가지로 정리한다. 


1.Words of affirmation (사랑을 확인해주는 말)

2.Quality time (함께 보내는 시간) 

3.Physical touch (스킨십)

4.Acts of service (봉사, 상대방이 나를 위해 도움을 주거나 기꺼이 뭔가를 해주는 것) 

5.Receiving gifts (선물) 


만약 둘 중 한 명의 사랑의 언어가 Phsyical touch (스킨십)이 가장 상위에 랭크된다면, 해외 롱디가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굉장히 어렵다. 왜냐면 이들이 사랑을 느끼는 방법은 육체적인 관계인데, 해외 롱디는 육체적 관계가 전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충분한 영상통화나 가끔 받는 선물만으로도 해외 롱디를 지속할 수 있는 반면, 누군가는 상대방과 나누는 포옹, 실제로 하는 눈 맞춤, 이런 것이 연애를 지속함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 


나의 사랑의 언어는 첫 번째가 Quality time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두 번째가 Physical touch (스킨십)이어서 해외 롱디에 전혀 맞지 않는 체질이었다. 우선 시차가 다르니 함께 하는 시간이 길지가 못했고 스킨십은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해외 롱디를 하는 동안 롱디가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심했다. 


다만 나의 ex의 사랑의 언어는 Receiving gifts (선물)와 Acts of service (봉사)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나의 부재가 그에게 있어서 딱히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았고, 내가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나 그 전에도 딱히 슬퍼함이나 큰 감정의 불안함이나 동요 없이, 그냥 그렇게 평상 생활을 하듯 롱디를 한 케이스다. 


해외 롱디를 잘하는 커플을 보면, 상대방의 부재가 자신에게 큰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가져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사랑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해외 롱디가 '더 사랑하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시차와 거리를 못 견디고 헤어진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에 반대한다.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더 보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그렇지 못하는 상황이 더 큰 고통과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1. 롱디를 해보기도 전에 헤어짐을 고한다거나 2. 나는 롱디를 못하니 앞으로 너와 관계 정립은 하지 않고 육체적 관계만 하겠다거나 3. 나는 롱디가 안 되는 체질이니 너와 롱디를 하면서 다른 여자와 육체적 관계를 맺는 걸 허락해달라 (갑자기 자신은 알고 보니 폴리아모리였다며 이지랄..) 하는 이들은 당연히 제외다. 이건 그냥 상대방을 그렇게 까지 사랑하지 않거나 기본적인 존중이 없는 경우다. 그리고 해외 롱디를 하다가 다른 사람과 바람을 펴서 헤어지는 경우도 당연히, 제외다. 이건 그냥 상대방이 알아서 떠나가 줌에 감사해야 하는 경우다. 


그러나 이런 경우들을 제외하고, 모든 롱디의 헤어짐이 '사랑하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헤어진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에 대한 반기를 들 수밖에 없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고 각자가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방식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연애는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존재 자체가 행복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우리 인간은 모두 욕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결국 이기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욕구가 해소가 돼야만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낀다. 매일 밥을 먹고 배변을 하고 수면을 하는 것처럼. 




해외 롱디를 성공적으로 하고 나면 그다음은? 


해외 롱디는 평생은 불가능하다. 사람에 따라 기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두 사람이 앞으로의 관계를 지속해 가기 위한 일시적인 단계일 수밖에 없다. 해외 롱디를 성공적으로 끝냈다면 결론은 둘 중의 한 명이 서로의 나라에 가서 살거나, 제3국의 나라에 가서 정착을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과정에서 성공적인 롱디가 성공적인 연애 또는 결혼으로 계속해서 이어지기 위한 중요한 부분이 있다. 



누구 한 명이 희생했다고 느끼지 않는 것=보상심리 


만약 내가 상대방의 나라로 이주할 때, 상대방의 나라에 내가 충분히 살고 싶은 생각이 있고, 그 나라 언어도 좀 할 줄 알고 문화에도 많은 관심이 있다면, 즉 그 나라에 이주하는 이유가 오로지 이 한 사람 때문이 아니라면, 그 나라에 이주하고 나서도 보상심리가 좀 덜하다. 


왜냐면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고 해도 상대방의 나라로 이주하는 것은 굉장히 큰 헌신과 모험이고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없고, 친구가 없으며, 이 나라 사람들은 나의 문화와 언어, 때로는 감정까지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내 파트너가 없었어도, 나는 이 나라에 와서 살고 싶은가?" 


이 질문에 답을 하기가 망설여진다면, 나는 결정을 보류하고 시간을 좀 더 들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상대방 때문에 내가 이 나라에 정착했다는 생각이 들면, 그 나라에 살며 혹여나 부정적인 사건을 겪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상대방 탓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도움을 더욱더 바라게 되고 정서적으로 의지하게 될 것이다.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도, 직장을 구하거나 집을 구할 때도, 잡다한 집안일이나 행정 일을 할 때도... 이건 내가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라 당연한 사람의 심리다. 내가 가고 싶지 않은 나라에 단순히 사랑을 유지시키기 위해 왔다면, 나로서는 엄청난 희생을 한 것이기 때문이니까.


보통 이러한 해외이주의 결정을 할때 여자쪽이 남자의 나라에 이주하게 되는 경우가 월등히 많은데, 아무래도 여자가 좀 더 관계지향적인 성향이 많아서 인 것 같다. 그러나 내 인생은 결국 남편도 책임져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혹여나 살아보고 확신이 안든다 싶으면 제3국이라는 대안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결국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굉장히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파트너도 결국은 타인이다. 시간과 에너지가 유효한 인간일 뿐이다. 나는 어떻게 보면 상대방 나라에 이주를 하더라도, 상대방 도움 없이 한 달 혼자 살기를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그 나라에 살아보며 이 나라가 나에게 맞는지도 판단할 수 있고, 그 곳에서 친구를 사귀어보고 일을 구해보고 하는 것에 익숙해져 보면, 자기 효능감도 높아지고 상대방의 도움과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외국에서 혼자 쌓아 올린 인간관계나 직장, 내가 직접 경험하며 얻은 삶의 팁, 지혜 같은 것들은 중요한 순간에 나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을 하더라도 결국 나는 나만의 삶이 필요하다. 배우자의 인간관계, 직장에 의지해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배우자와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내가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다. 이런 통제 불가능한 영역을 걱정하면서 살기보다, 통제 가능한 '나'의 영역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내가 혼자서 꾸려간 나의 인생. 내가 만든 친구, 내가 구한 직장, 이런 것들이 훗날 혹여나 배우자의 관계에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나를 보호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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