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비 Dec 31. 2023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서 보는 망하는 조직의 특징


*이 글은 영화에 대한 간접적인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와 신년 휴가 기념 한 달간 머물고 있는 한국에서 가족들과 영화 '서울의 봄'을 보았다. 많은 이들이 영화의 주요 캐릭터 '전두광' (황정민 분) 에 대해 분노했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전두광도 전두광인데 어떻게 보면 조직에서 하나의 개인에 불과한 전두광이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여 독불장군 행세를 하고 결국 대통령까지 넘보게 되는 그 '시스템'에 의문을 느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나는 내 예전 회사와 영화에서 그려지는 군인 시스템의 환경이 너무나 유사하다고 느꼈다.



첫 번째, '왜?' 'Why?'라는 합리적 질문과 비판적 사고가 통하지 않는다.  


출처: 네이버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나는 분석적, 비판적 사고가 강한 사람이다. 상사가 나에게 일을 시킬 때, 그 의도나 논리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에 대해 질문을 하고, 그 이유에 대해 스스로 납득이 돼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난 회사의 전 매니저는 나에게 일을 시킬 때 본인이 나에게 이 일을 왜 해야 되는지 논리적인 근거를 통해 설명하는 과정과 능력이 굉장히 부족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일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 일을 왜 꼭 이러한 방식으로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럴 때마다 전 매니저는 "내가 너 매니저잖아."라며 자신의 직위를 들이댔다. 나는 그때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 이 사람 할 말이 없구나.


지금 회사에서는 나의 비판적 사고 능력이 굉장한 강점으로 평가받는다. 그 능력 때문에 주어진 디자인을 그냥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PM (프로덕트 매니저)과 함께 질문하고 토론하며 문제의 본질을 찾아갈 수 있다. 성공하는 조직은 직위에 상관없이 누군가가 어떤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했을 때, 그것이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으로 연결되는 문화이다.


상사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 된다고? 일이 왜 그렇게 진행돼야 되는지 궁금해하는 순수한 질문을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건 그 매니저 본인의 역량 부족 (사실은 자격지심)이 훨씬 크다. 상사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토론을 하는지가 궁금하다면 한국에서도 책이 번역되어 나온 'Radical candor (실리콘 밸리의 팀장들)'을 읽어보길 원한다.


전시상황을 가정한 군의 명령 체계는 상명하복이어야 함을 이해한다. 그러나 사기업이 그렇다면 어떨까? 판단은 개인에게 맡긴다.



두 번째, 실력보다 개인적 친분이나 정치를 통해 승진이 되는 이들이 많다.


출처: 네이버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내 전 매니저는 매니저로서의 매니징 능력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어린 나이에 빠르게 매니저 레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을 다루는 능력' 때문이었다. 그녀는 전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영국인 백인이라는 자신의 강점을 활용해, 외국인이고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이민 1세대인 나보다 훨씬 더 빠르고 신속하게 회사의 주요 직책에 있는 사람들과 친해졌다. (전 회사의 90%가 영국인 백인으로만 이루어졌던 이유도 크다)


확실히 그녀는 그런 능력이 뛰어났다. 나는 그녀와 내가 매니저와 부하 관계가 아니라 친구 관계로 만났다면 정말 좋은 관계가 되었을 거라 생각한 적이 정말 많다. 그러나 문제는 나와 그녀는 일을 하는 사이지 농담 따먹기 하면서 어제 내가 만난 친구랑 뭐 했는지 회사에서 매일 한 시간 떠들라고 고용된 사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회사에서의 인간관계. 중요하다. 그러나 회사에서 주요 인사들이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개인적인 친분이나 정치 이해관계 때문에 승진이 된다면 그런 문화를 가진 조직에서는 자신의 밑의 사람도 그렇게 자신의 비위에 맞추고 행동하길 바라고 요구한다. 


나는 술을 즐기지 않는다. 술고래였던 전 매니저는 매주 심지어 주마다 몇 번씩 회사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하곤 했다. 누가 술을 못 마시고 잘 마시냐를 떠나서, 나는 심지어 백인 영국인들이 많은 회사에서, 그것도 백인 영국인이었던 전 매니저에게 업무 외 시간에 같이 술을 마셔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종종 받았다. 그 술자리를 얼마나 자주 가고 얼마나 오래 있냐가 회사에서의 일 적, 공적 관계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인상을 받았다.


현 회사에서의 술자리? 거의 없다. 그러나 강요된 술자리 없어도 회사는 잘만 돌아가며, 가끔 있는 회사 소셜모임은 내가 자발적으로 나간다. 내가 가고 싶기 때문이다. 왜? 강요도 안 하고 애초에 그렇게 자주 있지도 않으며 회사 소셜을 얼마나 가냐가 내 회사의 승진이나 업무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세 번째, 옳은 말을 하는 이들이 공격받는다.


