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소녀, 친구에 대한 짧은, 그러나 선명한 기억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더니 금세 굵고 시원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어쨌건 간에 긴 갈색 생머리의 그녀와 나, 그리고 친구들은 어느 높은 카페에 있었다.
비를 피하기 위해서였을까, 차가 마시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단지 함께 있고 싶어서였을까.
창 아래로 보이는 풍경이나 빗소리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우린 얼굴을 마주 보고, 차를 마시고, 시폰 케이크를 먹었다.
어찌 된 일인지 비는 그칠 줄 몰랐고 창 밖에 서있던 빗소리는
집에 가야 한다는 걱정을 사라지게 하기에 너무나 흡족스러웠다.
여유가 있었고, 신선한 즐거움이 있었고, 귀여운 그녀의 모습과
유쾌한 친구들, 그리고 민트차의 싱그러운 향기가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건대 그런 장면은 평소 내가 꿈꿔오던
영화 속의 낭만스러운 한 장면과 다름이 없었다. 물론 그때는
그러한 것을 생각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어느덧 추억이 되어버린 듯한 그 시절 순수한 이야기들이
낭만적인 어떤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되어 풍경처럼
이따금씩 떠올려지곤 한다.
지금은 비가 오지도, 친구들과 함께 있지도, 차를 마시지도
않지만 머릿속에 '슥' 하고 떠올려지는 것이다.
그냥, 갑자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