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행동 깔때기, 이른바 Marketing Funnel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접해보았을 것이다. 과거에는 실제로 소비자들이 그렇게 움직였다. 어떤 제품이나 브랜드를 인지하고, 그 것의 장단점을 고민한 다음 구매를 결정했다. 즉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이 깔때기의 첫 단계 '인지'로 밀어 넣으면 소비자들을 아래로 좁아지는 깔때기 안에 가둬둘 수 있었다. 일정 수준의 인지 인풋은 반드시 일정 수준의 구매라는 아웃풋으로 연결되었다. 그래서 적당한 제품을 만들고 이것을 큰 광고비로 시장에 공습하면 기대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깔때기는 산업의 구조나 소비자의 특성에 따라 손잡이형, 트럼펫형과 같이 변형되지만 본질적인 구조, 소비자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결국 목표로 하는 행동에 다다르게 되어있었다는 점은 동일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인지에서 구매 또는 반복구매나 충성으로 이어지는 방향성은 비슷하지만 인풋과 아웃풋의 효율은 전과 같지 않다. 유튜브 조회수 백만뷰를 달성한 제품의 광고라 하더라도 100회의 구매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단 만명이 조회한 몰테일 카페 핫딜에 올라온 제품은 순식간에 몇 천개씩 판매가 된다. 인스타나 페이스북에서 몇 천명에게 노출되었을 뿐인 광고가 바이럴이라는 마법 양탄자를 타고 몇 만개씩 판매가 되기도 한다. 깔때기가 더이상 아래로 좁아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소비자들이 더이상 그 깔때기에 갖혀있지도 않는 것이다. 이제 시장에서의 우위는 브랜드에게 있지 않다. 이미 소비자가 이슈를 만들고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서로서로 주고받으며 바이럴을 만든다. 소비자가 우위를 가지고 있는 시장에서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는 브랜드는 잊혀지거나 낙오된다.
예전에는 인구통계학적 분류를 가지고 소비자를 몇 개의 집단으로 나눈 뒤, 이 집단들중 우리 제품이 팔릴 만한 곳에 광고비를 뿌리면 매출이 발생했다. 각 집단들의 라이프스타일과 특성이 비슷했기 때문이고, TV와 신문을 비롯한 몇 개의 단방향 미디어가 모두에게 비슷한 콘텐츠를 보여주고, 같은 유행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소비자들은 기업이나 브랜드가 광고를 통해 하는 이야기보다 지인, 온라인에 있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훨씬 더 신뢰한다. 이제는 소비자 개개인이 모두 미디어가 되었다.내가 SNS에서 올린 맛집 후기를 모르는 사람이 보고 찾아간다. 내가 이커머스 플랫폼에 남긴 포토리뷰를 보고 어떤 사람은 장바구니에서 그 제품을 지운다. 무한에 가까운 미디어가 존재하고, 이를 구성하는 소비자들은 저마다 다른 취향과 기호를 가지고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온라인에서 찾는다. 그리고 기존의 분류로는 절대 묶지 못할 새로운 집단들이 만들어지고 해체되고, 또 다시 만들어진다. 우리는 이제 "30대 남성 직장인 "과 같은 집단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홈카페를 해보고 싶지만 번거로운 것은 싫어하는"사람들의 집단, "캠핑을 좋아하고 요리를 좋아하는"사람들의 집단과 같은 여러 집단에 동시에 속해있는 다층적이고 복잡한 소비자가 되었다.
저마다 다른 니즈를 가지고 개별화되어가는 소비자들이 세상과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브랜드가 수십억을 들여 퍼붓는 광고보다 누군지 알지 못하는 온라인 리뷰를 더 신뢰하고, 때로는 제품의 성능과 가치보다도 구매 경험 그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제품을 구입한다. Need보다 Want, 필요보다 내가 원하는 것, 즉 재미 또는 의미, 또는 다른 그 무엇. 이 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브랜드는 소비자들이 알아서 언급해주고 알아서 퍼뜨려준다. 이것이 이제는 우리가 종일 제품만을 붙잡고 고민하는 것보다 소비자를 이해하는 것이 더 필요한 이유이다.
소비자가 만들고 있는 흐름에 올라탈 것인가, 과거의 성공방식을 답습하다 결국 도태될 것인가.