출처: 네이버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끝까지 옳은 말만 했던 '이태신' (정우성 분) 은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회유당하고 협박당하고 공격받다가 결국은 고문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내가 이태신처럼 대단한 성인군자나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지만 나도 죽었다 깨어나도 옳은 말만 해야 되는 성격이었다. 내가 봤을 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나 논리구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지시는 따르기 힘들었다. 이런 내 성격에 관해서 지난번에 글을 쓴 적도 있지만 그  사건으로부터 벌써 1년 반이 지난 지금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내 자신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중요하니까 다시 한번 쓰겠다. 내 자신을 바꿀 필요가 하등 없었다. 물론 전 매니저의 행태가 상식적으로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아 그 사람을 연구해보겠다고 그 매니저의 장점 (사람을 잘 다루는 능력) 을 분석해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까지 읽어보고 결국 그 매니저를 내 편으로 만들어 냈지만. (매니저와 함께 일한 1년 중 9개월간 나는 동태눈깔을 하고 매니저의 말과 모든 의사결정이 다 맞다고 칭찬일색을 했으며 그걸 너무나 좋아했던 내 매니저가 나를 완전히 신뢰하게 되자 나는 그걸 이용해 내 개인 포트폴리오나 면접 준비를 해서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것은 회사를 바꿀 수 없는 피치못한 상황에서의 일시적인 솔루션이자 스킬을 얻은 것일뿐 결국 나는 나를 의심하고 바꿀 필요가 없었다.


내가 잘못됬다고 느끼게 만드는 조직에는 있을 필요가 없다.


나는 예전 회사에서, 연말 평가 때 '차갑다', '다가가기 어렵다'라는 피드백을 많이 들었다. (매니저에게 동태눈깔을 시전하기 전) 그러나 이것은 원인 결과가 명확하지도 않으며 논리구조가 존재하지도 않는, 피드백이 아니다. 들을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성격에 대한 피드백은 피드백이 아니다.


피드백을 제대로 쓰려면 Situation - Behaviour - Impact 상황, 행동 그리고 그 행동이 미친 결과가 명확해야 한다. 내가 태도가 차갑기 때문에 팀 미팅에서의 분위기를 망치고 팀 내 원활한 의사소통을 막았다. 그러면 본인의 행동을 고려해봐야 한다. 내가 공격적인 태도로 팀원들의 모든 의견에 딴지를 걸고 비판을 해서 팀원들이 의견을 내기 어려워 한다? 그럼 본인의 태도를 돌아 봐야 한다. 이처럼 내가 어떤 '상황' 에서 어떤 '행동' (성격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을 했을때 그것이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명확하게 서술하지 않으면 이것은 그냥 개개인의 성격에 대한 본인의 주관적 가치판단이 들어간 선호를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나는 일을 못한다는 피드백이 전 회사에서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 성격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내 성격을 공격하는 피드백을 받는다면 '아 이사람이 정말 내가 일로는 깔 것이 없어서 내 성격을 문제삼는 구나. 바닥까지 다 갔구나.' 라는 생각을 했겠지만 그 때 당시 나는 내가 정말로 내 성격에 문제가 있고 그래서 그걸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내가 그 때 당시 신뢰하던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한국인들 마저 그런 이야기들을 했다.


그런데 지금 회사에서는 사람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 준다. 내가 궁금해하고 순수하게 질문하는 것들을, 지금 매니저는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그 일을 왜 해야 되는지 납득이 되면 나는 그 일을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빠르게 처리한다. 그렇게 나는 지금 회사 입사 6개월도 되기 전에 받은 연말 평가에서, 매니저로부터 개선점이 하나도 없다는 최고의 칭찬을 받았다.






영국 백인들이 많은 영국 회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니 참으로 씁쓸하다. 영화에서의 엔딩은 참혹했지만 현실에서는 한국에서의 민주주의가 결국은 이루어 진 것처럼, 나 또한 개인적으로는 해피엔딩을 맞았다. 어쨌든 전 회사에 지금은 실제로 근무하고 있지 않고, 인지도 면, 규모 면에서나 월급 면에서나 훨씬 큰 현재 회사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주변의 가스라이팅 (심지어 주변의 가까운 한국 사람들 조차) 을 받으면서도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 조직이 이상했다고, 내 마음의 소리를 믿고 따른 결과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혹시나 조직에서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일적인 피드백이 아니라 성격에 대한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꼭 말하고 싶다. 당신 스스로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조직은, 떠나라. 문제있는 건 당신이 아니라 조직이다.


 

작가의 이전글 테크회사로의 이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